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인/사회과학

민달팽이 분투기

교양인 2025. 11. 4. 14:01

민달팽이 분투기 _ 지수

 

 “집은 인권이다”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을 떠나 ‘집다운 집’을 찾는
민달팽이들의 주거권 투쟁기

 


 

사람답게 살 권리를 되찾기 위한
집 없는 청년들의 분투기

집 없는 ‘민달팽이’는 오늘날 청년 세입자들의 자화상이다. 2023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9세 이상 34세 이하 청년 가구의 80퍼센트가 세입자로 산다. 청년들이 세입자로 머무는 기간은 점점 길어지고, ‘지옥고’로 불리는 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같은 열악한 공간에 내몰리는 청년 주거 빈곤층도 계속 늘고 있다. ‘집다운 집’을 마련하기 위해 빚을 짊어진 청년들은 최근 들어 갭투기꾼들의 표적이 되었고 그 결과는 참혹하다. 2023년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된 전세 사기 피해자가 3만 명을 넘어섰으며, 그중 75퍼센트가 20·30대 청년이다. 전세 사기는 청년 세입자들에게 ‘사회적 재난’이나 다름없다.

현실이 이런데도 우리 사회는 청년들이 세입자로서 겪는 고통과 불안을 심각한 사회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 나중에 집을 사면 자연스레 해결될 일시적 불편함으로 치부하거나, 젊을 때 한 번쯤 겪어도 좋을 ‘사회 경험’으로 포장한다. 많은 청년들을 파산과 절망으로 내몬 전세 사기 피해조차 미숙한 사회 초년생들이 겪는 개인적 불행으로만 여길 뿐, 주택임대차 시장의 구조적 문제로는 좀처럼 논의되지 않는다. ‘집’ 문제에서 청년은 언제나 미래에 아파트를 구매할 소비자이거나, ‘영혼까지 끌어모아’ 수억 원의 빚을 감당할 대출 수요자다. 왜 청년의 주거 불안은 사소한 일로 여겨지는가. 왜 청년 세입자의 이야기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가.

 

청년이 살 집은 어디에 있는가?
불평등한 집의 질서를 바꾸는 주거권 현장의 기록

《민달팽이 분투기》는 주거 불안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현실을 통해 세입자의 권리가 존중되지 않는 한국 사회의 주거 불평등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청년 주거권 단체 ‘민달팽이유니온’에서 10년 가까이 주거권 운동을 펼쳐 온 활동가 ‘지수’는 현장 활동가의 시선으로 청년 세입자들이 겪는 주거 문제를 기록하고 더 나은 ‘집’의 미래를 모색한다.

좁고 열악한 방, 불법 중개와 불법 임대, 보증금을 떼이고 사기당하는 경험 속에서 세입자의 권리는 언제나 위태롭다. 이 책은 오늘날 청년의 주거 위기를 세입자의 권리가 작동하지 않는 구조적 모순으로 읽어낸다.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임대차 시장에 만연한 부조리한 관행이 어떻게 세입자의 삶을 옭아매는지 보여준다. 또 2000년대 후반부터 주거 정책의 기조로 자리 잡은 대출 중심의 지원책이 오히려 주거 양극화를 심화하고, 안전망이 되어야 할 공공 임대가 턱없이 부족해 주거 취약 계층조차 보호하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되짚는다.

《민달팽이 분투기》는 ‘집’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통념을 뒤집고, 집을 권리로 선언하는 세입자들의 투쟁기다. 불안한 주거 현실에 맞서 모두의 주거권을 외치는 이 책은 우리가 어떤 시민으로, 어떤 이웃으로 살아가야 할지 되돌아보게 한다.

 

청년 주거권 활동을 하면서 내가 세운 목표는 ‘세입자’로서 청년이 겪는 주거 불안을 세상에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는 청년을 현재의 세입자로 보기보다 미래의 주택 구매자로만 바라본다. 그래서 세입자로서 겪는 불안과 어려움을 일시적 문제로, 사소한 일로 치부하곤 한다. … 모든 청년 세입자가 자라서 중년의 집주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집을 소유할 수 없는 청년 세입자는 어떤 꿈을 꿀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그의 현재를, 그의 꿈을 억압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게 청년 주거 문제의 해결은 단지 한 세대의 고통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한정 짓는 사회의 틀을 함께 바꾸기 위해 상상하고 실천하는 과정이다. _ 머리말

 


 

‘부동산’에서 ‘주거권’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는 가장 긴급한 목소리

청년은 ‘주거권’을 원한다
- 부동산 정책과 청년

“10·15 대책은 청년 주거 사다리 끊는 부동산 테러”, “부동산 대책에 희망 꺾인 청년들”, “청년 세대에게는 주거 약탈 정책”, “부동산 대책은 청년 죽이기법”

10·15 부동산 대출 규제 발표 이후, 청년 세대의 박탈감과 상실감을 부각하는 자극적인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정말 이런 말들이 청년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을까? 오늘날 청년 세대가 겪는 어려움이 과연 대출 규제 때문일까? 청년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겪는 주거 문제와 고통은 외면한 채, ‘청년’이 정쟁의 도구로만 쓰이는 현실에 분노한다. 《민달팽이 분투기》는 청년 당사자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진짜 주거 정의를 묻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9억 원짜리 집을 사면 받을 수 있는 이자 할인 쿠폰도,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으면 한 번 더 청약에 당첨될 수 있는 기회도 아니다. … 나를 보호하는 사회 안전망이 부재한 사회, 나와 가족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사회, 혹시나 정부를 믿었다가 전세 사기를 당하는 사회에서 누가 미래를 말하고 현재의 안정을 말할 수 있을까. 더 많은 공공 임대, 아동을 포함한 주거 빈곤층에 대한 직접적인 주거·돌봄 지원 체계, 더 나아가 주택의 탈상품화를 고민하는 길 위에서 더 나은 사회에 대한 희망이 열릴 것이다. _ 183~184쪽

 

“모든 불안은 세입자의 몫”
- 불량한 주택부터 보증금 미반환까지

《민달팽이 분투기》는 청년 세입자가 집을 구하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불평등한 현실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본다. 우리 사회에서 세입자의 권리는 극도로 취약하다. 불법건축물과 최소한의 주거 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한 집들이 시장에 넘쳐나고, 돈이 부족한 청년들은 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같은 열악한 공간을 전전하며, 자신들의 거처를 ‘지옥고’라 자조적으로 부른다. 계약의 공정성을 보장해야 할 공인중개사는 집주인의 편에 서서 세입자에게 부정확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집주인은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런데도 피해자를 탓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런 집을 계약한 게 문제야.” “본인이 부주의해서 당한 거 아니냐.” 모든 책임은 세입자에게 있는 걸까? 이 책은 부조리한 관행이 지배하는 임대차 시장의 민낯을 드러내며, 세입자가 겪는 주거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적 통념에 정면으로 맞선다.

 

급하게 집주인이 소개해준 근처 고시원을 찾아갔다. 고시원 관리인은 내게 창문 있는 방과 창문 없는 방 두 곳을 보여주었다. 창문 있는 방은 창문 없는 방보다 5만 원 비쌌지만, 방 한가운데에 콘크리트 기둥이 하나 있었다. 관리인은 어차피 들어와서 잠만 잘 거라면 창문이 없어도 괜찮을 거라고, 콘크리트 기둥은 인테리어에 활용하기 좋다고, 이전에 살던 여학생이 여기에 액자를 걸어 두며 예쁘게 꾸미고 살았다고,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았다. _ 10쪽

내가 만난 한 세입자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지만 누수 문제가 심해 결국 스스로 이사 나가는 것을 ‘선택’했다. 이걸 선택이라 말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세입자는 계약 만료 시점에 맞춰 새로운 집을 계약했지만 집주인이 일방적으로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통보해 결국 새집 계약금을 전부 잃었다. 돌려준다는 약속을 믿었을 뿐인데 이중으로 돈을 날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 세입자들은 집주인의 현금 융통이 원활하길, 사업이 망하지 않길, 보증을 선 게 있다면 그것도 무탈하길, 한마디로 집주인의 안녕을 바라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_ 45쪽

많은 중개사가 자신이 세입자에게 불충분하거나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심각한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깡통’ 여부를 확인해줄 의무가 없다는 인식이 업계 전반에 깔려 있다. 이런 현실에서 세입자는 중개 서비스를 이용하고도 보호받지 못하며, 계약의 위험은 온전히 세입자 몫으로 남는다. _ 70쪽

 

“전세 사기는 사회적 재난이다”
- 청년의 얼굴을 한 전세 사기

이 책에는 저자가 청년 주거 상담과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 활동을 이어 오며 만난 세입자들의 절박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가짜 중개사에게 속아 계약금을 잃을 뻔한 청년, 갑자기 집주인이 바뀌어 계약 전에 확인한 모든 서류가 소용없게 된 신혼부부, 집이 경매에 넘어가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고 쫓겨난 세입자, 전세 사기 이후 파산이나 회생을 권유받고 고민하는 피해자….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모두 한목소리로 말한다. 전세 사기는 집을 자산으로 취급하는 사회적 인식과 세입자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허술한 제도가 만들어낸 비극이라고. 저자는 이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국가의 역할과 책임을 묻는다.

 

(한 신혼부부의 경우) 계약한 지 몇 달 만에 집주인이 바뀌었고, 이사를 나가려 하자 새 집주인은 세금이 밀려 보증금을 돌려줄 능력이 없다며 “보증보험으로 돈을 받든지 대신 들어올 세입자를 구하라”고 했다. 세입자가 계약 당시 꼼꼼히 확인했던 모든 정보가 한순간에 쓸모없어졌다. _ 41쪽

감정가 3억 원짜리 집을 4억 3천만 원으로 부풀리고, 세입자가 자신의 이름으로 그만한 돈을 대출받으면 분양 대행업체가 거기서 수수료를 떼어 가짜 중개사 등과 나누는 것으로 한 사이클이 돌아갔다. 실제 계약을 체결할 때는 미리 섭외한 근처 중개 사무소에 약간의 돈을 주고 계약서 대필을 맡겼다. 그래도 돈이 남았다. 대단한 부동산 할인 패키지처럼 포장되었던 대출 이자 지원도 결국 세입자가 어렵게 구한 돈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_ 57~58쪽

“저희가 많이 해봤는데 이거 답이 없습니다.” “회생이 제일 나아요.” 어떻게 하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회생이 가장 낫다는 답을 듣고 황당함을 느꼈다. 뭔가 잘못됐다. 수현 씨는 되묻고 싶었다. ‘집주인이 파산했는데 왜 나도 따라서 파산・회생해야 하지?’ 수현 씨는 보증금을 되찾기 위해 발로 뛰는 내내 세상이 잘못됐다고 느꼈다. _ 88쪽

 

 

“집은 인권이다”
- 보편적 주거권을 향하여

저자는 청년의 주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근본적 해법으로 ‘보편적 주거권’을 강조한다. 전세자금 대출, 한시적 월세 지원, 행복주택 등 이른바 청년을 대상으로 삼는 주거 정책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며, 오히려 고령층과 빈곤 가구를 비롯한 주거 취약 계층을 소외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것은 구조적 주거 불평등이다. 저자는 집을 자산 증식의 수단이나 상품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이 존재할 자리에 대한 ‘기본적 권리’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집은 수익을 내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공간이기에, 집을 권리로서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행복주택과 청년안심주택은 주거 정책이 지켜야 할 공공성의 원칙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있다. ‘청년’을 위한다는 정책이 주거 현실을 왜곡하고, 논의의 방향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예를 들어 당장 눈앞에서 집값이 급등하자 우리는 이런 혜택을 두고 누가 더 힘들고 열악한지 경쟁하는 모순에 빠진다. “미래 세대인 청년과 신혼부부를 우선해야 한다”, “평생 고생한 고령층을 우대해야 한다”, “저소득층을 배려해야 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중간층은 역차별당하고 있다”. 결국 ‘을’들 사이의 싸움만 남는다. _ 158쪽

청년 주거 정책, 더 나아가 청년의 주거권은 청년만을 위한 ‘혜택’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단지 기존 질서에 청년을 편입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다. 우리는 이제 청년을 포함하는, 그래서 청년의 얼굴도, 세입자의 얼굴도, 주거 빈곤층의 얼굴도 있는 보편적 주거권의 관점에서 이야기해야 한다. 모두의 주거권을 함께 요구하자. _ 158쪽

 

청년들이 ‘영끌’ ‘빚투’ 해서 집 산다고?
- 청년이라는 포장지

주거권 활동가이자 청년 당사자로서 저자는 ‘청년’이 집값을 떠받치는 명분으로만 호명되는 현실을 강력하게 비판한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이나 ‘빚투’(빚내서 투자) 같은 신조어가 청년을 설명하는 언어로 쓰이지만, 실증 연구들은 대출로 집을 살 수 있는 청년은 극소수에 불과할 뿐, 대부분의 청년들이 전월세 보증금을 마련하기에도 벅찬 현실을 살아간다고 설명한다. 그런데도 이런 말들은 마치 청년 세대 전체의 모습인 양 부풀려지고, 나아가 청년들의 불안을 부추긴다. “청년 세대를 위한다”는 구호는 재개발을 추진하거나 시장 규제를 완화하는 데 자주 동원된다. 개발의 논리 속에 쫓겨나는 청년 세입자의 삶은 보이지 않는다. 청년 세입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더 많은 대출일까, 쫓겨나지 않을 권리일까?

 

국토부장관은 청년들의 주거 고민을 해결해 “꿈과 희망을 되찾아주겠다”는 정치적 발언을 앞세웠지만, 핵심 정책은 그린벨트 해제와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조치였다. 재개발 담론은 ‘청년 창업 공간’, ‘청년 혁신 센터’ 같은 그럴듯해 보이는 이름들과 함께한다. 정작 청년의 현실은 세입자에 가깝지만 그 호명은 언제나 소유자를 위한 것이다. _ 116쪽

재개발 지역에 살다가 쫓겨나는 이들의 이야기에는 ‘청년’의 얼굴이 없다. 서울 아현동에서 어머니와 월세로 살던 한 30대 청년은 집이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강제 퇴거를 당했다. 그 청년은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는 작은 공공 임대 주택을 소원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끝내 죽음으로 탄원했다. 철거민 박준경 열사의 이야기다. 그의 죽음에 청년이라는 단어를 붙여 문제 제기하는 정치인이나 언론은 거의 없다. 그들이 써먹는 ‘청년’은 포장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_ 116쪽

 

평생 세입자로 살아도 괜찮은 사회
- 민달팽이 세대가 꿈꾸는 세계

‘제너레이션 렌트(Generation Rent)’는 평생 세입자로 살아가는 세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영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높아진 집값과 민간 임대 시장의 불안정으로 인해 청년 세대가 자기 소득만으로는 집을 살 수 없으리라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내 집을 마련할 만한 경제적 수준에 이르지 못할 세대, 이른바 ‘제너레이션 렌트’, 다른 말로 ‘민달팽이 세대’의 등장이 현실이 되고 있다. 평생 세입자로 살아간다면 어떨까? 우리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쩌면 평생 세입자로 살지도 모른다’는 ‘민달팽이 세대’의 현실이, 우리 세대의 불안 담론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 불안을 통해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다음으로 나아갈 힘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불안은 변화의 씨앗이다.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열망의 토대이며, 불안을 야기한 사회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힘이다. _ 111쪽

 

‘내 집’을 마련하면 모든 주거 문제가 해결될까?
- 돌아오지 못한 원주민의 이야기

우리 사회는 집을 소유한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이 책은 ‘소유자 중심’의 질서가 어떻게 집 없는 이들을 배제하고, 나아가 사회 전체의 불안을 키우는지 보여준다. 서울을 떠나 귀농을 선택한 청년들 역시 세입자의 설움을 겪는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바라는 공공 주택 사업은 소유자들의 극심한 반대 속에 제자리걸음을 반복한다. 문제는 한국의 도시 개발 논리가 주택을 소유한 사람에게도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집’을 마련하면 모든 주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은 그래서 허상에 가깝다. 

 

빌려 사는 것으로는 정주를 이룰 수 없어 구매하는 것으로 ‘안정’을 확보하려 했는데, 이것마저 불가능하다면 그다음 선택지는 무엇일까? 빌려 사는 이들이 겪는 비극에서 벗어나려면 ‘소유’만이 해답이라고 말하는 이 시스템에서는 결국 답은 하나뿐이다. 바로 더 많은 소유다. 비극의 당사자가 되지 않으려면, 차라리 그 비극적인 굴레를 작동시키는 자본가의 위치에 서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_ 134쪽

어떤 이들의 거처는 분명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는 개발이 누구의 이익을 대변해 왔는지, 우리에게 필요한 도시의 모습이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이토록 반짝이고 비싸진 도시가 누군가의 삶터를 밀어낸 결과라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지 물어야 한다. 빼앗긴 것을 되돌리고, 쫓겨난 이들의 살 자리를 다시 만들어내며, 오랫동안 상품으로 전락한 주택들을 다시 사회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_ 137~138쪽

 

다시 ‘집’을 생각한다
- 관계가 있는 공간

집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 ‘관계 맺음’과 ‘돌봄’의 터전이다. 저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청년 주거 공동체 ‘달팽이집’의 경험을 들려주며 쫓겨나지도 쫓아내지도 않는 집, 인간다운 주거 생활의 의미를 되짚는다. 또한 홈리스, 성소수자, 쪽방촌 거주자들의 ‘주거 안정’에 대한 고민을 통해 편안한 ‘내 집’, 진정한 안식처의 의미를 묻는다. 저자는 주거의 문제를 공존의 문제로, 함께하는 삶의 방식으로 다시 쓴다.

 

내가 여러 달팽이집을 거쳐 살며 배운 것이 있다. 세입자의 권리가 충분히 보장될 때, 세입자인 우리는 서로를 살피고 돌볼 여유를 갖게 되고, 그 여유 속에서 크고 작은 돌봄과 연대가 자라난다는 것 말이다. 우리는 어디서든 마주치면 서로 인사를 건네고 함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다. 두통약이 없을 때 스스럼없이 도움을 청한다. 눈이 쌓이면 함께 모여서 눈도 치우고 눈싸움도 한다. 화단 정리를 하자고 모여서 난생처음 톱질도 해본다. … 우리는 서로 만나고 교류하기 위해 기꺼이 애쓴다. _ 204쪽

“내가 나를 연기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 곳, 내가 언제든 그냥 나로서 있을 수 있는 곳, 그리고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 그게 진짜 집이라고 생각해요.” _ 219쪽 

‘인간다운 주거 생활’은 무엇일까? 아마도 자신의 터전 안에서 안전, 평화, 존엄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삶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다. 집 안팎에서 다른 사람들과 맺는 인간다운 관계가 함께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_ 15쪽

 



지수

주거권 활동가. 2016년부터 주거권 활동을 시작해 주거 상담과 교육, 정책 제안, 세입자 권리 확대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 왔다. 2021년부터 2025년 초까지 청년 주거권 운동 단체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을 맡아, 청년의 삶을 통해 우리 사회의 주거 불평등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2022년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전세 사기 사태에 대응하며, 2023년 ‘전세 사기·깡통 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대책위원회’ 출범에 함께했고, ‘전세사기특별법’ 제정에도 힘을 보탰다. 현재는 ‘인권운동사랑방’에서 활동하며 ‘집은 인권’이라는 믿음 속에 인권을 더 깊이 공부하고 실천하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