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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사회과학

이상한 재판의 나라에서

by 교양인 2021. 5. 6.

이상한 재판의 나라에서 _ 정인진

이상한 재판의 나라에서 보도자료.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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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과제인 사법 개혁은 왜 더디기만 한가?
시민 위에 군림하는 ‘이상한 재판’의 나라에서
시민을 위한 정의로운 사법의 길을 찾는다!

내용이 비슷한 사건인데도 왜 판사마다 양형이 들쭉날쭉할까? “재판장은 판결을 선고하면서 피고인에게 적절한 훈계를 할 수 있다.”는 형사소송규칙 147조는 왜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위험한가? 판사의 막말 파문은 왜 끊이지 않을까? 시민들은 법조인들을 자신들을 위해 일하는 공복으로 신뢰할 수 있을까? 저자는 오랜 세월 판사와 변호사로 일하며 답답해하고 분노하면서 직접 겪은 법조계 내부의 문제들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그 원인을 구체적으로 살핀다.
이 책은 왜 오늘날 사법이 불신받는지, 시민 위에 군림하는 법원을 시민을 위해 일하는 법원으로 바꾸기가 왜 이토록 어려운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저자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난 솔직한 고백을 통해 속속들이 보여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독자는 민주주의를 법정의 원칙으로 세우는 사법 개혁이야말로 더 미룰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절박한 과제임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판사들의 내면에 박힌 법관제일주의라는 반시대적 오만을 민주주의 원칙으로 바로 세우지 않는 한 우리의 국민주권은 언제까지나 반쪽짜리 신세를 면치 못할 것임을 이 책은 설득력 있게 이야기한다.

 


법정의 주인은 법조인이 아니라 시민이라는
이 단순한 원칙에서 사법 개혁이 시작돼야 한다 

나는 변호사가 되어서야 법이나 법원이란 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법대(法臺)에 앉아서도 법의 한계를 알고 그 너머 세계가 있음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내려와보니 세상은 훨씬 깊고 넓었다. …… 먼저 사법 과정과 사법 작용이 사건 당사자와 일반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판사는 오만으로 망하고 검사는 공명심으로 망하고 변호사는 탐욕으로 망한다는 언설이 현실로 펼쳐지는 모습을 보았고, 판사·검사·변호사의 욕망과 윤리가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는지 보고 듣게 되었다. 쟁송 속에서만 보던 법과 정의를 넘어 공동체 전체의 광의적 관점에서 그 위치와 기능을 생각하게 되고, 나아가서 법, 정의, 국가, 권리와 의무, 책임과 이익이 얽히고 작용하는 기미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미셀 푸코가 말하는 ‘지배 도구로서 감옥’이나 마사 누스바움의 ‘정의를 위한 사랑’을 관념을 넘어 현장의 상황으로 이해하게 된 것도 변호사가 되고 나서다. - 머리말에서

 

 





2019년 OECD 37개국 중 사법부 신뢰도 최하위 국가
한해 평균 약 50만 건의 고소·고발이 빗발치는 나라
사법 불신, 사법 과잉의 사회에서 올바른 사법의 역할은 무엇인가?

법원의 판결에 대해 신뢰한다는 응답은 29%에 그쳤고, 법원에서 선고하는 범죄자에 대한 형벌이 판사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응답이 86%에 이르는 등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 한국리서치 정기조사(2020년 12월 23일)

1월 10일 대검찰청이 공개한 형사사건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접수된 고소·고발은 5만 545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월 기준으로 2009년 12월 5만 1천561건을 기록한 뒤 11년 만에 가장 많은 것이며, 5만 건을 넘어선 것도 그 후로 처음이다. - 연합뉴스(2021년 1월 10일)

 



《이상한 재판의 나라에서》는 우리 사법의 현주소를 진단하며 사법의 올바른 역할을 촉구하는 정인진 변호사의 첫 책이다. 판사 경력 24년, 변호사 경력 17년의 베테랑 법조인인 저자는 오랜 시간 법정을 드나들며 숱한 재판의 현장을 목도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밥과 벌이라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를 놓고 목숨이라도 건 듯 싸웠지만, 재판의 결과는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판사들은 때로는 오만하고 때로는 냉담했고 이상한 사법 철학을 앞세워 사건을 판단하거나 맹목적으로 판례를 추종했다. 도대체 왜 판결은 시민의 눈높이에서 미치지 못하고 자꾸 엇나갈까? 판사의 사법 철학은 왜 이리 들쭉날쭉할까? 판결의 편차를 줄이고 시민들이 만족할 만한 사법 서비스를 위해 사법 개혁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가 되어 겪은 이상한 재판과 엉터리 판사 이야기를 담고 있다. 2장은 법관의 사법 철학을 주제로 삼아 민주주의 원칙이 살아 있는 이상적인 법정의 모습을 그린다. 3장에서는 낙태죄, 표현의 자유, 양도소득세법, 위안부 손해배상 사건 같은 논쟁적인 법적 이슈를 다루고, 4장에서는 사법 독립과 사법 개혁의 본의에 주목하며 ‘사법 농단 사건’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5장에서는 최근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검찰 개혁, 법관 탄핵사건을 비롯해 중요한 법률과 법률가를 둘러싼 문제를 살펴본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저자가 직접 보고 겪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 우리 사법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그 문제의 원인을 법의 논리와 사법 체계의 구조에서부터 법률가의 내면세계에 이르기까지 다각도로 살펴보며 실질적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는 데 있다.

 


“사법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정인진 변호사는 ‘이상한 재판’을 멈추려면 먼저 법관의 사법 철학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올바른 사법 철학의 핵심은 바로 ‘민주주의’에 대한 굳은 신념이다. 특히 사법권은 국민이 필요에 의해 위임한 것일 뿐 판사 개인의 능력으로 얻은 훈장이 아니라는 당연한 진리를 내면화해야 한다. 법정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안다면 판사가 “여자가 돼 가지고……” 하며 막말하는 일도, 구형도 최후진술도 듣지 않고 판결 선고 기일을 지정하는 일도, 설명 없이 재판 기일을 계속 미루는 일도, 증인은 한 명만 신청할 수 있다거나 증인 신문 시간을 10분으로 제한하는 일도 절대로 없을 것이다.

 



법관이 쥐고 있는 권력, 즉 사법권은 사법시험이나 변호사시험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사법연수원이나 로스쿨의 졸업 성적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법원의 조직이나 법령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사법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이 원칙이 탁상의 이론이 아니라 법관 개개인의 신념으로 자리 잡고 더 나아가서 내면화되고 체화되어야 제대로 된 재판이 이루어진다고 나는 믿는다. _ 사법 철학으로서 민주주의(100쪽)

적법절차, 구술심리주의, 공판중심주의는 결국 당사자가 억울하지 않게 배려하려는 법적 장치다. 당사자가 바라는 바는 결론 바르게 내주고, 지든 이기든 간에 내가 하고 싶은 말 좀 제대로 들어주고, 법관이 보기에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 간에 내가 내고 싶은 증거는 모두 받아서 조사해 달라는 것이다. 이것이 법정의 민주주의다. _ 사법 철학으로서 민주주의(101~102쪽)

 

 


법정에서 필요한 ‘상상력’

 

판사에게 필요한 것은 법령이 전부가 아니다. 판사는 바른 결론을 내기 위해 법정에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여기서 상상력이란 법률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소설 쓰기가 아니라 인식의 지평을 여는 ‘공감능력’이다. 판사가 자리를 바꾸어 법대 아래에서 사건을 보는 것, 사건의 진실은 당사자가 가장 많이 알고 판사는 가장 적게 안다는 이치를 깨닫는 것,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마냥 살아 움직이는 현실을 판례에 끼워 맞춰 재단하지 않는 것. 가장 중요하게는 법대 아래의 사람들을 타자(他者)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당사자라고 가정하여 그 자리에 서보기, 이것이 법관이 지녀야 할 상상력의 요령이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 눈물겨운 이야기를 내 이야기로 환치하고, 그러고 나서 비로소 어떤 행위를 평가하라는 것이다. …… 현실은 동태(動態)다. 때로 답답하고 갈 데 없다. 그런데도 이미 완고해진 질서는 고개를 외로 꼬고 서서 모든 불협화음을 가로막는다. 그 벽을 뛰어넘으려는 의식 작용, 그것이 상상력이다. 법이라는 제도와 기록이라는 서물(書物)을 넘어 살아 들끓는 현실을 바로 보려면 상상력 말고 기댈 곳이 없다. _ 법관은 재판을 할 때 재판을 받는다(84·85쪽)

사건의 진실을 적어도 당사자는 안다. 물론 상호간에 불완전한 기억이나 이해관계의 대립 등으로 인해 다소의 오해는 있겠지만, 기본적 사실은 쌍방 당사자가 다 알고 있다. 의사와 비교해보면 이렇다. 환자는 그저 증세만 알 뿐 병명을 알아내는 것은 의사다. 법률 분쟁에서는 법관이 사실을 가장 적게 안다. 그다음으로 변호사가 조금 더 알고, 당사자는 전부 안다. …… 이렇게 단순한 이치를 법관이 모르고, 그러면서도 다 아는 양 재고 있을 때, 그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점에서 법관이 겸손할 수는 없는 일일까. _ 편견과 예단의 위험성(124쪽)

 

 

 


적극적 사법의 필요성

 

‘사법 적극주의’란 법 문구에 얽매이지 않고 정치적 목표나 사회 정의 실현 등을 염두에 두고 적극적인 법 형성 또는 법 창조를 중시하는 사법 철학이다. 저자는 사법이 시민들의 신뢰를 얻으려면 법관이 적극성을 띠어야 할 때도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사회적·경제적 약자나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문제에서는 기존 법령을 형식적으로 추종하는 데서 벗어나 헌법의 근본 가치를 되새기는 적극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헌법의 통치 구조 속에서 법원은 본래 대의정치와 다수결의 원리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기능을 수행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이런 기능을 수행할 때는 사법 적극주의의 입장에 서는 것이 옳다. 예를 들어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보장, 표현의 자유 보장, 형사 사법 절차의 개선, 인격권 보호, 가족 제도, 남녀 평등,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 보호, 각종 차별과 혐오의 금지 등 문제에서 특히 그렇다. _ 사법 불신의 원인(217~218쪽)

 

 


누구를 위한 법인가?

 

이 책의 3장에서는 최근 우리 사회의 뜨거운 논쟁거리인 낙태죄, 차별금지법, 표현의 자유, 명예훼손죄, 조세법을 비롯한 주요 법률문제를 다룬다. 〈낙태는 전면적 비범죄화가 옳다〉에서는 미국의 낙태죄 판결의 역사를 돌아보며 2019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법 공백 상태에 놓인 낙태권 논의를 깊이 들여다본다. 〈‘숨 쉴 공간’과 메마른 세계관〉에서는 2020년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판결에 등장한 ‘숨 쉴 공간’이라는 표현의 뜻을 분석하며, 표현의 자유의 의미와 포용성 있는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고민한다. 〈최소한의 법적 안정성〉에서는 부동산 양도소득세 비과세 규정의 변화무쌍한 변천 과정을 비판적으로 짚으며, 시민의 안정된 삶을 위한 ‘법적 안정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숨 쉴 공간이란 말 그대로 숨 쉬어 살아남을 공간,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이다. 모든 말이 완벽하게 사실에 맞아 들어가야 하고,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불호령이 내리고 육모방망이가 춤추는 사회엔 숨 쉴 공간이 없다. …… 변호사로서 판결을 읽으며 답답해지는 순간은 판관의 판단이 정확성의 요청을 넘어 무릇 인간사에서 늘상 있게 마련인 사소한 오류를 일체 용납하지 않으면서 맥락을 무시하고 메마른 세계관으로 사건을 재단하는 것을 목격할 때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것도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에게 이런 공간을 허락하는 것을 뜻한다. 왜 성폭행을 당한 바로 그날 신고하지 않았느냐, 왜 그 사건 후에도 가해자를 전과 같이 대했느냐 따위의 비난으로 가해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옳을까.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_ ‘숨 쉴 공간’과 메마른 세계관( 170쪽)

차별금지법안에는 교회에서 동성애가 죄라고 말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처벌하는 조항이 없다. 이 법안은 고용 관계, 교육, 재화와 용역의 공급 관계, 행정 서비스 등 네 영역에서 차별 행위를 규제하려는 것이다. 성 소수자를 정서적으로 수용하지 못함은 개인적 성향의 문제이지만, 그들에 대한 차별 금지에 반대함은 법적·사회적 영역의 문제다. 양자는 서로 다르다. _ 차별금지법은 통과되어야 한다(165쪽)

 

 


사법 농단 사건과 사법 개혁

 

2017년 처음 세상을 알려진 ‘사법 농단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사법부 수뇌부가 상고법원의 설치라는 조직의 이익을 위해 정치권력의 골칫거리인 재판을 관리해주는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고법원을 세우면 대법원은 사회적 파장이 크거나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는 중요한 사건만 맡게 되니, 대법원의 고질적 문제인 과도한 업무량을 줄이고 재판의 질을 높일 수 있으리라 머리를 썼다. 나름의 ‘사법 개혁’을 위해 재판권 독립의 가치를 스스로 훼손하는 사법사의 유례없는 일을 벌인 셈이다.
저자는 사법 농단 사건의 이런 ‘아이러니’에 주목하며, 사법 개혁이란 본래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묻는다. 개혁의 수혜자가 조직이 아니라 시민이 되어야 함을 이해한다면, 사법 농단 사건은 결코 사법적 단죄로 끝나서는 안 되며, 사법부 전체가 통렬하게 반성해야 하는 계기로 삼아, 열린 마음으로 오늘날 시민들이 법과 법원에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도 사법 농단 사건의 파문 이후 기대감 속에 새로 구성된 현 대법원은 그저 ‘농단하지 않기’에 안주하는 것은 아닌가? 저자는 판사 수를 늘리는 것도, 사법 행정권에 외부 인사를 참여시켜 민주적 통제를 이루는 것도 제대로 추진할 의사가 없는 현 대법원을 비판하며, 외부의 비판을 사법권 독립의 침해로 치부하고 귀를 닫는다면 진정한 사법 개혁의 길은 요원하다고 역설한다.



사법 농단 사건은 넓게 보아 시대적 과제라는 적폐 청산 작업의 일환으로 다뤄지고 있는데, 이 사건이 사법권 독립과 관련해 사법사에서 가지는 중대한 의미는 바로 그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묻혀버릴 가능성이 있다. …… 진정으로 염려스러운 점은 집권 세력의 정책 목표 중 하나라는 사법 개혁이 하나의 정치적 구호로만 기능하거나, 사법 농단 사건의 재판으로 환치되어 그 결과를 기다리다가 결국 무죄 판결 속에서 실종되어버리는 것이다. _ 진정한 사법 개혁을 위하여( 223쪽)

오늘날 법관의 지평을 넓히려면 우선 유례없이 강화된 재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하여 검사, 변호사, 법무사, 법무관, 법학 교수 등 법률 사무와 법학 교육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법 운영에 관하여 사법부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 열린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나아가 사법부의 문턱을 드나드는 당사자나 일반 국민으로부터 오늘날 그들이 법과 법원에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아야 한다. 법관은 독립하여야 하나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 _ 사법권 독립, 양날의 칼(238~239쪽)

 

 

 


지은이

 

정인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7기로 수료했다. 1980년 판사로 임관하여 일하다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마지막으로 2004년 법원을 떠났다. 현재 법무법인 바른의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조 윤리를 강의했다. 사법 과정론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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