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 인류의 역사와 지혜가 집약된 위대한 고전,
‘구약성서’의 주요 인물과 사건을 한눈에 읽는다!
신의 정의에 관한 책인 《구약성서》에는 장대한 규모의 인간과 사물과 언어들이 담겨 있어
그리스와 인도의 문학에는 그에 비견할 만한 것이 없을 정도다.
우리는 이 장엄한 인간의 자취에 공포와 외경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 프리드리히 니체
《교양으로 읽는 구약성서》는 구약성서에서 ‘모세오경’으로 분류되는 다섯 권의 책과 열두 권의 ‘역사서’, 열일곱 권의 ‘예언서’를 각각 세 권으로 나누어, 구약성서 속 주요 사건과 인물들을 따라 누구나 구약성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쓴 책이다.
저자는 비약과 상징으로 가득 차 있는 성서의 빈틈을 신학적 지식, 인문학적 교양, 문학적 상상력으로 채워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 입체적이고 생동감이 넘치는 ‘이야기책’으로 엮어냈다. 또한 구약성서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메소포타미아부터 이집트, 가나안(팔레스타인),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에 이르는 고대 세계의 정치적‧지리적 상황과 신화, 종교, 관습 등 근동 문명에 관한 배경 지식을 더해 머릿속으로만 상상해 왔던 성서의 세계를 독자의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놓는다. 《교양으로 읽는 구약성서》는 서양 문화의 뿌리가 된 고전으로서 구약성서를 읽으려는 비기독교인과 구약성서를 처음 접하는 종교인 모두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오늘날 구약성서를 고전의 반열에 올리기를 망설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전으로서 성서’를 읽으려다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성서의 낯선 언어와 옛 말투의 생경함 탓에 책장을 덮어버리는 사람들이 상당수인 것 또한 사실이다. 구약성서는 유대인 특유의 언어와 문화와 종교를 바탕으로 쓰였기 때문에 종교인조차 그 행간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성서 읽기를 어렵게 하는 장벽들을 신학적 지식과 인문학적 교양이라는 도구로 무장하고 솜씨 좋게 넘어선다. 특히 인물들의 심리를 꿰뚫는 저자의 문학적 상상력은 구약성서를 한 편의 재미있는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다.
《교양으로 읽는 구약성서》는 1권 ‘모세오경과 유대인의 탄생’, 2권 ‘역사서와 왕들의 시대’, 3권 ‘예언서와 고난의 시대’로 구성된다. 저자는 3년에 걸쳐 200자 원고지 3,700장 안에 구약성서의 세계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저자는 성서를 글자 그대로 믿고 절대시하는 축자주의적 해석에서 벗어나 구약성서를 유대교와 기독교의 기원이 담긴 책이자 유대인의 역사서로 바라보는 데서 출발한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단순한 종교의 경전이 아니라, 수많은 주변 민족과 경쟁하면서 자신들의 역사를 세운 이스라엘 민족의 저항과 투쟁의 드라마를 만나게 될 것이다.
1권 모세오경과 유대인의 탄생
천지 창조에서 유대 민족의 탄생까지, 아담과 하와에서 모세까지,
해방과 자유를 향한 이스라엘 민족의 투쟁 드라마!
첫 번째 책 ‘모세오경과 유대인의 탄생’은 우주의 창조와 인류의 기원을 담은 <창세기>,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탈출과 40년의 광야 생활을 다룬 <출애굽기>와 <민수기>, 이스라엘의 종교 의식, 예배, 일상생활 속에서 지켜야 하는 율법을 규정한 <레위기>와 <신명기>를 다룬다.
구약성서는 종교 경전이기 이전에 유대 민족의 역사이며, 나아가 수천 년 전 인류 문명이 담긴 경이로운 기록이다. 에덴 동산의 생명나무를 지키는 하느님의 심부름꾼 ‘케루빔’은 바빌로니아의 ‘쿠리부’나 이집트의 ‘스핑크스’와 유사한 존재이며, 이 이야기를 통해 신을 보좌하는 수호신이 있다는 믿음이 고대 어느 곳에서나 존재했던 사고방식임을 알 수 있다. 또 하늘에 닿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 분노한 하느님이 인간의 언어를 혼란스럽게 함으로써 인간이 뿔뿔이 흩어졌다는 바벨탑 이야기에서는 인간 삶에서 ‘언어’가 지니는 중요성, 즉 소통에 관한 고대인들의 인식을 읽을 수 있다.
구약성서 속 인간은 타인을 배려하는 선함과 고난을 극복하는 의지를 지닌 긍정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오만과 탐욕에 눈멀고 거짓과 배반을 일삼는 존재이기도 하다.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 노예로 팔려갔다가 이집트의 재상이 된 요셉,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자로 숨어 살다가 위대한 지도자가 되는 모세까지 구약성서는 파란만장한 인간 드라마로 가득하다.
2권 역사서와 왕들의 시대
‘야훼의 종’ 여호수아, ‘다시 올 구원자’ 다윗, ‘지혜의 왕’ 솔로몬까지,
40년 광야 생활과 부족 시대를 거쳐 왕국에 이르는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
‘역사서와 왕들의 시대’에서는 구약성서에서 ‘역사서’라 분류되는 열두 권의 책을 다룬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팔레스타인)에 진입한 기원전 1250년경부터 바빌로니아 제국에 멸망하여 포로 생활을 하다가 페르시아 제국 시대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까지 대략 800년의 역사를 기록한 구약성서의 책들을 역사서라 통칭한다.
이 책에서는 모세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민족이 야훼가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정착하는 과정을 담은 <여호수아>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후 <사사기>에서는 ‘삼손과 들릴라’ 이야기를 비롯해 부족 자치 시대를 다루고, <사무엘>에서는 이스라엘 최초의 예언자인 ‘사무엘’과 그가 세운 왕 ‘다윗’의 이야기를 본다. <열왕기>는 ‘지혜의 왕’ 솔로몬과 솔로몬 사후 민족의 분열(기원전 931년)로 만들어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두 나라의 역사를 왕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이 선지자 느헤미야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내용을 그린 <느헤미야>에 이르기까지 800년의 시간을 숨 가쁘게 내달린다.
저자는 역사서를 종교적 관점과 비종교적 관점에서 다각도로 읽는데, 특히 비종교적인 관점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민족이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같은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완전히 동화되거나 흡수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이유를 살펴본다.
3권 예언서와 고난의 시대
창녀를 아내로 둔 ‘호세아’부터 물고기 배 속에 들어간 ‘요나’까지,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혼을 깨우는 예언자들의 목소리!
‘예언서와 고난의 시대’에서는 대(大) 예언서라 불리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과 열네 권의 소(小) 예언서를 다룬다. 예언서들은 내용상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몰락의 길을 걷던 기원전 8세기부터 나라를 잃은 유대인들이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식민지 백성으로 살던 기원전 5세기까지가 배경이다. 이 민족적 고난의 시기에 이스라엘에는 ‘예언자’라는 매우 독특한 존재가 나타났다. 최초로 ‘정의’의 개념을 세운 예언자 ‘아모스’, 신이 이 세계를 만들었다면 왜 악이 존재하는지 되물었던 ‘하박국’, 바빌로니아 제국에게 멸망당하는 유다 왕국을 눈물로 지켜본 ‘예레미야’, 바빌로니아 제국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에게 희망과 구원을 전한 ‘에스겔’까지, 예언자는 이 파국과 절망의 시대를 가장 치열하게, 가장 고통스럽게 경험한 이들이었다.
히브리 예언자, 불의와 탐욕의 시대에 나타난 정신의 교사!
저자는 이스라엘의 예언자를 “종교․도덕․정치적 측면에서 당대의 사회 현실을 예리하게 진단하고 비판하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이었다고 본다. 이때 예언자가 내놓은 말이 ‘예언(預言)’이다. 예언은 ‘맡겨진[預]’ ‘말[言]’이라는 뜻이다.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무당이나 점쟁이가 점을 치듯 ‘미리 앞날을 말하는 것’[豫言]이 아니다.
예언자는 법과 도덕, 정의가 무너진 부조리한 사회 현실과 타락한 권력층을 향해 매서운 비판을 퍼부은 사회 비평가이자 정치 선동가, 혁명가였고, 시인이자 종교 사상가, 설교자였다. 예언자들은 평화롭던 시기에 야훼의 심판과 멸망을 외쳤고, 적의 침략으로 모두가 고통스럽던 때에 더 많은 고통이 찾아오리라고 경고했다. 야훼를 대신하는 그의 입은 “날카로운 칼”이었고 “날카롭게 벼린 화살”이었다. 불안과 두려움을 일깨우는 예언자는 불편한 존재였고 사람들은 그를 “어리석은 자, 미친 자”라고 불렀다. 비방과 모욕의 대상이 되어 감옥에 갇히거나 추방을 당하는 등 가시밭길을 걷는 예언자는 그 시대가 받을 형벌을 대신 지고 가는 ‘수난자(受難者)’였다.
예언자는 신에게 사로잡힌 사람이었다. 누구도 스스로 원하거나 노력해서 예언자가 되지 않았다. 부유한 농부였던 호세아도, 양 치는 목자였던 아모스도, 예루살렘의 귀족 출신인 이사야나 가난한 직공이었던 미가도 어느 날 갑자기 소명을 받았다. 누구도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젊은 제사장이었던 예레미야는 예언자 노릇이 두려웠다. 억지로 입을 닫으려 했던 예레미야는 심장과 뼈에 불이 붙는 듯한 고통 때문에 다시 예언을 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온전히 자신을 바쳤다.
저자는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의 뿌리인 구약성서에서 사회 정의와 보편적 사랑에 대한 절박한 호소를 읽어낸다. 이러한 점은 특히 고대 이스라엘에 등장한 예언자들의 이야기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예언자들은 뜻하지 않게 소명을 받은 순간부터 줄곧 자신의 전 존재를 바쳐 불의와 탐욕에 빠진 세상을 향해 파국을 경고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짓밟아 사리사욕을 채우는 지배층, 종교를 돈벌이에 이용하는 제사장들이야말로 예언자들의 가장 큰 적이었다.
▶▶내용 미리보기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 아브라함
이스라엘 민족은 유일신 신앙이나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기원을 아브라함에게서 찾는다. 하란에서 살던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무작정 고향을 떠나 미지의 땅 가나안으로 향했다. 아브라함은 타락한 세상을 다시 에덴 동산처럼 행복하고 평화로운 곳으로 만들려는 하느님의 계획을 이룰 실행자로 선택받은 것이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 네 이름은 남에게 복을 끼쳐주는 이름이 될 것이다. 너에게 복을 비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내릴 것이며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저주를 내리리라. 세상 사람들이 네 덕을 입을 것이다.”(창세기 12:1~3) ― 1권 ‘아브라함’·70쪽에서
하느님의 명령은 얼핏 일방적인 선언으로 보이지만, 실은 쌍방의 의무와 권리가 담긴 계약의 형태이다. 저자는 아브라함이 ‘떠나서 가는 탈출(脫出)과 지향(指向)의 삶’을 실천할 때에 하느님의 보호와 복을 받을 권리를 얻는다는 데 주목한다. “‘떠나다’라는 말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유목민(nomad)의 삶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인 의미는 언제나 토지, 권력, 재산, 명예, 안전, 자식 따위의 욕심을 일체 끊어버리는 내적 결단의 삶이라 할 수 있다.”(72~73쪽) 이러한 탈-향의 삶은 구약성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자, 후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사명으로 집약된다.
신과 씨름한 사나이, 야곱
아브라함이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라면,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기원이 된 사람이다.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은 좋게 말하면 삶에 대한 강인한 의지를 지닌 사람이고, 나쁘게 보면 자기 한 몸을 위해 아버지와 형을 속인 교활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형 에서를 속여 장자의 권리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야곱은 어머니와 짜고 아버지를 속여 장자인 형에게 돌아갈 아버지의 축복까지 가로챘다. 야곱은 화가 나 자신을 죽이려는 형을 피해 멀리 도망쳐 살다가,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하느님의 말을 듣고 고향으로 향했다. 도중에 형이 자신을 만나러 사람들을 몰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눈앞이 깜깜해진 야곱은 식솔들을 먼저 보낸 뒤 홀로 밤을 지냈다. 그리고 그 밤에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된다.
깜깜한 새벽에 갑자기 누군가가 목덜미를 잡아채는 것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그 팔을 붙들자 그 손도 야곱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하여 어둠 속에서 씨름이 벌어졌다. …… 직감으로 야곱은 상대가 천사일 거라고 느꼈다. 상대는 날이 새니 자기를 놓으라 했지만 야곱은 자기에게 축복해주지 않으면 절대 보내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그런데 그가 느닷없이 이름을 물었다. ‘야곱’이라고 대답하자, 상대가 말했다. “너는 하느님과 겨루어냈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긴 사람이다. 그러니 다시는 너를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여라.”(창세기 32:29) 그가 떠나자, 이윽고 해가 떠올랐다.(이스라엘은 ‘하느님과 겨루다’라는 뜻이다.) ― 1권 ‘야곱’·117~118쪽에서
그러나 야곱은 하느님의 뜻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오직 복을 받아 성공하는 것만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확신했다. 야곱은 평생 자식들 때문에 속을 끓였는데, 저자는 야곱이 수난을 겪는 원인을 “하느님 뜻을 거스르며 욕심과 무자각 속에서 살아간 데”(120쪽)서 찾는다.
훗날, 이스라엘 민족이 자기들을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요셉이 아닌, 야곱과 동일시한 것은 늘 믿음과 욕심의 경계선에서 평생 수난받는 자로 살면서도 하느님을 버리지 않았던 야곱의 아슬아슬한 생애와 그렇게 살아온 자기들의 면모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야곱은 이스라엘이고, 이스라엘은 야곱이다. ― 1권 ‘야곱’·120쪽에서
“지상에서 가장 겸손한 사람” 모세
저자는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과 광야 생활을 그린 <출애굽기>와 <민수기>에서 구약성서가 그리는 이스라엘 역사의 축소판을 발견한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어기고 어리석음과 이기심의 노예가 되어 함부로 행동하다가 하느님의 노여움을 사서 벌을 받고 뉘우치고 용서받는 일을 반복한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한복판에 “지상에서 가장 겸손한 사람”(민수기 12:3) 모세가 있었다. 그는 “히브리들의 아버지, 백성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지도자, 한 번도 권력을 탐하지 않은 지도자”(342쪽)였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히브리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우여곡절 끝에 이집트 공주의 왕자로 자라게 되었다. 40년간 이집트 왕실에서 안락한 삶을 누리던 모세는 어느 날 동족을 핍박하는 이집트인을 죽이고 도망쳐 숨어 살다가, 하느님으로부터 소명을 받는다. 고통받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이끌고 나오라는 것이었다. 모세는 숱한 고비를 넘기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야훼 하느님이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감사하기는커녕 그를 원망하고 번번이 하느님을 의심했다. 그러나 모세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흔들림 없이 자신의 소명을 지켰다. 저자는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압제로부터 구해내는 하느님의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인격적이고 역사적인 계시 앞에 선 도구”(189쪽)였다고 말한다. 구약성서에서 저자가 찾은 모세의 모습은 세속의 영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고독한 영웅이다.
노예의 자식으로 태어나 석 달 만에 강물에 버려졌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아기, 동족을 위한 분노로 사람을 때려죽이고 모래 속에 묻어버린 열혈 청년, 그리고 양을 치며 숨어 지낸 세월 40년. 그러다가 알 수 없는 하느님을 만나 고난당하는 동포들에게 걸어 들어가 그들의 해방을 이끈 사람. 그리고 또 40년의 세월 동안 그 동포들을 이끌고 약속한 대로 목적지까지 데리고 온 사람. 비운의 종교적 천재.
그것으로 다 된 것이다. 처절하게 고독하고 슬퍼서 오히려 찬란한 삶이었다. 모세의 삶 자체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영원히 잊히지 않을 기념탑이다. 그로부터 모세는 무수한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그를 말하고, 그를 흠모하고, 그를 닮아가는, 결단코 지워지지 않고 아무도 지울 수 없을, 역사와 영혼에 새겨진 푸른 글이 되었다. ― 1권 ‘모세를 생각하며’·338~339쪽에서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
모세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와 40년 동안 광야를 떠돈 이스라엘은 요르단 강을 사이에 두고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마주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는 오래전부터 여러 부족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려면 전쟁을 해야 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입성을 이끈 지도자 “여호수아는 모세처럼 종교적 카리스마를 갖춘 사람이 아니라 엄격한 군인으로서 냉철하고 합리적인 지도자였다.”(23쪽)
이스라엘이 요르단 강을 건너려던 때는 우기가 끝날 무렵인 데다가 북쪽의 헤르몬 산에 쌓여 있던 눈이 녹아내리는 시기여서 물 높이가 가장 높을 때였다. 요르단 강 건너 첫 도시인 예리코가 강가의 배를 죄다 없애버렸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헤엄쳐서 강을 건너거나 배를 만들거나 아니면 물이 줄어들기를 바라며 몇 달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때 하느님이 여호수아에게 언약궤를 사제들에게 메게 하여 그들을 앞세워 강을 건너라고 일렀다.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 강에 들어가자 흐르던 강물이 멈추었다. 무사히 강을 건너 예리코 성에 다다른 이스라엘은 하느님이 시키는 대로 나팔을 불며 예리코 성 주위를 돌았다. 일곱째 되던 날, 예리코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예리코 전투를 비롯해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자리를 잡는 과정을 통해 구약성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잘 지키면 하느님이 그들을 승리로 이끌지만, 하느님을 부정하고 믿음을 저버리면 하느님은 이스라엘에 등을 돌린다는 것”(18쪽)이었다.
다윗, 이스라엘의 구원자 혹은 욕망의 화신
성경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거나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도 ‘다윗’이라는 이름은 익숙할 것이다.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이기려고 드는 상황에서 쓰이는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관용 표현에도 등장한다. ‘골리앗’은 가나안 지역에서 200년 가까이 이스라엘의 가장 큰 적이었던 블레셋의 장수였는데, 그 키가 3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장사였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골리앗과 맞서려는 자가 아무도 없던 그때, 전장에 나간 형의 안부를 알려고 이스라엘 진지로 온 어린 소년이 골리앗 앞에 나섰다. 바로 이 소년이 ‘다윗’이다. 다윗은 칼도 없이 돌 하나로 골리앗을 무찔러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이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다윗은 군사령관이 되어 이후에 치른 이방 민족과의 전투를 전부 승리로 이끌었다.
서른 살이 된 다윗은 백성들의 신뢰를 받아 왕의 자리에 올랐다. 다윗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은 40년이 넘도록 평안했다. 다윗은 주변의 모든 나라를 무찔러 다시는 이스라엘에 침입하지 못하게 했고, 언제나 ‘공평하고 의로운 법’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그러나 완벽해 보이는 그도 욕망 앞에서는 그저 한 인간에 불과했다.
목욕하는 바쎄바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한 다윗은 그녀에게 남편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바쎄바를 불러 정을 통했다. 얼마 후, 바쎄바의 임신 소식이 들려왔다. 다윗은 전장에 있는 바쎄바의 남편을 불러들여 임신의 책임을 덮어씌우려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러자 다윗은 바쎄바의 남편을 가장 전투가 심한 곳으로 보내 죽게 했다. 그러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쎄바를 아내로 삼았다.
다윗의 마음에는 이미 하느님의 존재 따위는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지상의 하느님이 되었다. 그렇게 하여 선악과에 손을 댔고 깡그리 먹어치웠다. “주님께서 보시기에 다윗이 한 이번 일은 아주 악하였다.”(사무엘하 11:27, 새번역) …… 자기 외부의 적들은 다 물리쳤으나 내부의 적은 물리치지 못했던 것이다. ― 2권 ‘바쎄바’·191쪽에서
다윗 이야기에는 욕망, 폭력, 음모, 배신, 회개, 징벌 등 인간사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구약성서는 다윗의 죄를 삭제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인간의 본질에 깊이 다가선다. 즉, 시대적․문화적 차이는 있지만 결국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싸우고, 욕망하고, 죄를 짓고, 고통받는 인간일 뿐이라는 것이다. 구약성서 속 인물들의 파란만장한 삶은 오늘의 우리 삶과 다르지 않다.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라.” - 정의의 예언자, 아모스
아모스는 8세기 초반에 활동한 예언자이다. 남유다 왕국의 양을 치는 목자였던 아모스는 “이스라엘로 가서 예언하라.”는 야훼의 명을 받아 북이스라엘 왕국으로 떠났다. 당시 북이스라엘의 왕은 여로보암 2세(기원전 791~751년 재위)였는데, 그는 북이스라엘 왕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대를 이끌었고, 그 군대를 기반으로 광대한 영토를 확보한 데다가 경제적 풍요까지 이룬 유능한 군주였다. 그러나 가까이 들여다보면 온갖 불의와 폭력이 난무하고 빈부 차별과 불평등이 만연했다. 그러니까 북이스라엘은 “빛 좋은 개살구”였다. <아모스>는 당시의 사회 실상을 고스란히 전한다.
“나 주가 선고한다. 이스라엘이 지은 서너 가지 죄를,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그들이 돈을 받고 의로운 사람을 팔고, 신 한 켤레 값에 빈민을 팔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힘없는 사람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 처넣어서 짓밟고, 힘 약한 사람들의 길을 굽게 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여자에게 드나들며,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다. 그들은 전당으로 잡은 옷을 모든 제단 옆에 펴 놓고는, 그 위에 눕고, 저희가 섬기는 하느님의 성전에서 벌금으로 거두어들인 포도주를 마시곤 하였다.”(아모스 2:6~8, 새번역) ― 3권 ‘아모스, 정의의 예언자’·24~26쪽에서
아모스는 야훼를 온 세상에 정의를 요구하는 존재로 이해했다. 다시 말해, 아모스에게 정의란 그저 타인에게 악행을 행하지 않고 사람을 사람으로서 대우하는 것이며, 특히 왕이 법・제도・정책을 올바르게 운용하여 백성을 고루 먹여 살리고 보호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아모스>의 핵심을 다음의 구절로 정리한다. “너희는, 다만 공의(公義)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아모스 5:24, 새번역) 공의(하느님과 맺는 올바른 관계)와 사회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 생명의 길이라는 뜻이다. 아모스가 구약성서의 예언자들 가운데 ‘정의’의 개념을 처음으로 확립했기 때문에 그를 ‘정의의 예언자’라고도 부른다.
‘선한 신이 창조한 이 세계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 질문하는 예언자, 하박국
하박국은 남유다 왕국의 여호야킴(기원전 608~597년 재위) 시대에 활동했는데, 당시 남유다 왕국은 암흑기라 할 정도로 부정과 부패로 얼룩져 있었다. 악인이 판을 치고 의인은 멸시받았다. 약탈과 폭력이 끊이지 않았고, 법과 정의는 무너졌다. 하박국은 바로 이런 상황 자체에 의문을 품었다. 의롭고 선한 하느님이 다스리는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 의인은 가난하고 핍박받는데 오히려 악인이 마음 편히 잘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박국은 하느님께 어째서 의(義)가 사라진 이 현실을 지켜보기만 하느냐고 물었다. 하느님의 답은 이렇다.
“정한 때가 되어야 이루어진다. …… 이것은 공연한 말이 아니니, 비록 더디더라도 그 때를 기다려라. 반드시 오고야 만다. 늦어지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한껏 부푼 교만한 자를 보아라. 그는 정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하박국 2:2~4, 새번역) ― 3권 ‘하박국, 질문하는 예언자’·91쪽에서
모든 불의한 행위에는 재앙이 뒤따를 것이며, 비록 더딜지라도 정한 때가 있다는 것이 하느님의 답이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라는 구절은 <하박국>의 핵심 메시지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란 무엇일까? 저자는 ‘신실함’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설명한다. “설사 야훼를 향한 믿음에 회의를 느끼게 하는 불의한 현실을 맞닥뜨리더라도 끝까지 인내하며 야훼의 방식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타인에게 용서와 사랑과 자비를 베풀며 사는 것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의미이다.”(91쪽)
‘신 앞에선 모두 다 소중한 존재’ - 신의 보편적 사랑과 구원의 길을 본 요나
요나는 아시리아의 도성 ‘니네베’로 가서 그들의 죄를 경고하라는 하느님의 명을 받지만, 이스라엘의 원수 아시리아를 구원하려는 하느님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도망치기로 작정하고 니네베와 정반대 방향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그러자 하느님은 풍랑을 일으켜 요나의 길을 막았다. 하는 수 없이 요나는 니네베로 가,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잿더미가 된다.”(요나 3:4)는 하느님의 경고를 전했다. 놀랍게도 니네베의 모든 사람이 그 즉시 회개했고, 하느님은 그들에게 내리려던 재앙을 거두었다. 내심 니네베가 하느님의 경고를 무시한 채 그대로 멸망하기를 원했던 요나는 아시리아에 회개와 구원의 기회를 준 하느님에게 불평을 쏟아냈다. 하느님은 말없이 요나가 더위를 피하던 박 넝쿨을 시들게 하고는, 요나가 화를 내자 박 넝쿨을 동정하는 요나의 마음과 니네베를 동정하는 자신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네가 수고하지도 않았고 키운 것도 아니며, 그저 하룻밤 사이에 자라났다가 죽어버린 이 식물을 그처럼 아까워하는데, 하물며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십이만 명도 더 되고, 짐승들도 수없이 많은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요나 4:10~11, 새번역) ― 3권 ‘요나, 물고기 배 속의 예언자’·244쪽에서
<요나>의 주제는 분명하다. “<요나> 저자는 당대의 편협하고 폐쇄적인 사고방식에 안타까움과 함께 비판을 담아, 이방인들까지 용서하고 구원하는 야훼의 모습을 그려내고 신학적 지평을 전 세계로 넓히며 사람들을 설득하려 했던 것이다.”(235쪽) 즉 <요나> 저자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하느님은 종교와 인종을 넘어 세상 모든 사람과 모든 피조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지은이
이범선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신학․서양철학․역사학을 공부했다. 조직신학을 전공했으며, 히브리어․그리스어․라틴어 등의 고전어를 익혔다. 함석헌 선생과 김흥호 목사에게서 동양 고전을 배우기도 했다. 공군에서 종군 목사(군목)를 지낸 후 서울의 100년 넘은 교회에서 7년 동안 부목사로 일하다가, 영성을 깊이 탐구하려는 뜻을 품고 팔당호반의 작고 아름다운 ‘삼성감리교회’로 내려가 지금까지 13년 넘게 목회자로서 기도하고 명상하고 연구하고 있다. 감리교 본부 교육국의 속회공과 집필위원과 평신도 교육위원을 지냈으며, 한국신학원․연합신학원․서울신학원 등에서 ‘기독교 고전과 문학․철학’을 강의했다. 저서로 《들의 백합, 공중의 새》(1996년), 《사람을 찾는 하느님, 하느님을 찾는 사람》(1999년), 《기도서》(2003년)가 있다.
차 례
<1권> 모세오경과 유대인의 탄생
머리말
들어가는 글
1장 창세기…시작의 책
천지 창조 ―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어디서 왔는가?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 ― ‘기쁨의 땅’을 지키는 흙의 사람
잃어버린 낙원 ― 신이 만든 세계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
카인과 아벨 ― 분노와 시기심, 인간의 굴레
대홍수 ― “공연히 사람을 만들었구나!”
바벨탑 이야기 ― 하늘에 닿은 교만의 최후
깊이 읽기 구약성서 ― 욕망하는 인간, 구원하는 신
아브라함 ― “너는 떠나서 가거라.”
사라 ― “하느님께서 내게 웃음(이삭)을 주셨구나!”
하갈과 이스마엘 ― 이방 민족의 조상이 된 ‘방랑자’
이삭 ― 묵묵히 따르는 참된 믿음의 전형
에서 ― 죽 한 그릇과 바꾼 장자의 권리
야곱 ― 신과 씨름한 사나이
레아와 라헬 ― 이스라엘 12지파의 뿌리
야곱의 자식들 ― “네 후손 가운데 왕들이 태어나리라.”
요셉 ― 구원자가 된 ‘꿈꾸는 소년’
2장 출애굽기 · 민수기…해방의 책, 광야의 책
노예가 된 이스라엘 ― 뿌리를 잊은 자들의 고난
모세의 출생과 성장 ― 갈대숲에 버려진 아이
모세의 망명 생활 40년 ― 이집트 왕자에서 도망자로
양떼를 모는 자 모세의 소명 ― 신의 목소리를 듣다
모세와 파라오 ― 이집트의 신과 야훼의 대결
열 가지 재앙 ― “이집트 땅이 피로 물들었다.”
깊이 읽기 ― 열 가지 재앙의 의미
이집트 탈출 ― ‘약속의 땅’으로 가는 ‘야훼의 군대’
광야 생활 40년 ― 완전한 자유를 향한 투쟁
모세와 70인 장로 ― 광야의 지도자 모세와 히브리 자치 공동체
미리암과 아론 ― 배반당한 모세와 금송아지 숭배
십계명 ― 이집트 노예 체험이 낳은 법과 윤리
깊이 읽기 ― 십계명에 담긴 뜻
깊이 읽기 ― 계약법전, 십계명의 실천 세칙
가나안 정탐과 방랑 선고 ―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
코라와 아비람의 반란 ― 어느 하느님이 진짜인가?
거짓 예언자 발람과 말하는 나귀 ― 거짓 예언을 경계하라
바알브올 우상 숭배 ― 야훼 신앙과 바알 신앙의 투쟁
3장 레위기 · 신명기…거룩함의 책, 율법의 책
레위기 ―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
신명기 ― 이스라엘의 역사 철학
모세를 생각하며 ― “지상에서 가장 겸손한 사람”
주석
<2권> 역사서와 왕들의 시대
들어가는 글
1장 여호수아…정복의 책
여호수아 ― 가나안 정착의 사명
요르단 강을 건너 ―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예리코 전투 ― 이스라엘은 왜 예리코 백성을 몰살했나?
도둑 ‘아간’의 죽음 ― 탐욕, 모세 율법과 공동체의 금기
기브온의 기적 ― 이방 민족을 구원한 이유
미완의 정복 ― 가나안 정착과 토지 분배
여호수아의 마지막 연설 ― “어떤 신을 섬길지 선택하시오”
2장 사사기…구원자들의 책
전쟁과 야만의 시대 ― 부족 지도자 ‘사사’의 등장
사사, 구원자 혹은 심판자 ― 하느님이 보내준 카리스마
베냐민 전쟁 ― 내전과 베냐민 지파의 몰락
3장 룻기…믿음과 관용의 이야기
룻 ― 다윗 왕의 조상이 된 이방 여인
4장 사무엘…이스라엘 왕국의 시작
사무엘 ― 최초의 예언자
사울 ― ‘기름 부음’ 받은 자, 왕의 등장
사울 왕의 위기 ― 사무엘 대 사울, 교회 대 국가
다윗과 골리앗 ― 돌팔매를 든 하느님의 전사
엔도르의 무녀 ― 사울 왕의 비극적인 최후
내전 승리 ― 이스라엘 통일과 다윗 왕의 치세
바쎄바 ― 다른 이의 아내를 탐한 다윗
아들의 반란 ― 저무는 해 다윗과 국가의 분열
5장 열왕기…왕들의 시대
다윗의 후계자 ― 아도니야인가, 솔로몬인가?
솔로몬 ― 지혜와 교만 사이 위태로운 줄타기
둘로 쪼개진 이스라엘 ―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엘리야 ― 야훼 신앙과 바알 신앙의 대결
이세벨 ― 악녀의 대명사가 된 왕비
엘리사와 나아만 ― 민족을 초월한 야훼의 구원
예언자와 기적 ― 고통받는 백성들과 함께하는 삶
예후의 혁명 ― “너는 네가 섬기던 아합의 가문을 쳐부수어라”
요아스에서 우찌야까지 ― 성서는 왜 유다 왕국을 편애하는가?
북이스라엘의 종말 ― 뒤섞인 ‘거룩한 핏줄’
위대한 왕 요시야 ― 율법서의 발견과 종교 개혁
바빌론 유수 ― 유다 왕국의 멸망
6장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 동족 유대인을 구한 페르시아의 왕비
깊이 읽기 페르시아 제국
에스라 ― 유대교의 창시자
느헤미야 ― 성전과 이스라엘 정신의 부활
부록 | 성서의 저자들에 관하여
주석
<3권> 예언서와 고난의 시대
들어가는 글
1장 위기의 시대…기원전 760~700년
아모스, 정의의 예언자 ―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호세아, 사랑의 예언자 ― “변치 않는 사랑만이 너희를 구원하리라.”
제1이사야, 희망의 예언자 ―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뛰노는 나라”
미가, 분노의 예언자 ― “예루살렘은 폐허가 될 것이다.”
2장 이스라엘의 몰락…기원전 650~586년
나훔, 복수의 예언자 ― “야훼는 원수를 갚고야 마는 분”
스바냐, 심판의 예언자 ― “땅 위에 있는 것은 무엇이건 쓸어버리리라.”
하박국, 질문하는 예언자 ― “신은 어째서 세상의 불의를 방관하는가?”
예레미야, 눈물의 예언자 ―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맡긴다.”
깊이 읽기 예레미야 애가
오바댜, 응보의 예언자 ― “너희가 저지른 만큼 너희가 당하리라.”
3장 바빌론 유수…기원전 586~539년
에스겔, 신비의 예언자 ―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제2이사야, 위로의 예언자 ― “깨어라, 깨어라, 일어나라, 예루살렘아!”
4장 이스라엘 귀환…기원전 539~400년
학개, 재건의 예언자 ― “나는 이곳에 평화를 주리라.”
스가랴, 화합의 예언자 ― “왕이 어린 나귀를 타고 네게로 오신다.”
요엘, 참회의 예언자 ― “통곡하고 슬퍼하면서, 나에게로 돌아오너라.”
제3이사야, 의와 빛의 예언자 ―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5장 ‘열린 길’과 ‘닫힌 길’…기원전 400년 이후
요나, 물고기 배 속의 예언자 ―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습니다.”
말라기, 약속의 예언자 ― “제사장들아, 너희가 바로 내 이름을 멸시하는 자들이다.”
다니엘, 구원의 예언자 ― “주의 진노를 이제 거두어주십시오.”
나가는 글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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