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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만화

에데나의 세계

by 교양인 2021. 12. 20.

에데나의 세계 _ 장 ‘뫼비우스’ 지로 / 장한라 옮김
Le Monde d’Edena _ Jean ‘Mœbius’ Giraud

 

에데나의 세계(보도자료).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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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데리코 펠리니, 파울로 코엘료, 윌리엄 깁슨, 
미야자키 하야오를 사로잡은 예술가들의 예술가, 
SF 그래픽노블의 대가 장 ‘뫼비우스’ 지로! 
한국어로 처음 소개되는 그의 걸작 《에데나의 세계》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에일리언>과 <블레이드 러너>, 뤽 베송 감독의 <제5원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어비스>까지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아마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답은 이 작품들 모두 SF(Science Fiction) 장르에 속한다는 것이리라. 그런데 사실 이 작품들에는 훨씬 흥미로운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뫼비우스’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프랑스 만화가 장 앙리 가스통 지로(Jean Henri Gaston Giraud, 1938~2012)이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은 뫼비우스가 직접 참여했거나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뫼비우스적’ 상상력의 자장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만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장 지로는 평생 동안 ‘지르(Gir)’와 ‘뫼비우스(Moebius)’라는 두 개의 필명으로 사실주의적인 서부극 만화와 SF 만화라는 두 영역에서 각기 독창적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거장의 반열에 오른 야누스적 천재였다. 특히 ‘뫼비우스’로서 그는 독특한 화풍과 SF적 상상력으로 만화, 영화, 소설 등 분야를 막론하고 전 세계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20세기 시각 예술 전반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인물로 평가받는다. 우리 시대의 SF는 뫼비우스라는 이름 없이 상상할 수 없다. 리들리 스콧의 말처럼 “우리는 뫼비우스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그의 영향은 거기서 벗어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널리 퍼져 있다.”

 

SF 그래픽노블의 고전 《에데나의 세계》
신화와 철학적 상징으로 가득한 기이한 서사를 창조한 놀라운 상상력, 
꿈과 현실이 서로 침투하는 뫼비우스적 세계가 펼쳐진다! 

이제 뫼비우스의 SF 걸작 《에데나의 세계(Le Monde d'Edena)》가 처음 한국어판으로 소개된다. 이 작품은 이야기를 창조하고 그림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걸출한 아티스트이자 스토리텔러 ‘뫼비우스’의 독특한 시각과 스타일을 보여주는 완벽한 예시로 손꼽힌다.  

《에데나의 세계》는 1983년에 단편 <별 위에서>를 작업하면서 얻은 영감을 2001년까지 거의 20년 동안 발전시켜 완성한 연작 시리즈이다. 단순하고 절제된 그림과 과감한 색채 사용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현대 SF 만화의 걸작으로 꼽힌다. “색채는 언어”라는 뫼비우스의 말을 적용하면 《에데나의 세계》는 그 언어로 쓴 한 편의 시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작품이다. 여기서 뫼비우스는 가상의 먼 미래에 ‘스텔’과 ‘아탄’이라는 두 주인공이 미지의 행성 ‘에데나’에서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감행하는 모험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 작품은 끊임없는 자기 혁신과 누구도 견줄 수 없는 독창성으로 구축된 ‘뫼비우스’라는 경이로운 우주로 향하는 문을 열어줄 것이다.

 

“나는 뫼비우스의 영향을 받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창작했다.” 
_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감독 

“뫼비우스는 데생의 대가이자 최고의 예술가이며 그 이상이다. 그의 상상력은 독창적이고 강력하다. 뫼비우스의 그림을 처음 본 날부터 나는 그의 독특한 디자인 감각, 환상의 세계를 묘사하는 남다른 방식에 큰 감명과 영향을 받았다. 아마도 그의 작품에서 내가 가장 크게 충격받은 것은 그 순수한 아름다움일 것이다.” _ 조지 루카스, 영화 감독

“뫼비우스는 비범한 시각적 상상력이라는 재능을 타고났다. 그 상상력은 끊임없이 새로워진다. …… 나는 뫼비우스를 피카소와 마티스만큼 위대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_ 페데리코 펠리니, 영화 감독 

“뫼비우스는 알브레히트 뒤러나 앵그르처럼 회화의 역사에 남을 것이다.” 
_ 브누아 무샤르,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 전(前) 예술감독

 

SF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연 만화가, 장 ‘뫼비우스’ 지로
- 독창적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거장의 반열에 오른 야누스적 천재 


장 지로에서 뫼비우스로

장 지로는 1938년 5월 8일 프랑스 파리 동쪽의 소도시 노장쉬르마른에서 태어났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와 전후의 혼란스러운 프랑스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3살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주로 외조부모의 손에서 자랐는데 혼자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훗날 그는 어린 시절에 몹시 가난했지만 불행하지는 않았다고 회상했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특히 SF ․ 판타지 소설, 아메리카 원주민과 카우보이가 등장하는 할리우드 서부영화를 즐겨 보았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림을 향한 열정을 품었던 지로는 1954년 16살에 파리의 뒤페레고등응용예술학교에 들어가 약 2년간 전문적인 훈련을 받았다. 1956년부터 <극서(Far West)> <용감한 심장(Cœurs Vaillants)> 같은 몇몇 청소년 대상 잡지를 통해 서부극 만화를 선보였고, 1961년에 어린 시절부터 흠모하던 만화가 조제프 질랭(Joseph Gillain, 필명 ‘지제Jijé’)의 수습생이 되어 본격적으로 만화를 배우면서 지제의 작품에 어시스턴트로 참여하게 된다. 

1963년에 각본을 맡은 장미셸 샤를리에(Jean-Michel Charlier)와 협업한 서부극 만화 “블루베리(Bluberry)” 시리즈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마침내 장 지로라는 이름(그리고 지로를 줄여서 만든 ‘지르’라는 필명)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지로는 “블루베리” 시리즈에서 단호하고 활력이 넘치며 세밀한 묘사로 사실주의 만화의 극치를 보여주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블루베리" 시리즈의 한 장면. 세밀하고 사실적인 그림이 돋보인다.

 그러나 “블루베리” 시리즈의 성공으로 유명 인사가 된 바로 그해에 지로는 익숙해진 장르를 벗어나 어린 시절부터 관심이 많았던 SF 장르에서 ‘뫼비우스’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창작의 열정을 피워 올리기 시작한다. 

 

<메탈 위를랑>과 뫼비우스

뫼비우스의 그림이 표지로 실린 <메탈 위를랑>

지로는 새로운 분신 뫼비우스로서 1963년부터 1964년까지 잡지 <하라키리(Hara-Kiri)>를 통해 실험적인 SF 작품들을 선보였다.(일반적으로 SF란 과학적 사실이나 가설을 바탕으로 추정한 가상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룬 과학 소설, 또는 그러한 내용을 담은 만화나 영화 등 다른 매체의 장르를 뜻한다.) 이후 10년 가까이 지로는 뫼비우스로서는 활동하지 않고 지로(지르)로서 “블루베리” 시리즈에 전념하는 듯 보였다. 사라진 듯했던 뫼비우스라는 이름은 1974년에 다시 등장한다. 1974년 12월에 뫼비우스는 뜻이 맞는 작가들과 함께 성인 취향의 만화 잡지 <메탈 위를랑(Métal Hurlant)>을 창간하고 독특한 뫼비우스 스타일을 발전시켜 나갔다. <메탈 위를랑>에는 SF와 판타지를 기반으로 하고 폭력, 에로티시즘, 풍자와 유머, 호러(horror)를 곁들인 작가주의 성향의 작품들이 실렸다.

뫼비우스는 <메탈 위를랑>을 통해 발표한 “아르자크(Arzach)”(1975), “밀폐된 차고(Le Garage Hermétique)” (1976~1979), 칠레 출신의 영화 감독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가 각본을 쓰고 자신이 그림을 맡은 “잉칼(L’Incal)” (1980~1988)이 잇달아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동시대 가장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SF 만화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SF는 위대하다. 말 그대로 시간과 공간의 문을 열기 때문이다.” _ ‘뫼비우스’ 

일련의 작품에서 뫼비우스는 사회적 금기와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상상력, 꿈과 무의식 세계를 옮겨놓은 듯한 초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 독특한 장면 구성 등으로 SF 역사에 새 장을 열었다. 

독자들은 뫼비우스가 비범한 시각적 상상력과 표현력으로 창조한 환상적인 가상의 세계에서 하얀 익룡을 닮은 생명체를 타고 사막 위를 날아다니는 모험가(“아르자크”), 인간의 꿈속에 들어와 정신을 조종하려 드는 사악한 존재(“에데나의 세계”)를 비롯해 기이한 구조의 건물, 지구에서 볼 수 없는 동식물, 독특한 디자인의 옷과 비행체를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또한 뫼비우스는 시간과 공간의 차원을 오가고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신비로운 모험, 우주의 운명을 두고 펼쳐지는 선과 악의 대결 같은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파괴와 재생, 정신의 죽음과 부활, 인간의 자기 의식과 정체성 탐구, 전체주의 사회 비판 같은 묵직한 내용을 담았다. 뫼비우스가 우연, 직관, 몽상의 인도에 따라 창조한 낯선 세계는 독자들로 하여금 ‘지금 여기’의 세계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이끈다. 

 

조지 루카스부터 파울로 코엘료까지, 예술가들의 예술가가 된 상상력의 천재

<메탈 위를랑>으로 이름을 높인 뫼비우스는 여러 감독들의 요청을 받아 영화와 애니메이션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에일리언>(1979)에 콘셉트 디자이너로 참여해 주인공 리플리(시고니 위버 분)와 동료 선원들이 입은 우주복을 디자인했다. 스티븐 리스버거 감독의 영화 <트론>(1982)에서는 의상과 세트 콘셉트 디자인을 맡았고, 르네 랄루 감독의 SF 애니메이션 <타임 마스터>(1982)에 디자인 ․ 원화 ․ 채색 ․ 각본으로 참여했다. 이후로도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어비스>(1989), 뤽 베송 감독의 영화 <제5원소>(1997)에 콘셉트 디자이너로 참여했다. 마블 코믹스의 대부(代父)라 불리는 만화가 스탠 리와 협업한 작품이 《실버 서퍼: 우화(Silver Surfer: Parable)》(1989)로 출간되기도 했다.

이들 말고도, ‘사이버펑크(Cyberpunk)’의 개척자라 불리는 작가 윌리엄 깁슨, 전설적인 SF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로 유명한 감독 조지 루카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샌드맨》으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이자 그래픽노블 작가 닐 게이먼,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 영화 <아바타>(2009)의 미술감독 릭 카터를 비롯해 뫼비우스에게 영향을 받았거나 그의 팬이라고 밝힌 예술가는 수없이 많다.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뫼비우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에서 주인공 나우시카가 타고 다니는 하얀 글라이더는 뫼비우스의 <아르자크>(1975)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것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이 1980년에 <아르자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으며 뫼비우스의 영향 아래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뫼비우스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보고 크게 기뻐했으며 자신의 딸 이름을 ‘나우시카’로 짓기도 했다. 

왼쪽이 뫼비우스의 <아르자크>에 나오는 날아다니는 생명체, 오른쪽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글라이더

◉ <블레이드 러너>의 미래 도시와 뫼비우스

뫼비우스의 열렬한 팬이었던 리들리 스콧은 <에일리언> 이후 <블레이드 러너>(1982)에서도 그와 함께 일하기를 원했다. 비록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블레이드 러너>를 특징짓는 디스토피아적 미래 도시의 모습은 뫼비우스(그림)와 댄 오배넌(각본)의 <기나긴 내일(The Long Tomorrow)>(1976)을 참고해 디자인되었다. 영화 속 까마득히 높은 빌딩들, 인파와 가판대로 가득 찬 어수선한 거리, 불결한 빈민가와 상류층이 사는 거대한 피라미드형 건물의 대비 등에서 뫼비우스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기나긴 내일>에서 뫼비우스가 그린 미래 도시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시도한 열정의 예술가

1980년대에 뫼비우스는 일본 도쿄, 타히티 등에서도 잠시 머무는 등 여러 곳에서 생활했으며 1980년대 중반에는 미국으로 거주지를 옮겨서 여러 영화 작업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1989년에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으며 1997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뫼비우스의 모든 활동과 작업을 관리하는 ‘뫼비우스 프로덕션’을 세웠다. 

2000년대에도 자신의 대표작 “아르자크”를 직접 감독하고 제작해 “아르자크 랩소디”라는 단편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선보이고 일본, 독일, 벨기에, 이탈리아를 포함해 세계 각국에서 전시회를 열며 활발히 활동했다. 2007년에는 한국을 방문해 SICAF(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뫼비우스 특별전’에 참석하기도 했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그의 대표작 《잉칼》 한국어판(2000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나무》 한국어판(2003년)의 환상적인 일러스트,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 일러스트판(2005년)으로 알려져 있다.  
2012년 3월 10일, 오랜 암 투병 끝에 프랑스 몽루주의 자택에서 73살로 세상을 떠났다.

장 지로가 그린 자화상. 자신과 자신의 주요 캐릭터들이 함께 있는 모습이다. 앉아 있는 지로의 왼쪽에 '에데나 시리즈'의 두 주인공 스텔(파란색 모자)과 아탄(주황색 모자)이 있다.

 

《에데나의 세계》는 어떤 작품인가?

“에데나의 세계(Le Mond d’Edena)”는 <별 위에서> <에데나의 정원> <여신> <스텔> <스라>까지 전체 다섯 편으로 이루어진 그래픽노블 시리즈의 이름이다. 이 시리즈는 1983년에 프랑스의 자동차 제조업체 시트로엥이 뫼비우스에게 자사 홍보용 단편 만화를 의뢰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별 위에서>였으며, 이후 뫼비우스는 생태주의적 관점을 바탕으로 스텔과 아탄이라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20년 가까이 발전시켜 나갔다.

한국어판으로는 처음 소개되는 《에데나의 세계》는 프랑스의 카스테르망 출판사가 펴낸 동명의 원서를 옮긴 것이다. 이 책에는 “에데나의 세계” 본편 다섯 편 외에 시리즈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복원>, 에필로그인 <복원하는 자들>, 번외편이라 할 수 있는 단편 <나폴리를 보다> <죽어서 나폴리를 보다> <다시 행성으로…>가 실려 있다. 세 편의 단편에는 스텔, 아탄, 코쟁이 같은 에데나 시리즈의 주요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내용 면에서 본편과 상관이 없고 대사는 거의 없이 그림만으로 뫼비우스의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에데나의 세계》의 두 주인공 아탄(왼쪽)과 스텔

예측 불허 우주 모험극의 외피를 입은 생태주의적, 영적 우화

《에데나의 세계》는 우주를 돌아다니며 일하는 정비공 ‘스텔’과 ‘아탄’이 낙원이라 불리는 행성 ‘에데나’를 여행하며 행성을 지배하는 사악한 존재에 꿈의 힘으로 맞서는 이야기이다. 

스텔과 아탄은 행성을 순회하던 중 전파 간섭에 휘말려 당구공을 닮은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다. 그곳에서 둘은 사막 위에 우뚝 선 피라미드의 신비로운 힘에 이끌리고 피라미드는 두 사람과 다른 주민들을 우주로 데려간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난 뒤 스텔과 아탄은 전설적인 낙원 행성 ‘에데나’에서 깨어난다. 기계 문명에 의지해 철저히 인공적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은 생존을 위해 거친 자연에 적응하면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 간다. 그러다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나고 두 사람은 각자 에데나를 떠돌게 된다. 아탄은 ‘아버지’라 불리는 지도자가 통제하는 기괴한 도시로 끌려가고, 아탄을 찾아다니던 스텔은 행성의 비밀을 알고 있는 신비한 존재 ‘마스터 뷔르그’를 만나 아탄을 다시 만날 실마리를 얻게 된다. 에데나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인가? 스텔과 아탄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에데나 시리즈의 출발 

이 시리즈는 1983년에 뫼비우스가 시트로엥 사로부터 받은 제안에서 시작되었다. 시트로엥은 자사의 독점 판매권자들에게만 배포할 용도로 우주 이야기를 담은 6페이지짜리 홍보용 만화를 그려줄 수 있는지 제안해 왔다. 뫼비우스는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곧 “이 제안이 무언가 재미있고 색다른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작품은 처음 계획과 달리 39페이지 분량의 긴 이야기로 완성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별 위에서>이다. 

<별 위에서>는 언뜻 보기에 회사 홍보용 광고로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뫼비우스는 자동차 회사 이름을 작품의 부제(“시트로엥 여행”)로 언급하고 시트로엥이 만든 자동차 ‘트락시옹 아방’ 한 대, 회사의 엠블렘인 거꾸로 된 V자 형태의 우주선 두 대를 등장시킬 뿐이다. 시트로엥 사는 완성된 작품에 크게 기뻐하면서 최고급 한정판 양장본으로 제작해 자사의 독점 판매권자들에게만 배포했다. 

 

단편에서 시리즈로  

단편 <별 위에서>가 어떻게 연작 시리즈로 발전하게 되었을까? 1985년에 이 작품이 서점에서 판매되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을 때, 뫼비우스는 일본에서 윈저 매케이 원작의 <리틀 네모> 애니메이션 각색 작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작품 진행은 여러 가지 문제로 지지부진했고 뫼비우스는 한 달의 휴가를 얻었다. 그 휴가 중에 도쿄의 한 호텔 방에서 <에데나의 정원>의 첫 25페이지를 그렸다. 당시 뫼비우스는 <별 위에서>를 다시 읽으면서 작품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자신의 개인적 고민과 맞닿아 있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뫼비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별 위에서>를 끝맺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등장 인물이 낙원을 향해 출발하는 장면에서 끝이 납니다. 그렇다면 그 마지막 장면에 머무르면서 그 낙원을 독자들이 자유로이 상상하게 두거나 아니면 작가로서 정면으로 맞서서 그렇게 찾아낸 낙원을 그려낸다는 위험을 떠안는 것, 둘 중 하나였습니다.” 

 

그 무렵 뫼비우스는 본성 요법(조리와 가공을 거치지 않은 자연 상태의 영양물을 섭취하는 식이 요법)을 실천하고 식습관을 비롯한 생활 방식, 자신의 삶과 세계관을 성찰하면서 내적 변화를 겪고 있었다. 훗날 “에데나의 세계”에 반영된 개인적 측면에 대해 질문받았을 때 뫼비우스는 “생태주의, 영양(nutrition), 환경, 복원, 변형, 꿈, 영성” 등에 관한 자신의 경험과 의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이후 <에데나의 정원>은 1988년에 발표되었고 <여신>(1990) <스텔>(1994) <스라>(2001)로 이어지면서 “에데나의 세계”라는 환상적인 SF 판타지 서사시가 완성되었다.

 

인간의 미래에 대한 SF적 상상

독자들은 첫 페이지를 열자마자 뫼비우스가 특유의 SF적 상상력과 표현력으로 이미 완벽하게 구축해놓은 가상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주인공인 스텔과 아탄은 아주 먼 미래에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 출신의 인간들이다. (아탄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가인연맹 소속 ‘라즐란’ 행성 출신이자 자유우주길드 회원이며 이름은 아탄 포미엘 벨퐁탄이다.) 두 사람의 대화로 미루어보건대 지구는 아카이브에 저장된 자료를 통해서만 알 수 있고 사자 같은 지구의 동물은 멸종된 지 오래다. 인간은 수백 년 넘게 분자 합성 장치가 만든 정제된 합성 식품을 먹고 살아왔으며, 몸속에 삽입된 생체 임플란트가 외부 자극에 대한 신체 반응을 조절해 건강을 지켜준다. 또 스텔과 아탄은 매일 섭취하는 호르몬 제제와 생체 임플란트 덕분에 성적으로 미발달된 모습으로 살아간다. 두 인물은 인간의 근원, 특히 성(性)과 완전히 단절된 미래의 인간상을 보여준다. 

이렇게 상상된 미래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우리는 이미 건강을 위해 각종 영양소를 알약 형태로 섭취하고 있고 온갖 가공식품에 익숙하다. 여기서 뫼비우스는 현대 의학의 발달로 이미 인간에게 벌어진 일을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스텔과 아탄은 장기 이식이 자주,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때 건강한 삶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인간의 몸을 얼마든지 구성품을 교체할 수 있는 결함 있는 기계 장치로 보는 관점은 낯설지 않다. 

 

자발성과 충동의 회복 그리고 재생의 이야기  

처음부터 이야기는 다소 남성적이지만 때로는 중성적이고 때로는 무성적인 세계에서 펼쳐진다. 스텔이 좀 더 남성적 존재이고 아탄이 좀 더 여성적 존재이기는 하나 두 사람은 무성적 존재에 가깝다. 이 인물들은 뫼비우스 자신의 남성적 측면과 여성적 측면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어주며 그의 내면 깊숙이 있는 무언가를 드러내주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말끔하게 정제된 모습은 <에데나의 정원>에서 파격적인 변화를 맞는다. 

낙원이라 불리는 행성 ‘에데나’에서 두 사람은 난생처음 기계 장치의 도움 없이 살아가야 하는 곤경에 처한다. 뫼비우스에 따르면, 여기서 그는 “자연 환경에서 생존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인공적인 음식 공급이 만들어낸 조건화의 위험”을 보여주고자 했다. 결국 스텔과 아탄은 생존을 위해 결단을 내린다. 두 사람은 지식으로 배워서 알던 과일, 물, 성(性)을 실제로 경험하는데, 여기에는 공포와 두려움, 저항, 재생과 변형이 뒤따른다. 

스텔과 아탄은 정제하지 않은 물과 자연에서 얻은 음식을 먹으며 점차 자발성과 충동을 지닌 인간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 간다. 털이 자라고 2차 성징이 뚜렷이 나타나면서 스텔은 남성의 외모를, 아탄은 여성의 외모를 갖추게 된다. ‘에데나(Edena)’라는 이름, 풍요롭고 아름다운 자연 환경, 각기 남성과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확인한 스텔과 아탄의 모습은 언뜻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에덴동산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뫼비우스는 창세기를 개작했다기보다 설화나 신화에 어울리는 서사적 원형을 바탕으로 삼아 재생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스텔과 아탄은 신의 금기를 어기고 지혜의 열매를 먹은 것이 아니라 죽지 않겠다는 생존의 충동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감정의 재발견

남성으로서 자각한 스텔은 아탄을 향한 욕망과 사랑을 느낀다. 처음에 아탄은 스텔의 갑작스러운 구애에 화를 내고 혼자 떠나지만 곧 오랜 친구로서 스텔의 안전을 걱정하면서 다시 그를 만나려 노력한다. 두 사람은 그것이 우정이든 이성애든 간에 언제나 서로에게 강한 유대감을 느낀다. 이렇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비롯해 정서적 측면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뫼비우스의 전작들에선 보기 드문 일이었다. 뫼비우스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그동안 내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냉소적인 시각으로만 그려냈다는 점이 상당히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그린 인물들이 감정을 지닐 뿐만 아니라 그 감정이 이야기를 이끄는 원동력이 됩니다.” 

 

억압에 맞서 자신의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는 ‘꿈의 힘’

스텔과 헤어져 혼자 황무지를 헤매던 아타나(여성으로서 아탄의 이름)는 괴상한 가면을 쓴 사람들(‘코쟁이’)에게 잡혀서 ‘둥지’라고 불리는 도시로 끌려간다. 에데나의 자연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상징하는 공간이라면, 에데나 한편에 자리 잡은 인공 도시 ‘둥지’는 인간의 개별성과 타고난 본성이 부정당하고 지워지는 공간이다. 

둥지는 ‘아버지’라 불리는 신적 존재가 지배하고 있다. 둥지 주민인 코쟁이들은 모두 ‘아버지’의 유전자를 복제해 태어났으며 개인으로서 이름이 없다. 뫼비우스에 따르면, 코쟁이들이 ‘얼굴’이라고 부르는 가면은 진정한 자신을 숨기고 외부 세계와 소통을 가로막는 뚫을 수 없는 껍질과 같다. 순응주의자인 코쟁이들은 인간의 개별성과 자발성을 부정하고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하며 살아간다. 공포가 지배하는 곳, 개인이 전체의 일부로서만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사회, 무자비한 가부장적 지도자가 주민들을 정신적 ․ 물리적으로 지배하는 ‘둥지’는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은유로도 볼 수 있다. 

작은 틈 하나 없어 보이던 둥지에 외부에서 온 아타나 그리고 ‘바퀴벌레’라 불리며 지하에서 살아가던 버려진 사람들로 인해 균열이 일어난다. 분노한 ‘아버지’는 스텔을 미끼 삼아 아타나를 잡으려 들지만 두 사람은 꿈의 힘을 빌려 맞선다. 꿈을 실현하고 목표를 성취하려면 먼저 자기 내면의 의심을 마주하고 악몽을 여행해야 한다. 뫼비우스는 ‘꿈의 힘’, 즉 자유로운 상상의 힘으로 억압에 맞서 자신을 새롭게 들여다보고 평생의 친구를 찾아가는 두 주인공을 통해 진정한 자기의 재발견이라는 주제를 드러낸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기계의 도움을 받아서가 아니라 사실상 마법과도 같은 꿈의 힘을 써서 평행우주를 가로질러 세상을, 즉 자신의 세상을 창조하는 저마다의 능력을 보게 됩니다.”(뫼비우스) 

 


 

옮긴이

장한라 _ 번역가, 출판 에이전트.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과 불어불문학을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에서 그리스 · 로마 시대의 고전을 읽고 비평했다. 옮긴 책으로는 《그림으로 만나는 인간에 대한 모든 이야기》 《내 글이 구린 건 맞춤법 때문이 아니다》 《버진다움을 찾아서》 《파리지엔의 자존감 수업》 등이 있으며, 저서로 《게을러도 괜찮아》(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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