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유키오, 죽음의 충동과 허무의 미학 _ 이노우에 다카시

2021년 제72회 요미우리 문학상 수상작
“내면에 소용돌이치는 폭력성, 정신을 갉아먹는 니힐리즘을
미시마 유키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근대라는 시대의 병이자
인간 존재의 어둠 그 자체로 집요하게 물어 들어가는 작품”
악명에 가려진 문제적 작가의 내면 세계를 탐사하는
미시마 유키오 사후 50년의 기념비적 저작!
미시마 유키오는 문학의 총아였고 대중의 우상이었다. 몰락한 귀족 가문의 병약한 아이로 자라 열여섯 살에 혜성처럼 문단에 등장한 뒤 《가면의 고백》 《금각사》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으로 대중의 격찬을 받은 전후 일본 문학의 대표 작가였다. 영화배우와 사진 모델로 활약하고, 가부키와 현대극의 극본을 쓰고 극단을 만들어 연극을 연출하며 문화 전반에서 전천후로 활약한 대중 스타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더불어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그렇게 작가로서 정점을 달리던 미시마는 45세 되던 1970년 마지막 작품이자 필생의 대작인 《풍요의 바다》 원고를 완성한 직후 일본 자위대 총감부를 점거하고 할복이라는 극단적 방식으로 삶을 마감함으로써 문학계를 넘어 일본 사회 전체에 충격을 안겼다. 왜 미시마는 삶의 절정을 해체하듯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죽음의 자기 연출을 이끈 폭력적 니힐리즘의 해부
미시마 유키오 연구의 제1인자로 꼽히는 문학평론가 이노우에 다카시가 모든 것을 던져 집필한 이 평전은 미시마 문학의 천재성과 작품의 바탕을 이루는 사상 전반을 탐사하며, 자기 파괴적 종말로 끝을 맺은 미시마의 삶을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편지, 인터뷰, 메모, 미발표 습작 등 방대한 1차 자료와 최신 자료를 철저히 고증하고 미시마 작품 전반을 섬세하게 독해해 미시마의 생애와 정신을 재구성한다. 특히 이 평전은 ‘왜 미시마 유키오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풀기 위해 《풍요의 바다》 내용 전체를 집요하게 살핌과 동시에 집필 시기를 전후한 미시마의 행적을 하나하나 추적한다. 사실과 분석을 치밀하게 교직한 저자의 작업은 한 독특한 예술가의 자기 연출적 삶을 해부하고 조명하는 평전의 진수를 보여준다. 어린 시절의 유폐 경험에서 형성된 미시마 유키오의 내면 세계가 얼마나 집요하게 자기 탐닉적 에로티시즘과 자기 파괴적 폭력성을 키워 왔는지, 또 그런 폭력의 에로티시즘이 어떤 경로로 니힐리즘적인 사상과 섞여 미학적으로 발효되고 실존적으로 증폭됨으로써 자살을 통한 미적 완성이라는 관념으로 나아갔는지를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날카로운 심리 분석이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이 평전을 통해 독자는 미시마 유키오라는 문학적 난문을 선명하게 파악하는 시야를 얻게 된다.
우리는 니힐리즘을 넘어설 수 있는가
“미시마라는 문제는 우리 시대의 문제다”
“《가면의 고백》과 《금각사》를 읽으면 알 수 있듯이, 미시마의 내면에는 제어하기 어려운 폭력성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또 《풍요의 바다》의 결말이 보여주듯이 모든 것은 헛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차가운 니힐리즘이 미시마의 정신을 잠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미시마는 이것을 단지 개인의 문제로 여긴 것이 아니라 근대라는 시대의 병, 인간 존재의 어둠으로 간주하고서 질문을 던졌다는 점이다. 사실 사후 반세기가 지난 시점에서 그 질문은 우리 모두가 직면한 문제가 되었다. 미시마는 말하자면 현대를 살고 있는 셈이다.”- ‘시작하며’에서
일본이라는 문제를 풀어갈 때 가장 어려운 문제, 미시마 유키오
내가 생각하기에 일본이라는 문제를 풀어갈 때 부딪힐 수밖에 없는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가 미시마 유키오이다. 그는 탐미적이고 외설적인 작가 수준을 뛰어넘는 사상가다. 그의 죽음을 “조선놈 아주까리 미친 듯이 퍼먹고 미쳐버린” 자의 한바탕 활극으로 소비해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다. 복잡한 다면체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그의 삶과 문학과 사상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나아가 일본의 패전을 전후한 일본 현대사를 깊이 이해하는 데 이 평전이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옮긴이 후기’에서
‘문제적 인간 시리즈’, 제16권
2005년 8월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을 제1권으로 출간한 ‘문제적 인간 시리즈’ 제16권으로 《미시마 유키오, 죽음의 충동과 허무의 미학》을 내놓는다.
“죄르지 루카치는 《소설의 이론》에서 근대 소설의 주인공을 ‘문제적 개인’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변화무쌍한 세계 속에 내던져져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한 채 신념의 푯대에 의지해 좌충우돌하며 자기 길을 찾아 떠나는 파우스트적 존재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 존재의 행보야말로 근대적 주체의 전형적 모습이다.
‘문제적 인간’ 시리즈는 이 근대적 주체성을 삶의 형식 안에서 극대치로 전개한 이념형적 인물을 재발견하는 작업이다. 이 시리즈는 근대적 주체의 모순을 극한까지 밀어붙였던 인물들을 추려내 그들의 삶과 의식의 단면을 절개해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 발간사에서
미시마 유키오, 그는 누구인가?
1925년 도쿄 요쓰야에서 태어난 미시마 유키오(본명 히라오카 기미타케)는 할머니의 방에서 병약한 아이로 성장했다. 외부 세계와 차단된 유년 시절은 미시마 특유의 몽상과 상상력의 토대가 되었다. 12세 무렵부터 시 창작에 몰두했고, 문예 동인지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학적 재능을 뚜렷이 드러냈다. 1941년 16세에 필명 ‘미시마 유키오’로 단편소설 〈꽃이 한창인 숲〉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이 시기 그의 성장 과정은 국가적 격변(전쟁과 패전)과 겹쳐 있었고, 작품에는 죽음, 몰락, 허무 같은 주제가 뚜렷해졌다.
24세 때인 1949년 발표한 《가면의 고백》은 자전적 고백과 내면의 정체성 갈등을 정면으로 다뤄 큰 반향을 일으키며 미시마 유키오를 문단의 중심에 서게 했다. 1956년에 발표한 《금각사》는 그의 문학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교토 금각사 방화 사건을 소재로 삼아 아름다움과 파괴, 허무와 미의 결합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전후 일본’이라는 시대 전체에 대한 도전이었다.
1950~60년대는 예술 전반에서 활발하게 활동해, 소설·희곡·비평을 발표했을 뿐 아니라 영화와 연극, 사진 작업에도 직접 참여하며 대중 스타로 자리 잡았다. 동시에 육체 단련에 몰두하여 보디빌딩과 검도에 깊이 빠졌는데, 이는 정신과 육체를 동시에 수련하려는 일종의 ‘자기 연출’이기도 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미시마는 정치적 발언과 행동에 적극 나섰다. 자위대 체험 입대를 하며 민간 방위 조직을 구상했고, ‘방패회’를 결성해 헌법 개정과 천황제 수호를 주장했다. 생애 마지막에 몰두한 작품은 네 권으로 이루어진 대작 《풍요의 바다》였다. 윤회전생을 축으로 삼아 시대의 허무를 그려낸 이 작품은 그가 오랫동안 사유해 온 세계관을 집약한 결실이었다. 1970년 11월, 미시마는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방패회 회원들과 함께 자위대 총감부를 점거하고 헌법 개정을 촉구하며 연설한 뒤 할복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45세였다. 그의 죽음은 일본 사회에 깊은 충격과 긴 논쟁을 남겼다. 죽음 이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미시마는 탁월한 문학적 성취와 예민한 시대 인식, 극단적 죽음으로 인해 가장 논쟁적이며 매혹적인 작가로 남아 있다.
미시마 유키오, 탄생 100주년에 한국어로 처음 소개되는 결정판 평전
2025년은 미시마 유키오(1925~1970)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미시마의 충격적인 죽음으로 인해 국내에서는 오랫동안 금기시되어 온 작가이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대작 《풍요의 바다》 한국어판이 올해에야 완간될 정도로 미시마 유키오는 극단적 우익 작가 혹은 엽기적인 인물로 인식되어 있다. 하지만 미시마 유키오는 전후 일본 문단의 대표적 작가였으며, 그의 작품의 주요 주제인 극한의 탐미주의와 폭력성, 죽음 충동과 니힐리즘 같은 문제는 여전히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문학적 탐구를 요청하는 강렬한 주제이다.
미시마 유키오 연구 1인자인 저자 이노우에 다카시는 방대한 1차 자료를 샅샅이 검토하고 새롭게 발굴한 자료까지 철저히 고증해 미시마의 생애를 객관적 사실과 예리한 심리 분석 위에 재구성했다. 복잡하고 다면적인 내면 세계와 시대적 맥락을 동시에 조망함으로써 한 예술가의 자기 연출된 삶을 해부하는 평전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 책은 2021년 제 72회 요미우리 문학상(평론·전기상)을 받은 결정판 전기이다.
전후 일본이 만들어낸 가장 복잡한 얼굴, 미시마 유키오
미시마 유키오는 전후 일본이라는 거대한 실험실에서 탄생한 모순적인 존재였다. 전후 재건과 민주주의, 산업화의 황금기 속에서 일본은 번영했지만 그 이면에는 방향을 잃은 정체성의 위기가 있었다. 미시마는 이 혼란의 중심에서 문학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자신만의 해답을 찾으려 한 인물이다. 그는 근대와 전통, 민주주의와 천황제, 규율과 쾌락, 허무와 아름다움 사이에서 끊임없이 표류하고 분열했다. 그의 일생은 이 상반된 힘들이 충돌하는 격전장이었고, 이런 모순적 갈등은 작품에서도, 그의 삶 속에서도, 마지막 죽음에서도 똑같이 드러났다. 그는 이 모순을 드러내고 끝까지 밀어붙여 ‘파국’을 통해 결론에 도달하려 했다.
미시마란 수수께끼에 다가서는 가장 치밀한 안내서
이노우에 다카시는 기존 연구의 두 경향, 곧 미시마를 광인·극우로 몰아가는 단순화와 천재적 예술가로 미화하는 낭만화를 모두 거부한다. 그는 미시마의 문학·사상·행위가 서로 연결된 거대한 체계를 이루고 있었음을 정밀하게 보여줌으로써 미시마의 자결이 정치적인 우발적 행위가 아니라, 문학적·심리적·미학적 기획의 결말이었음을 입증해 보여준다.
미시마 유키오는 문학 속에서 ‘죽음’을 관념적으로 그려낸 것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순간에 그것을 현실로 구현했다. 이 책은 미시마의 죽음을 비극적 일탈이 아니라, 그의 문학적 세계관의 실천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그가 남긴 말처럼 “죽음은 마지막 작품”이었다.
유폐된 유년기
미시마의 유년기는 ‘고립과 상상력’이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진 폐쇄적 공간이었다. 강압적인 조모 나쓰코의 손에서 자란 어린 미시마는 외부 세계와 거의 단절된 채, 병약한 몸으로 방 안에 갇혀 지냈다. 그 좁은 공간은 그에게 공포·관능·환상이 혼합된 독특한 감각 체계를 만드는 장소가 되었다. 이때 형성된 감정의 회로는 이후 그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어둠 속의 미’, ‘부서진 아름다움’, ‘위험한 감각’의 원형이 된다.
“잃어버린 꿈, 꺾여버린 자부심, 차오르는 분노”
《가면의 고백》에서 “조모는 조부를 증오하고 멸시했다. 그녀는 고집스럽고 꿋꿋한, 또는 미친 듯이 시적인 영혼이었다.”라고 했듯이 나쓰코의 병적 결벽증은 잘 알려져 있는데, 일련의 사정을 고려하면 그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성싶다. 그런 나쓰코가 유일하게 마음을 의지하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기미타케, 훗날의 미시마 유키오였다. 나쓰코는 아들 부부에게서 첫 손자를 빼앗는다. 그리고 잃어버린 황홀한 꿈, 몇 번이나 꺾여버린 자부심, 시도 때도 없이 치밀어 오르는 분노……, 이 모든 정념을 모조리 미시마에게 쏟아부었다. - 제1장 유폐된 어린 시절(34쪽)
“나는 몽상을 향한 용기를 배웠다”
“유년기에서 소년기에 걸쳐 [……] 몽상을 위해서라면 기나긴 하루를 다 쓰는 것도 아까워하지 않는 성질이었던” 주인공은 “주어진 책을 기다릴 것 없이 아라비안나이트는 나 자신의 손으로 쓸 수 있어야 한다”고 결심하기에 이른다. 확실히 미시마는 나쓰코에 의해 유폐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은 단지 미시마의 존재를 억압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상력의 비상을 돕기도 했다. - 제1장 유폐된 어린 시절(37쪽)
시를 쓰는 소년
가쿠슈인 중등과에 입학한 미시마는 또래와는 다른 독특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와카 짓기’ 과제를 대신 써줄 정도로 문학적 재능을 드러냈으며, 스스로 노트와 원고지를 묶어 수백 편의 시를 써 내려갔다. 이 시들은 현실을 넘어서는 상상력과 정교한 언어 감각을 보여주며, 문학적 천재로서의 자질을 증명해주었다. 그러나 스스로 시 창작에서 한계를 느낀 미시마는 소설로 방향을 전환했는데, 내면의 우주를 확장해 가며 ‘아름다움과 죽음’, ‘허무와 열망’을 동시에 포착하는 십 대 시절의 작품들에는 이후 평생 전개될 탐미주의와 허무주의의 씨앗이 담겨 있었다.
“나는 밤이면 밤마다 창가에 서서 갑작스런 불행을 기다렸다”
“나는 흉사를 기다리고 있다 / 길보(吉報)는 흉보였다 / 오늘도 치어 죽은 사람의 이마는 검고 / 나의 피는 검붉게 얼어붙었다……. ”(〈흉사〉, 15살에 쓴 시)
여기에서는 억누르기 힘든 폭력 충동이 드러난다. 그러나 동시에 ‘저녁놀의 흉사’도 어느새 사라지고 만다. 그것은 찾아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때마다 멀어져 무화하는 환영(幻影)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밤이면 밤마다’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 제2장 시를 쓰는 소년(58~59쪽)
“너의 세계에는 넘보기 어려운 뭔가가 있다.”
“정직하게 말하면 같은 잡지에 작품을 실을 것을 보고 나는 너에게 외경의 마음을 품었다. 내가 조금 나이가 많다고 해서 잘난 척할 수는 없다. 적어도 너의 독특한 감성의 세계(조금 다른 언어)는 흉내 낼 수가 없다. [……] 너의 세계에는 넘보기 어려운 뭔가가 있다. 냉정한 비평이 너를 불필요하게 몰아세우지나 않을까 두렵다.”(선배인 아즈마 다카시가 보내온 편지, 1940년) - 제2장 시를 쓰는 소년(61쪽)
“나 자신이 뿔뿔이 흩어져버릴 것 같다”
훗날의 강연에서도 미시마는 문학적 출발기를 회고하면서 “나는 [……] 나 자신이 가장 걱정스럽다. 나라는 인간은 어찌 될 것인가. 내버려두면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관념 세계로 하여금 자기라는 것을 유지하게 하지 않으면 나 자신이 뿔뿔이 흩어져버릴 것만 같은 위험을 느꼈다.”라고 말한다. - 제3장 불안의 문학적 모험(79쪽)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탄생
시에서 소설로 전환한 지 일 년 만인 1941년, 열여섯 살 소년은 ‘미시마 유키오’라는 필명을 사용하며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첫 작품 <꽃이 한창인 숲>을 연재한 《문예문화》편집진은 작가가 나이 어린 소년이지만 자신들의 동료이며, “일본 역사가 점지한 아이”라며 격찬한다.
열여섯 살 천재 소설가
시에서 소설의 세계로 방향을 바꾸겠다고 마음먹은 이후 미시마의 재빠른 발걸음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이다. 영향을 받은 외국 작가도 라디게, 조이스, 프루스트, 릴케 등 다채로운데, 그는 당시 일본에서 알 수 있는 세계 문학의 최첨단을 만나고 있었던 셈이다. 미시마가 아직 적으면 열네 살, 많으면 열여섯 살의 소년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 제4장 열여섯 살 천재 소설가(93쪽)
“일본 역사가 점지한 아이다.”
이것이 〈꽃이 한창인 숲〉 첫 회 게재호의 편집후기에서 볼 수 있는 찬사, 즉 “〈꽃이 한창인 숲〉의 작가는 완전한 연소자이다. [……] 바로 우리들의 어린 동료이다.” “유구한 일본 역사가 점지한 아이다. 우리들보다 나이는 훨씬 적지만 이미 성숙한 뭔가가 탄생한 것이다.”라는, 잘 알려진 하스다의 미시마 찬사로 이어지는 것이다. - 제4장 열여섯 살 천재 소설가(100~101쪽)
필명 미시마 유키오
아직 중등과 5년의 연소자인 필자를 세상으로부터 지키고 동시에 히라오카 집안을 배려하기 위해 필명을 지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편집회의가 열리는 슈젠지로 가는 길에 미시마(三島) 역을 통과한 것과 그곳에서 올려다본 것이 후지산의 백설(白雪)이었던 것에서 자연스럽게 ‘미시마 유키오(三島ゆきお)’라는 이름이 정해졌다. - 제4장 열여섯 살 천재 소설가(104~105쪽)
《가면의 고백》, 마음속의 괴물을 어떻게든 정복하고자 한 소설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대장성에 근무하면서 창작을 병행한 미시마 유키오는 1948년 장편 소설 집필을 의뢰받자 사표를 내고 전업 소설가의 길로 들어선다. 1948년부터 1949년까지 집필한 《가면의 고백》은 미시마가 자신의 내면을 ‘해부하듯’ 드러낸 자전적 작품이다. 어린 시절부터의 내밀한 성적 자각, 세바스티아누스 콤플렉스, 죽음의 아름다움을 결합해 정면으로 고백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스물네 살 미시마 유키오는 전후 문학의 대표자로서 지위를 굳건히 했다.
“이 책은 나에게 뒤집힌 자살이다”
“이 책은 내가 지금까지 그곳에서 살았던 죽음의 영역에 남기고자 하는 유서다. 이 책을 쓰는 것은 나에게 뒤집힌 자살이다. 투신 자살을 영화로 찍어 필름을 거꾸로 돌려보면 맹렬한 속도로 계곡 아래에서 절벽 위로 날아올라 되살아난다. 이 책을 씀으로써 내가 시도한 것은 그러한 생의 회복술이다.”(<‘가면의 고백’ 노트>) - 제6장 폐허 속의 문학(139~140쪽)
“사형수이자 사형 집행인이 되고자 한다”
“새 작품은 11월 25일부터 쓰기 시작할 예정이며 제목은 ‘가면의 고백’입니다. [……] 이 소설은 태어나서 처음 쓰는 사소설인데, 물론 문단적 사소설이 아니라 지금까지 가상의 인물을 대상으로 했던 예리한 심리 분석의 칼날을 자신에게로 돌려 스스로 자신의 생체를 해부하려는 시도이며, 가능한 한 과학적 정확함을 기하고, 보들레르의 이른바 ‘사형수이자 사형 집행인’이 되고자 합니다.” - 제7장 가면의 고백(161~162쪽)
《금각사》, 파괴의 아름다움
1956년에 발표된 《금각사》는 미시마 유키오 문학의 정점이자, 세계 문학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첫 작품이다. 서른한 살에 집필한 이 작품은 교토 금각사를 불태운 실제 사건을 소재로 삼아 아름다움 자체에 대한 집착, 파괴를 통한 미의 상승, 순수와 폭력의 결합을 그렸다. 언어와 국경을 넘어 인간 보편의 욕망과 파괴 충동을 형상화한 이 소설은 동시에 미시마 자신의 내적 갈등과 미학적 결단을 반영한 예술가 소설이기도 하다. 저자는 특히 미시마가 소설 속 주인공의 파괴 행위를 통해 전후 일본의 기만적 질서에 도전을 감행했음을 강조한다.
“소설가는 왜 상처를 무릅쓰고서 소설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가”
“소설을 쓰는 것은 많든 적든 생을 가로막고, 생을 정체시키는 일이다. 나는 20대에 이렇게 빈번히 생을 가로막고, 생을 정체시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 나는 순연한 예술의 문제든 순연한 인생의 문제든 소설 고유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설 고유의 문제란 예술 대 인생, 예술가 대 생의 문제이다. …… 이리하여 소설 고유의 문제는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왜 소설을 쓰는가, 어떻게 소설을 쓸 것인가라는 문제로 귀착한다. 가장 보편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왜, 그리고 어떻게 예술에 관여하는가라는 문제로 귀착한다.” (《소설가의 휴가》, 1955년) - 제10장 파괴의 아름다움(251~252쪽)
《풍요의 바다》와 죽음의 설계
《교코의 집》(1959년) 이후 평단의 혹평과 개인적 혼란 속에서도 미시마 유키오는 여전히 ‘시대와 역사의 전모를 포착하는 소설’을 꿈꾸었다. 단편적 성취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문학과 사상 전체를 관통하는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철학을 모색했다. 그 노력은 결국 1965년부터 집필을 시작해 1970년 최후의 순간까지 이어진 4부작 《풍요의 바다》로 결실을 맺는다. 이 대작은 불교의 유식론과 윤회 사상을 핵심 축으로 삼아,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문제와 전후 일본 사회의 기만적 구조를 동시에 탐구한다.
《풍요의 바다》 마지막 권 《천인오쇠》는 미시마 문학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종결짓는 작품이다. 주인공 혼다는 전생의 인물들을 지켜보며 삶과 죽음의 연속을 확인하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도달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허무의 극한이다. 저자는 미시마가 유식 사상을 통해 모든 것이 환영이며 근본적 허무로 귀결된다는 인식을 문학적으로 구현했다고 본다. 그러나 미시마는 이 결론을 소설 속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았다. 그는 작품의 완성과 동시에 자신의 삶을 끝내는 자결을 통해 문학적 서사와 현실의 행위를 하나로 합치려 했다.
“세계 해석의 소설을 쓰고 싶었다”
“1960년 무렵부터 나는 길고 길고 긴 소설을 정말로 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19세기 이후 서구의 대장편(大長篇)과 비교할 때 그것들과 다른, 그리고 전혀 별개의 존재 이유를 갖는 대장편이라는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우선 나는 무턱대고 시간을 따라 이어지는 연대기적인 장편에는 식상해 있었다. 어딘가에서 시간이 점프하고, 개별적인 시간이 개별적인 이야기를 구성하며, 나아가 전체가 커다란 원환을 이루는 것이 좋았다. 나는 소설가가 된 이후 줄곧 생각해 왔던 ‘세계 해석의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일본인이고, 다행스럽게도 윤회 사상은 친숙했다.” - 제15장 전체 소설의 꿈(363쪽)
“이 정원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혼다의 윤회전생 이야기를 들은 사토코는 그것은 모두 꿈 이야기가 아니냐고 답하면서, “마쓰가에 기요아키란 분은 이름을 들은 적도 없습니다. 애초에 그런 분은 계시지 않았던 게 아닌지요? 혼다 씨는 왠지 있었다고 생각하시는 듯한데 사실은 처음부터 어디에도 없었던 것은 아닌지요? 이야기를 듣노라니 아무래도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라고 말한다.
혼다는 충격을 받은 나머지 자신의 존재가 순식간에 사라져 가는 듯한 생각에 휩싸인다. - 제20장 허무의 바다(522쪽)
바닥 모를 허무를 형상화하는 까닭
허무를 형상화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절망에 절망을 거듭할 뿐이지 않은가. 그런 물음에 이렇게 답하고 싶다. 우리들은 뿌리 깊게 그리고 교묘하게 뒤얽힌 기만의 구도에 얽매여 자신이 지금 어디에, 어떤 상태에 있는지 스스로 알 수가 없다. 풍부한 문예 전통의 힘을 빌려 우리들의 거처를 정확하게 가리켜 보이는 것, 그리고 그 형상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들에게 필요한 작업이자 동시에 창조적인 일이 아닐까. 왜냐하면 이렇게 해야 비로소 모든 일을 바로잡을 수 있는 출발선에 설 수 있을 테니까. - 제20장 허무의 바다(541쪽)
이노우에 다카시
1963년 출생. 일본 시라유리여자대학 문학부 교수. 도쿄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미시마 유키오 연구의 대표 학자로서 《미시마 유키오 허무의 빛과 어둠》, 《화려한 가면 미시마 유키오》 등 다수의 저술을 통해 전후 일본 문학과 사상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해 왔다. 《미시마 유키오, 죽음의 충동과 허무의 미학》으로 제72회 요미우리 문학상(평론·전기 부문)을 수상했다.
정선태
1963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는 국민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심연을 탐사하는 고래의 눈》 《근대의 어둠을 응시하는 고양이의 시선》 《시작을 위한 에필로그》 등이 있으며, 역서로《쇼와 육군》 《도조 히데키와 제2차 세계대전》 《속국 민주주의론》 《영속패전론》 《일본문학의 근대와 반근대》 《가네코 후미코》 《일본어의 근대》 《창씨개명》 《기타 잇키》(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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