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독재자들의 진정한 선구자 네차예프!
정의로운 목적은 사악한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인간 해방의 대의를 복수의 정치학으로 펼친 혁명가,
냉혈과 광기의 테러리스트, 네차예프의 본격 평전!
“혁명가는 불행한 운명에 갇힌 사람이다.
혁명가는 그 자신에 관한 한 관심사도 없고,
감정도 없고, 애착도 없고, 재산도 없고 심지어는 이름도 없다.
혁명가 내부에 있는 모든 것은 유일무이한 배타적 관심사이자
총체적 주제이고 총체적 열정인 혁명으로 흡수된다.”
“혁명가는 어떤 종류의 교조주의도 경멸하며, 평화의 과학도 거부한다.
평화는 미래 세대의 몫이다. 혁명가가 아는 과학은 오직 하나, 파괴의 과학이다.
오로지 파괴만을 위해 혁명가는 밤낮으로 인민의 삶을, 인민의 특성과 상태를,
이 사회 구조의 모든 조건을 가능한 모든 층위에서 철저하게 연구한다.
목적은 같다. 이 더러운 구조를 가장 빨리 가장 확실하게 파괴하는 것이다.”
- <혁명가의 교리문답>에서
《네차예프, 혁명가의 교리문답》은 역사적 인물의 심리적 특성을 분석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 역사학자 필립 폼퍼가 광범위한 자료를 바탕으로 쓴 네차예프의 본격 평전이다. 이 책은 증오와 복수의 혁명가 네차예프의 심리적 전기일 뿐 아니라 19세기 러시아 혁명 운동에 관한 정치심리학적 분석서이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가 《악령》에서 창조한 불길한 인간형 베르호벤스키의 실제 모델인 세르게이 겐나디예비치 네차예프(Sergei Gennadievich Nechaev, 1847~1882). 그는 19세기 후반의 한 시기, 러시아와 유럽에서 엄청난 구설과 정치적 회오리를 일으킨 젊은 혁명가이다. 혁명 동지를 살해하여 러시아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네차예프는 스위스에서 붙잡혀와 재판을 받고 10년을 아무도 모르는 요새 감방에 갇혀 있다 죽어갔다. 그때 그의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혁명을 직업으로 삼고, 삶의 목표로 삼은 사람을 혁명가라고 한다면, 네차예프는 혁명가의 표상이었다. 동시에 그는 음모가였고 사기꾼이었고 공갈범이었고 복수의 화신이었으며, 피에 굶주린 범죄자였다. 오로지 혁명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는 극단적 열정, 너무도 강렬해서 뿌리치기 힘든 사악한 마력은 미하일 바쿠닌을 비롯한 수많은 혁명가들을 사로잡았으며, 그가 작성한 <혁명가의 교리문답>은 가장 강력한 혁명가들의 혁명 강령이 되어 1백 년 이상 혁명의 역사를 은밀하게 지배했다.
혁명의 역사에서 완전히 부정되고 잊혀진 존재가 된 불운한 혁명가 네차예프. 그러나 그는 거의 모든 건전한 혁명가들의 배후에 어른거리는 그림자, 인간 해방의 대의 뒤에 숨겨진 어두운 내면이다.
네차예프, 그는 어떤 존재인가?
1.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악령》의 주인공의 하나인 표트르 베르호벤스키의 실제 모델
1860년대 후반에 《죄와 벌》《백치》를 잇따라 발표하여 소설 작가로 입지를 굳힌 도스토예프스키는 1871~1872년 또 하나의 장편 《악령》을 발표하였다. 1869년 11월 21일 일어난 대학생 이반 이바노프 살해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작가가 하나의 인간형을 떠올리고 드라마를 구성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네차예프는 문학작품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인물, 하나의 ‘악령’으로 남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 네차예프는 표트르 베르호벤스키라는 인물로 등장한다. 한 지방 도시의 니힐리스트이자 아나키스트인 베르호벤스키는 타락천사와도 같은 풍모의 소유자인 귀족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을 이름뿐인 국제 혁명조직의 대표로 추대해놓고, 그를 추종하는 주변의 젊은이들을 부추겨, 한때 그 집단의 일원이었던 신학생 이반 샤토프를 살해한다. 샤토프 살해 장면은 네차예프가 이바노프를 살해한 정황과 거의 일치한다.
2. 혁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동료를 살해한 사람
네차예프에게 사악한 명성을 안겨준 결정적인 사건은 1869년 11월 21일 벌어진 ‘동료 살해’였다. 민중 봉기를 일으키기 위해 비밀 결사조직 ‘인민의 복수’를 결성한 네차예프는 자신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기를 거부하고, 문제를 제기하다가 조직을 떠날 결심을 한 조직원 이반 이바노프를 동료 4명과 함께 잔인하게 죽였다.
쿠즈네초프가 꼼짝 못하게 이바노프의 발을 붙들자 네차예프가 그의 가슴에 앉아 주먹으로 때리며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걸 보고 겁에 질려 얼어붙어버렸다. 그 사이 네차예프는 그들과 이바노프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계속 소리를 질렀고, 이바노프가 네차예프의 오른손을 깨물었다. “너희들 왜 나를 때리는 거야? 내가 뭘 어쨌다고?” 아무래도 그는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네차예프가 니콜라예프에게 쿠즈네초프의 두건을 달라고 소리쳤다. “목을 졸라!” 그러자 니콜라예프가 손을 더듬어 이바노프의 목을 찾았다. 그러다 그만 네차예프의 손을 떼어내 이바노프가 바닥에 얼굴을 돌리고 괴로운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얼마 뒤 격투는 끝났으나 이바노프의 몸은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 네차예프가 여전히 욕설을 퍼부으며 니콜라예프에게 자기 권총을 달래서 이바노프의 뒤통수에 대고 쏘았다. 총알이 그의 왼쪽 눈을 뚫고 나왔다. - 258쪽에서
3. 기만과 술수로 당대 유럽 제1의 혁명가 바쿠닌을 농락한 사람
네차예프의 사기 행각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지만 가장 치명적인 해를 입은 사람은 러시아 아나키즘의 대부였던 노망명객 미하일 바쿠닌(1814~1876)이었다. 1869년 스위스에 도착한 22살의 야심만만한 청년 네차예프는 단숨에 바쿠닌을 사로잡는다. 그는 자신을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에 수감되었다가 탈출한 정치범이며, ‘러시아 혁명위원회’의 대표자로 혁명을 준비 중이라고 소개한다. 바쿠닌은 네차예프를 위해 돈을 마련하고 글을 쓰고 사람을 연결해준다. 존재하지도 않는 ‘러시아 혁명위원회’의 대표인 네차예프에게 바쿠닌은 마찬가지로 존재하지도 않는 ‘세계혁명가동맹’의 러시아 지부 대표를 인증하는 증명서까지 만들어준다.
머잖아 둘의 관계는 한 쪽으로 급속히 기운다. 네차예프가 바쿠닌을 부하처럼 부리기 시작했고 바쿠닌은 이 모멸스러운 관계를 기꺼이 받아들인 것이다. 그 기이한 관계가 끝내 바쿠닌의 삶을 파국으로 이끌어가기까지 바쿠닌의 네차예프에 대한 애착은 식지 않는다.
둘의 관계는 제1인터내셔널 안에서 바쿠닌파와 주도권을 다투던 카를 마르크스 진영에 결정적인 빌미를 주었고, 마르크스는 바쿠닌을 네차예프와 엮어 인터내셔널에서 제명해버린다. 바쿠닌을 몰락시킴으로써 네차예프는 세계 혁명운동의 물길마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튼 것이다.
4. 자신을 감시하는 간수들까지 휘어잡아 조종한 마력적 존재
스위스 취리히에서 체포되어 러시아에 인도된 네차예프는 1873년 1월 종신형 판결을 받은 뒤 상트페테르부르크 네바 강 섬에 세워진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독방에 감금된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그의 음모와 조직 활동은 쉬지 않는다. 그는 감옥의 간수들을 압도적 카리스마로 사로잡아 자기 수족으로 만들어 조종한다. 간수들마저 혁명 동조 세력으로 포섭해서 지하 혁명조직인 ‘인민의 의지’와 연락을 하여 탈출 계획을 짠 것이다.
네차예프에게 충실한 간수들은 대부분 1878년에서 1881년 사이에 보루에 들어와 근무했다. 그가 ‘인민의 의지’와 결속되어 있었을 때는 공모자들에게 보상을 할 수 있었고, 간수들의 충성심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네차예프는 그들의 ‘독수리’였다. 그들은 그를 존경했고,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했다. 그들은 그에 의해 무신론으로, 혁명적인 사회주의로, 차르 암살자로 변하였다. …… 결국 모두 69명이 음모와 관련해 체포되었고, 그 가운데 44명은 1881년 12월 29일에 체포되었다. - 438~439쪽에서
알렉산드르 2세 암살에 성공한 ‘인민의 의지’가 와해되고 간수들 중에서 네차예프의 공범자들이 발견되어 요새를 탈출하려던 네차예프의 꿈은 물거품이 된다.
5. 살아서 전설이 된 존재
이바노프 살해 사건은 러시아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으며, 재판을 통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진 후에는 그의 비열하고 사악한 방법에 치를 떨며 어느 누구도 네차예프를 옹호하거나 변호하지 않았다. 하지만 네차예프의 존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독가스처럼 러시아 혁명 운동 내부에 스며들었다. 아무도 모르는 채 요새에 갇혀 있던 네차예프가 8년 만에 지하 혁명 조직에 편지를 보내자 그들은 충격에 휩싸인다.
이 편지는 아주 놀라운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네차예프의 명성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긴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 무고한 사람이 흘린 피와 강탈, 협박할 목적으로 체면을 손상시키는 문서들을 훔친 행위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며 저지른 모든 일이 네차예프의 혁명적인 이미지를 뒤덮고 있던 모든 거짓됨이 사라졌다. 거기에는 몇 년이나 감방에 홀로 갇혀 있었는데도 무뎌지지 않은 날카로운 이성이 있었고, 온갖 형벌의 무게에도 굴하지 않은 의지가 있었으며, 살면서 겪은 모든 실패에도 여전히 고갈되지 않은 에너지가 있었다. 위원회 모임에서 네차예프의 편지를 읽었을 때 우리는 모두 벅찬 감정으로 “그를 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 419쪽에서
네차예프는 극심한 감시 속에서 고통 받다가 괴혈병과 결핵으로 1882년 11월 21일 눈을 감았다. 그날은 13년 전 네차예프가 이바노프를 살해한 날이었다. 네차예프의 최후는 <혁명가의 교리문답>의 첫 문장 “혁명가는 불행한 운명에 갇힌 사람이다.”란 표현대로 비참했지만 그의 사상과 신념과 생활방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수많은 혁명가들이 그가 만들어낸 <혁명가의 교리문답>에서 제시한 강령에 따라 살고 행동하고자 하였다.
네차예프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네차예프는 어느 날 느닷없이 등장한 인물이 아니다. 100년 이상 쌓인 러시아 혁명 운동의 여러 복합적 요인이 한데 모여서 극단적 혁명가 네차예프를 탄생시켰다.
네차예프를 키운 그 시대의 문화적 공기의 한 요소는 ‘니힐리즘(허무주의)’이다. 농노해방이 기만적 술책으로 끝나버린 후 새롭게 등장한 인텔리겐치아는 기존의 그 어떤 권위도 인정치 않고 기존 질서를 총체적으로 부정하면서 혁명의 길에 희망을 걸었다. 이들에게 붙여진 니힐리스트라는 명칭은 이러한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러시아에서 직업적 혁명가가 등장한 것은 이런 상황 속에서였다.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가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창조해낸 인물 라흐메토프는 혁명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이며, 삶 자체가 혁명을 위한 준비 작업인 사람이고, 직업적 혁명가의 모범이다. 소설 속 이 새로운 인간형이 현실의 네차예프를 탄생시킨 태반이 되었다.
라흐메토프는 혁명을 위해 모든 삶을 바치고 혁명을 준비하기 위해 자기의 일거수일투족을 치밀하게 조직하는 사람이다. 그는 혁명가로서 체력을 기르기 위해 일정량의 육식을 하는 것을 포함해 식사량을 정확히 조절하고, 엄격히 짜여진 시간표에 따라 생활하며, 체포되었을 때 고문에 대비하기 위해 뾰족뾰족한 대못들을 가득 박은 널판 위에서 잠을 자기도 할 정도이다. 끊임없이 이곳저곳으로 다니되 주변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러 어디를 다니는지 알리지 않기 때문에 그는 주변 사람들과 친밀하게 섞일 수 없는 비밀스러운 존재이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사회로부터 의도적으로 소외시킨 존재로서의 혁명적 인텔리겐치아이다. - ‘한국어판 머리말’에서
왜 네차예프인가?
정의로운 목적은 사악하고 비열한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네차예프가 보여주었던 범죄성 혹은 사악함을 러시아어로는 ‘네차예프시나’라고 한다. 네차예프시나와 네차예프주의는 공식적으로 부인되고 거부되었지만, 그것이 혁명의 역사에서 사라졌다는 증거는 빈약하다. 오히려 그 반대의 증거가 훨씬 더 많다. 1960~1970년대의 급진 과격 혁명운동이었던 ‘블랙 팬더’나 ‘붉은 여단’ ‘적군파’ ‘바더-마인호프’ 등은 네차예프주의와 <혁명가의 교리문답>을 자신들의 행동원리로, ‘혁명의 경전’으로 찬양하거나 그 이념을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공식 혁명사의 상당 부분이 네차예프주의를 내적 원리로 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네차예프주의는 그렇지 않았으면 건강했을 혁명 운동에 어쩌다 나타난 병리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복수의 심리학이 정치의 차원으로 이동한 것을 아주 뚜렷이 보여주는 예였다. 게다가 복수의 정치학은 러시아와 소련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를 세계에 제공했을 뿐 러시아만의 고유한 문제도 아니었다. ……그는 20세기 독재자들의 진정한 선구자였다. - 453쪽에서
혁명에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과거의 동지들을 학살한 스탈린의 전조라고도 일컬어지는 네차예프주의. 그 속에서 <혁명가의 교리문답>은 계속 암송되었고, 네차예프는 혁명가의 어두운 전형으로 살아남았다. 《네차예프, 혁명가의 교리문답》은 네차예프주의를 러시아 혁명 운동에서 일어난 단순한 일화로 취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네차예프가 걸은 길은 혁명의 정치학에 내재한 위험에 대한 아주 중요한 교훈을 준다는 사실을 확인해준다.
나는 네차예프의 삶이 아주 작은 음모 조직에서 큰 국민국가에 이르기까지 어떤 인간 사회에서나 출현할 수 있는 불행한 지도자상을 보여준다고 믿는다. 그의 삶을 죽 훑어보면 좌우를 떠나 급진적인 운동에서 너무나 흔히 나타나는 현상을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 41쪽, ‘머리말’에서
100년이 넘도록 수많은 논란과 찬탄과 혐오의 한가운데를 맴돈
가장 순수하고 열광적이며 허무적인 자기 파괴적 혁명주의,
<혁명가의 교리문답>
1. 혁명가는 불행한 운명에 갇힌 사람이다. 혁명가는 그 자신에 관한 한 관심사도 없고, 일도 없고, 감정도 없고, 애착도 없고, 재산도 없고 심지어는 이름도 없다. 혁명가 내부에 있는 모든 것은 유일무이한 배타적 관심사이자 총체적 주제이고 총체적 열정인 혁명으로 흡수된다.
2. 혁명가는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자신의 존재 깊숙한 곳에서부터 모든 시민 질서, 교양 세계와 관계를 단절했으며 그 세계의 법과 규범, 도덕, 관습과 손을 끊었다. 혁명가는 그 세계의 무자비한 적이며, 그가 그 세계 안에서 계속 산다면 그것은 오로지 더욱 확실하게 그 세계를 파괴할 목적으로 그럴 것이다.
3. 혁명가는 어떤 종류의 교조주의도 경멸하며, 평화의 과학도 거부한다. 평화는 미래 세대의 몫이다. 혁명가가 아는 과학은 오직 하나, 파괴의 과학이다. 혁명가는 파괴를 위해, 오로지 파괴만을 위해 역학, 물리학, 화학을, 그리고 어쩌면 의학을 공부한다. 오로지 파괴만을 위해 혁명가는 밤낮으로 인민의 삶을, 인민의 특성과 상태를, 이 사회 구조의 모든 조건을 가능한 모든 층위에서 철저하게 연구한다. 목적은 같다. 이 더러운 구조를 가장 빨리 가장 확실하게 파괴하는 것, 그것이 목적이다.
6. 자신에게 엄격한 혁명가는 다른 사람에게도 엄격해야 한다. 혁명가는 혈육의 정, 우정, 사랑, 고마움, 심지어 존경심까지, 사람을 나약하게 만드는 모든 감정을 혁명의 대의를 향한 총체적인 냉혹한 열정으로 제압해야 한다. 혁명가를 위로해주는 것은, 혁명가에게 위안, 보상, 만족을 주는 것은 단 하나 혁명의 성공뿐이다. 밤낮으로 혁명가는 오로지 한 가지만, 하나의 목표만, 다시 말해 무자비한 파괴만 생각해야 한다. 피도 눈물도 없이, 한 순간의 휴지도 없이 이 목표를 향해 분투하면서 혁명가는 늘 스스로 재가 될 각오를, 혁명의 승리를 가로막는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자기 손으로 파괴할 각오를 해야 한다.
13. 혁명가가 공적인 세계, 신분 질서의 세계, 그리고 이른바 교양 세계에 침투하는 것은 오로지 하루라도 빨리 그 세계를 더욱 완전하게 파괴할 목적 때문이다. 만일 그가 그 세계에 있는 어떤 것에라도 연민을 느낀다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 모든 것이 가증스러워야 하는데 그 세계 내부의 지위나 관계, 심지어 인명을 제거하는 임무 앞에서 뒤로 물러선다면, 그는 혁명가가 아니다. 훨씬 더 나쁜 것은 그 안에 가족이나 친구, 연인이 있는 것이다. 그들이 그의 행동을 막을 수 있다면, 그는 혁명가가 아니다.
22. 혁명 조직은 인민, 즉 노동하는 사람들의 완전한 해방과 행복 말고는 아무런 목적도 없다. 그러나 이런 해방과 이런 행복은 모든 것을 완전히 파괴하는 인민 혁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기에, 우리는 인민이 더 참지 못하고 대중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도록 모든 힘과 수단을 다해 인민의 고통과 악이 번성하도록 할 것이다.
네차예프와 네차예프주의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도록 해주는
서울대 한정숙 교수의 머리말
러시아 혁명사를 전공한 한정숙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가 이 책을 위해 특별히 집필한 한국어판 머리말은 19세기 러시아 사회와 인텔리겐치아의 역사를 한 축으로 하고, 개인의 심리, 주변 상황 등 개인적 특징을 한 축으로 해서 네차예프라는 문제적 인간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 구실을 해준다.
이바노프를 네차예프가 조직의 다른 성원들과 함께 직접 잔인하게 죽인 내면의 진정한 동기는 무엇일까. 다른 사람이 이를 끝까지 밝혀내는 것이 가능할까. 그것은 이바노프가 서클의 비밀을 경찰에 알릴지도 모른다는 데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지도자’인 네차예프 자기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조직을 떠나는 이바노프에 대한 개인적 증오감, 반감 때문이었을까, 조직 이탈자를 처치한다는 공동 범죄를 저지름으로써 조직 구성원들을 공동 운명체로 영구히 묶어놓아 혁명 활동의 인적 자원을 확보하려 한 것이었을까. ……
그런데 네차예프를 진정 혁명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혁명에 대한 그의 헌신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부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의 기만술, 잔인함, 행위의 비윤리성을 생각하면, 혁명가라 칭해져 온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묶는 용어로 이 이름을 사용하기가 망설여질 수도 있다. 그는 인텔리겐치아라 칭해져 온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과격하고 극단적이며 불가해한 인물이었다.
네차예프는 나름대로 혁명에 대한 투철한 헌신성과 확신을 특징으로 하는 인물이었으며, 그는 변함 없는 자기 확신 속에서 죽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의 확신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 어려운, 닫힌 신념이었다. 네차예프시나는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데도 실제로 일어난 그런 종류의 일이었다. 네차예프 행동의 극단성을 당시 러시아 사회의 지식인들에게 감지된 그들 사회의 출구 없는 상태, 극단적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극단적 사회가 극단적 인간을 낳았던 것이다. 그것은 법과 정치를 통한 사회 개혁, 개인적 삶의 의미망 확대가 가능하지 않다고 여겨지던 사회였다.
― ‘한국어판 머리말’에서
지은이·옮긴이 소개
필립 폼퍼(Philip Pomper)
19, 20세기 러시아의 정치․사회․지성사에 정통한 미국의 독보적인 러시아 혁명사학자. 그는 특히 러시아의 혁명적 인텔리겐치아 연구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여 이 분야의 연구에서 반드시 인용되는 러시아 전문가이다. 또한 그는 역사학에 심리학을 적용한 학자로 유명한데, 역사적 혁명가들의 심리적 특성을 분석하는 작업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광범위한 자료를 바탕으로 쓴 《네차예프, 혁명가의 교리문답》은 증오와 복수의 혁명가 네차예프의 심리적 전기일 뿐 아니라, 19세기 러시아 혁명 운동에 관한 정치심리학적 분석서이다.
시카고 대학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웨슬리언 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The Russian Revolutionary Intelligentsia》《Lenin, Trotsky, and Stalin》《The Structure of Mind in History》 등 다수가 있다.
옮긴이 - 윤길순
한국외국어대학 영어과를 졸업했으며 출판사 편집장을 역임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제국의 탄생》 《지구 위의 모든 역사》 《넬슨 만델라 어록》 《건축은 왜 중요한가》 《새 인문학 사전》 《스탈린》 《글로리아 스타이넘》 《체 게바라》등이 있다.
차 례
■ 한국어판 머리말 - 한정숙(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 머리말
1장 소년 인텔리겐치아 - 악마의 늪에서 혁명의 도시로
2장 지하 혁명가 - 니힐리즘 문화 속의 젊은 반란자들
3장 혁명가의 교리문답 - 네차예프, 바쿠닌을 매혹하다
4장 인민의 복수 - 동지 살해와 희생 충동
5장 냉혹한 유혹자 - 고귀한 목적, 사악한 수단
6장 신화의 탄생 -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의 순교자
7장 복수의 정치학 - 끝나지 않은 네차예프주의
■ 주석 / ■ 네차예프 연보 / ■ 주요 인물 / ■ 찾아보기(용어·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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