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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인문학

번역의 모험

by 교양인 2021. 11. 5.

번역의모험(보도자료).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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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번역, 훌륭한 번역이란 무엇인가?
두 언어를 횡단하는 베테랑 번역가의 치열하고도 경이로운 모험

 

《번역의 모험》은 30여 년 동안 번역 현장에 몸담으며 한국어의 개성을 살리는 독창적인 번역론을 모색해 온 저자의 숙련과 통찰이 담긴 책이다. ‘번역 바이블’이라 불리며, 번역가와 편집자뿐 아니라 언어를 다루는 직업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이 필독서로 꼽는 책 《번역의 탄생》 이후 저자가 12년 만에 출간하는 후속작이다. 전작이 원문을 영어와 일본어에 물들지 않은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옮기는 법을 다루었다면 《번역의 모험》은 ‘문턱이 낮은 한국어’로 옮기는 법을 다룬다.

저자가 말하는 문턱이 낮은 글이란 독자가 편히 ‘정주행’하도록 돕는 글이다. 즉 문장에 담긴 뜻이 금방 와닿지 않는 모호한 대목에서 독자가 읽기를 멈추거나 다시 뜻을 살피려고 ‘역주행’하지 않게끔 하는 글이다. 이 책은 명료하고 간결한 우리말 문장을 짓는 데 요긴한 원칙을 ‘쉼표’ ‘모으기’ ‘찌르기’ ‘흘려보내기’ ‘맞추기’ ‘낮추기’ ‘살리기’라는 주제로 나누어 일목요연하게 짚어준다. 남발되는 쉼표 탓에 문장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문장부호를 적절히 사용하는 법, 가까이 있어야 할 말을 모으고 멀리 두어야 할 말을 떼어놓아서 문장의 모호함을 없애는 법, ‘주연’을 압도하는 문장 속 ‘조연’을 슬쩍 흘려보내 주제어를 명확히 드러내는 법을 알려준다.

 

쉼표 하나, 띄어쓰기 하나에 이렇게 깊은 뜻이 있다고?
고대 그리스부터 근대 조선까지 흥미로운 역사와 맞물려 펼쳐지는 번역의 여정

서양에서 쉼표는 기독교 시대가 열리면서 등장했다. 신의 말을 정확히 옮겨야 한다고 믿었던 기독교인은 오해의 여지 없이 뜻을 정확히 담아내려고 문장부호에 기댔고, 그 덕분에 글의 문턱이 낮아져 글을 눈으로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한국어의 띄어쓰기는 모든 단어를 붙여써서 뜻이 모호해진 글의 문턱을 낮추려 했던 조선 후기 서양 선교사들의 주도로 받아들여졌다. 이처럼 글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탄생한 ‘쉼표’와 ‘띄어쓰기’가 오늘날에는 왜 되레 글의 문턱을 높이는 주범이 되었을까?

저자는 쉼표까지 그대로 살리는 번역의 영향을 받아 한국어 문장을 쓸 때에도 기계적으로 쉼표를 찍는 사례가 많아진 현실을 지적하며 과도한 쉼표와 띄어쓰기 사용이 글의 문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현행 맞춤법에 따르면 ‘싶어 하다’는 띄어써야 하지만 ‘싫어하다’는 붙여써야 한다. ‘글솜씨’와 ‘말솜씨’는 붙여써야 하지만 ‘요리솜씨’와 ‘노래솜씨’는 띄어써야 한다. 이렇듯 예외에 예외가 겹치면서 띄어쓰기 자체가 족쇄가 되어 글쓰기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입말을 그대로 옮긴 글로 마음을 사로잡았던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말하듯이 글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태초에 있었던 것은 말이지 글이 아니다. 말하듯 쓰면 문장은 저절로 깨끗해진다.

 

원문에 얽매이지 않아야 비로소 원문이 살아나는 역설의 번역론

번역은 말과 말을 잇는 일이다. 다시 말해 원문과 번역어를 연결하는 일이다. 이때 원문에 충실할 것이냐 번역어에 충실할 것이냐는 번역가들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다. 저자는 원문을 엄격하게 따라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번역자가 사소한 대목까지 옮겨놓으면 독자가 고통스러워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원문에 무작정 끌려가지 않으면서 원문을 생생하게 살리기 위해 필요한 번역 원칙이 무엇인지 자세히 다룬다. 주제가 무엇인지 찔러주는 역할을 하는 주제조사를 아껴 써야 하는 이유, 시뿐만 아니라 산문에서도 운율을 더해 문장의 박자감을 살리는 법, 한국어에 없는 완료 시제를 우리말 부사어로 표현하는 법을 알려준다.

 

“이 말과 저 말을 잇는 징검다리를 놓겠다는 절박감이 있을 때
좋은 번역가가 될 수 있다”

2018년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보고서 <4차산업혁명시대의 신(新)직업>에서는 인공지능이 발달하여 위험해진 대표적인 직업 중 하나로 통·번역가를 꼽고 있다. 과학 논문이나 사건 보도 기사처럼 문장 구성이 정형화돼 해석의 폭이 좁은 글은 기계번역으로 대체하기가 쉽고, 기계가 사람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30여 년간 번역 일선에서 분투하며 현실에서 쓰이는 우리말에서 출발한 창조적인 번역관을 정립해 온 저자는 장래의 번역가들에게 번역의 앞날을 길게 바라볼 것을 조언한다. 번역가는 단순히 이 말을 저 말로 옮기는 좁은 의미의 번역가로 만족해서는 안 되며, 현실을 말로 제대로 담아내는 넓은 의미의 번역가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10년 전에 한 번역과 1년 전에 한 번역이 달라지는 것. 조금씩이라도 나은 문장을 만들기 위해 정진하는 것. 그것이 번역이 위기에 처한 시대에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번역가의 덕목이다.

 

“문턱이 낮은 글이 좋은 글이고
문턱이 낮은 사회가 좋은 사회다.”

번역하다 떠오른 풀이와 표현을 적어두기 시작한 것은 기억이 안 날 때 처음부터 다시 궁리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의 낭비를 피하고 싶어서였다. 시간은 걸렸지만 그런 자료가 쌓여 2009년에 《번역의 탄생》을 낼 수 있었다. 《번역의 탄생》이 자연스러운 한국어를 추구했다면 《번역의 모험》은 문턱이 낮은 한국어를 추구한다. 문턱이 낮은 글 덕분에 독자는 자원을 그만큼 덜 수 있지만 역자는 자원을 더 들여야 문턱이 낮은 글을 지어낼 수 있다. 궁리를 더 해야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자동번역의 시대에 번역가가 자기 직업의 존엄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지키는 길은 번역에 더 공을 들이는 길 말고는 없다.
문턱이 낮은 글이 좋은 글이고 문턱이 낮은 사회가 좋은 사회다. 작고한 기업인 김우중 회장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모험 정신을 강조했지만 세계는 넓고 읽어야 할 책, 옮겨야 할 책은 많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문턱이 낮은 글, 문턱이 낮은 사회를 꿈꾸는 번역자의 여정에 《번역의 모험》이 작은 동반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_머리말에서

 


주요 내용 소개


원문을 죽여야 원문이 사는 역설의 번역론

 

이 책의 특징은 현실 한국어에서 출발한 번역, 문턱을 낮추는 한국어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흔히 말하는 딱딱한 번역체 문장이 아닌 한국 독자들이 편히 읽을 수 있는 단정하고 간결한 번역문 짓는 법을 열한 개의 주제를 통해 명쾌하게 제시한다.

부사가 제자리에 놓여야 문장이 안정된다 _ ‘모으기’

‘모으기’에서는 부사와 동사, 주어와 동사 등 제짝처럼 붙어다녀야 할 것들을 제대로 모아주어야 원문의 내용을 해치지 않는 정확하고 명료한 번역문이 나올 수 있음을 알려준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6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차 방한해 자국 교민행사에서 여성에게 키스한 것에 대한 비판에 ‘질투하는 것’이라고 반격했다.”
위 문장에서 6일은 필리핀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로 한 날인가요 아니면 방한한 날인가요. 필리핀 교민행사가 있던 날인가요. …… 만일 6일이 정상회담 날짜라면 ‘6일 정상회담차’로, 방한 날짜라면 ‘6일 방한해’로, 교민행사 날짜라면 ‘6일 자국 교민행사에서’로 날짜와 사건을 붙여주어야 합니다. 부사가 있어야 할 자리는 부사가 도우려는 동사의 바로 옆자리입니다. 부사가 제자리에 놓여야 문장이 안정됩니다. 제대로 놓인 부사는 글의 집중도를 높입니다. (45~47쪽)

주제조사, 명료한 문장의 비밀 _ ‘찌르기’

‘찌르기’에서는 문장 안에서 ‘주제가 이것이다’ 하고 급소를 정확히 찔러주는 역할을 하는 주제조사 ‘-은’ ‘-는’을 적재적소에 넣어 문장의 모호함을 없애는 법을 제시한다.

주제조사는 말 그대로 문장 안에서 주제가 이것이다 하고 주제를 찌르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주제조사가 나오면 우리는 저절로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크게 뜹니다. 그런데 문장 안에 쉼표가 너무 많으면 흐름이 끊기듯 문장 안에서 주제조사가 여기저기에서 찔러대면 오히려 초점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 주제조사가 부각시키려는 것은 결국 주제어입니다. 문맥상 주제어와의 관계를 분명히 알 수 있을 때는 진짜 주제어만 남기고 나머지는 빼도 좋습니다. (72, 73쪽)

원문 그대로 강박이 문장을 망친다 _ ‘흘려보내기’

‘흘려보내기’에서는 원문을 있는 그대로 살리기보다 살릴 것은 살리고 흘려보낼 것은 흘려보내 한국 독자들이 편히 정주행할 수 있도록 잘 읽히는 번역문 짓는 법을 알려준다.

미국에서 1년 동안 코로나 감염병으로 죽은 사람이 20만 명이 넘고 이것은 충주시 인구와 맞먹는다는 기사를 한국 언론사가 보도했다면 충주시라는 비교 대상은 20만이라는 숫자를 한국 독자가 실감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기사를 미국 언론에서 보도하면서 원문의 충주시를 영어 번역문에서도 그대로 살려주면 미국 독자는 충주시라는 단어 앞에서 멈칫할 겁니다. 비교 대상 자체가 낯설고 생소하다면 글에서 제시하는 비교 대상은 글의 흐름을 오히려 끊어놓습니다. 원문에 담긴 내용은 최대한 살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번역자가 사소한 대목까지 있는 그대로 옮겨놓으면 독자가 고통스러워집니다. (106, 107쪽)

 

쉼표가 없어도 머리에 잘 들어오는 글이 좋은 글이다
_ ‘묵독’ 문화의 시작과 ‘쉼표’의 탄생

요즘 한국어 책을 읽다보면 쉼표가 부쩍 많이 들어간 문장을 쉽게 발견하곤 한다. ‘하지만, 따라서, 더욱이,’ 다음에는 무조건 쉼표를 찍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영어에서 ‘however, therefore, moreover,’ 다음에 쉼표를 찍기 때문이다. 긴 문장이 아닌데도 별 생각 없이 글 안에 쉼표를 찍는 사람도 많다. 역시 영어의 영향 탓으로 보인다. 저자는 영어에서 쉼표를 찍는 데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지만 한국어에서 불필요한 쉼표는 오히려 글을 지저분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한국어는 ‘-면’ ‘-지만’ ‘-고’ ‘-며’처럼 어미가 발달해서 쉼표에 기대지 않고도 글을 얼마든지 길게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Although the shooting has stopped for now the damage is enormous.
이 영문은 모호합니다. ‘총격이 그쳤지만 당장은 피해가 막심하다’고 볼 수도 있고 ‘당장은 총격이 그쳤지만 피해가 막심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앞의 뜻이 되려면 for now 앞에 쉼표를 찍어야 하고 뒤의 뜻이 되려면 for now 뒤에 쉼표를 찍어야 합니다.
영어에서는 although 같은 접속사가 거느리는 종속절이 앞에 오면 종속절이 어디에서 끝나고 주절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알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종속절과 주절이 갈리는 곳에 쉼표를 찍어줍니다. 하지만 한국어에서는 ‘-지만’ 같은 영어 접속사 although에 해당하는 어미가 문장 중간에서 종속절을 잘 매듭지어주므로 쉼표에 크게 안 기대어도 됩니다. (13~15쪽)

 

‘쉼표’는 누가 처음 만들었고 어떤 이유로 만들어졌을까? 쉼표는 글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끊어 읽는 곳을 알리려고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리아도서관 사서였던 문법학자 아리스토파네스가 개발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많은 저술가들은 쉼표 같은 문장부호를 하찮게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글은 입으로 한 말을 그대로 적어놓은 입글이었고, 묵독보다 낭독을 위한 글이었다. 6세기경 기독교 시대가 열리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기독교인은 신의 말을 정확히 담아내야 한다고 믿었으므로 문장부호를 적극 차용했고, 문장부호 덕분에 글의 문턱이 낮아지다보니 글은 낭독하는 입글이 아니라 묵독하는 눈글로 바뀌어 갔다.

서양에서 입으로 읽는 낭독 문화가 눈으로 읽는 묵독 문화로 바뀐 것은 15세기 중반에 일어난 인쇄 혁명으로 책이 대량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서양 문장부호의 역사를 연구한 영국의 서지학자 맬컴 파크스에 따르면 독서 풍토를 낭독에서 묵독으로 바꾼 주역은 문장부호입니다. 묵독은 인쇄기가 없어서 책이 귀했던 중세의 수도원에서도 이미 지배적 독서 문화였습니다. 문장부호는 독서의 진입 장벽을 낮추어 묵독의 길을 터주었습니다. 하지만 문장부호는 글을 지저분하게 쓰는 문화도 낳았습니다. 쉼표는 아껴야 합니다. 그래야 꼭 필요한 순간에 쉼표가 빛을 발합니다. 쉼표는 쉼표에 둔감해지지 않은 사람에게만 선명한 이미지를 남깁니다. (41, 42쪽)

 

참을 수 없는 ‘사이시옷’의 가벼움
_ ‘어원주의’ 영어, ‘표음주의’ 에스파냐어와 한국어의 차이

오늘날 영어 맞춤법의 토대가 말의 뿌리를 드러내려는 ‘어원주의’로 자리 잡은 데에는 어원주의 맞춤법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16세기 영국의 교육자 리처드 멀커스터의 영향이 컸다. 단어를 소리 나는 대로 적어야 한다는 ‘표음주의’를 따르면 발음 변화에 맞추어 맞춤법을 수시로 바꿔야 하는데, 현실에서 북쪽 방언과 남쪽 방언을 쓰는 사람이 소리 나는 대로 적는 영어는 매우 달랐으므로 소통의 문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였다. 현실에서 쓰이는 글을 사람들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못 느낀다면 굳이 라틴어 어원을 살리려 한 영어의 전통주의 곧 어원주의 맞춤법을 뜯어고칠 이유가 없다고 보았다.

영어와 달리 에스파냐어는 ‘표음주의’를 토대로 삼아 맞춤법의 토대를 세웠다. 13세기에 갈리시아, 레온, 카스티야 세 왕국을 통합한 에스파냐 국왕 알폰소 10세는 카스티야를 중심으로 하여 이슬람 세력을 에스파냐 영토에서 몰아내는 국토회복운동을 펼쳤다. 그 과정에서 되찾은 땅에 백성들을 잘 정착시키기 위해 문턱이 높은 글말 라틴어가 아니라 문턱이 낮은 입말이었던 토착어 카스티야어를 행정어로 삼아 각종 법률을 반포했다.

이렇듯 영어와 에스파냐어의 맞춤법은 역사적으로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문턱이 낮은 글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영어 맞춤법이 어원주의 원칙을 기둥으로 삼은 것은 이미 어원 중심으로 굳어진 기존의 맞춤법을 고수하는 것이 가독성을 높이고 글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라고 믿어서였습니다. 에스파냐어 맞춤법이 표음주의 원칙을 기둥으로 삼은 것은 되찾은 땅에서 뿌리내리고 살 백성과 소통하려면 백성의 입말에 가까운 표기를 표준말로 삼아 글의 문턱을 낮추어야 한다고 믿어서였습니다. (237, 238쪽)

 

한국어의 사정은 어떨까? 대체로 된소리가 나는 자리에 사이시옷을 집어넣으라는 한글 맞춤법 30항에 따르면 한국어는 어원주의가 아니라 표음주의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표기는 발음에 가깝게 적어야 한다며 사이시옷을 들이미는 한글 맞춤법이 오히려 글의 문턱을 높인다고 지적한다. 사이시옷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느라 보통 사람이 글쓰기를 더 두려워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냇가’나 ‘깻잎’은 확실히 ‘내까’나 ‘깬닢’으로 된소리가 나므로 사이시옷을 넣어야 한다는 원칙에 수긍이 갑니다. 하지만 ‘장마비’를 ‘장맛비’로 적어야 하고 ‘막내동생’을 ‘막냇동생’으로 적어야 한다는 규정 앞에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장마비’를 ‘장마삐’로, ‘막내동생’을 ‘망내똥생’으로 거세게 읽기가 더 불편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입니다. …… 1880년 프랑스인 신부들이 낸 《한불자전》에도 ‘핏줄’이 아니라 ‘피줄’이 표제어로 올라 있었습니다. ‘핏발서다’가 아니라 ‘피발셔다’가 표제어로 올라가 있었습니다. ‘햇볕’이 아니라 ‘해볏’이, ‘햇빛’이 아니라 ‘해빗’이 표제어였습니다. 설령 일부 사람들이 자꾸 된소리로 발음하는 습성이 생겼다 하더라도 그런 된소리를 맞춤법의 기준으로 삼아서 사이시옷을 자꾸 끼워넣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요. (229, 230쪽)

 

원칙 없는 띄어쓰기가 글의 문턱을 높인다
_ 한국어에서 띄어쓰기를 하면 오독 가능성이 높아지는 이유

한국어의 띄어쓰기는 쉼표와 띄어쓰기가 없는 언문을 읽을 때마다 어려움을 토로했던 조선 후기 서양 선교사들의 주도로 받아들여졌다. 7세기 말 서양에서 아일랜드 수사들이 처음으로 띄어쓰기를 시도한 것도 낯선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정확히 끊어 읽기가 어려워서였다. 하지만 한국어의 띄어쓰기 의존도는 유럽어보다 훨씬 낮다. 한글도 로마자나 그리스 문자처럼 소리를 자음과 모음으로 정밀하게 나타내는 알파벳 글자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한국어에서는 ‘유엔과학기술발전위원회보고서’처럼 한글 자모를 가로세로로 묶어서 쓰는 ‘모아쓰기’를 하지만 유럽어에서는 ‘unreportonscienceandtechnologyfordevelopment’처럼 알파벳 자모를 풀어서 쓰는 ‘늘어쓰기’를 한다는 점이다.

십자군전쟁 당시의 이슬람 지도자 알아딜을 알라딜로 잘못 읽지 않도록 알파벳에서는 Al-Adil처럼 중선을 넣지만 한글은 안 그래도 됩니다. 이런 특성은 1880년 프랑스 선교사들이 낸 《한불자전》에서 ‘인가보다’라는 조선어의 발음을 알파벳으로 적으면서 IN-KA-PO-TA처럼 중선으로 음절 사이를 끊어야 했다는 점에서도 드러납니다. 알파벳은 늘어쓰기를 하기에 중선으로 끊지 않으면 음절의 경계가 모호해집니다. 그래서 INKAPOTA라고 중선 없이 늘어놓으면 ‘인갑오다’로 읽을 수도 있고 ‘인가볻아’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한글은 모아쓰기를 하기에 음절의 구분선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영어 알파벳보다 한글의 띄어쓰기 의존도도 훨씬 낮아집니다. (242, 243쪽)

 

한국어와 달리 중국어와 일본어는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중국인과 일본인이 새로운 내용이 담긴 글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한자의 강한 표의성 때문이다. 한국어도 예전처럼 한자를 섞어 쓴다면 굳이 띄어쓰기를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한글 전용’이 글의 문턱을 낮추는 데 여러모로 유리하므로 한국어에서 띄어쓰기는 여전히 필요하고 유효하다.

하지만 저자는 오늘날 띄어쓰기 자체가 하나의 족쇄가 되어서 글쓰기를 억압하는 기제가 된 것은 아닌지 우려한다. 애당초 띄어쓰기를 한 목적은 유럽에서도 한국에서도 글쓰기의 문턱을 낮추려던 것이었는데 과도한 띄어쓰기가 문장을 오히려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같이 어울려 쓰이는 말들은 자연스럽게 달라붙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죽을병, 우는소리, 식은땀, 목매달다, 귀담아듣다, 피맺히다, 눈멀다, 잘살다, 못살다, 잘나가다, 잘되다, 오래되다, 힘들다, 생각나다가 표제어로 당당히 오른 것은 그래서입니다. 흘러들다, 모여들다, 찾아다니다도 같은 이유로 표제어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흘러내려가다, 모여서다, 찾아나서다도 표제어에 올라야 하지 않을까요. 들고일어나다가 표제어로 올랐다면 들고일어서다도 표제어로 올라야 하지 않을까요.
원래 한글은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글의 문턱을 낮추려고 띄어쓰기를 했을 뿐입니다. …… 띄어쓰기는 새로운 정보를 쉽고 정확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습니다. 하지만 띄어쓰기는 어디까지나 조역임을 알아야 합니다. 띄어쓰기 원칙은 쉽고 명쾌하고 유연해야 합니다. (246~254쪽)

 

번역은 언어의 징검다리를 놓는 일
_ 번역가, 사전편찬자가 되다

《영일대역휴대사전》(1862) 《영일자휘》(1873) 등 일본에서 영일사전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쳐 대체로 번역가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그들은 영어에 대응하는 일본어가 있는지 없는지 찬찬히 살폈고 없다 싶으면 한자를 공유하는 중국어에서 말을 빌려와서라도 영일사전을 만들어나갔다. 그들의 출발점은 현실 일본어였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조선에서 영한사전 편찬을 주도한 사람은 외국인 선교사였다. 그들은 조선인이 쉽게 알아들을 만한 조선말이 외국인의 입에서 나올 수 있도록 영한사전을 만들었다. 그들의 출발점도 현실 조선어였다.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에서 영한사전 편찬을 주도한 사람은 한국인이었다. 그들은 현실 한국어에서 출발하지 않고 이미 완성도 높은 영일사전에서 출발했다. 이는 어떤 결과로 이어졌을까?

한국의 영한사전은 영일사전이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마련한 일본어 풀이의 도움으로 번역에 유용한 두말사전으로서의 모양새를 빠르게 갖춰나갈 수 있었습니다. 영한사전은 영일사전 덕에 지름길을 걸었지만 낭비와 혼선도 컸습니다. …… 한국어 현실에서 출발하지 않고 영일사전에서 출발하다보니 반세기 전 외국인 사전편찬자들이 조선어 현실에서 찾아낸 살아 있는 조선말을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1890년 언더우드가 《영한자전》을 내면서 조선말에서 찾아냈던 담대한(bold), 도모(contrive), 사양(decline), 상(table), 성품(character) …… 같은 살아 있는 한국어는 해방 이후 한국인의 손으로 편찬된 영한사전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한국어 현실에서 출발하지 않고 영일사전이라는 일본어 현실에서 출발한 탓이었습니다. (281~284쪽)

 

영일사전이라는 중간상을 거치지 않고 영어와 직접 소통한 영한사전은 한국에서 2008년을 전후해서야 비로소 등장했다. 영일사전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살다보니 현실 한국어에 어두워진 한국의 사전편찬자들은 자기 언어 현실에서 대응어를 찾고야 말겠다는 절박감이 부족했다. 저자는 서양을 못 따라잡으면 끝장이라는 절박감에서 서양의 책들을 열심히 번역하다 사전편찬자로 돌아선 일본의 번역가들을 언급하면서, 번역가는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국어를 뒤져 대응어를 찾아내야 하고 가리키는 대상이 사전에 없다면 새로운 말도 과감히 만들어낼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번역가는 기존의 사전에 없는 뜻에 기어이 이름을 지어주고야 마는 사전편찬자의 마음으로 이 말과 저 말을 잇는 징검다리를 만들어내겠다는 절박감이 있을 때 좋은 번역가가 될 수 있습니다. 사전편찬자는 낯선 말을 만났을 때 건너뛰지 않고 기어이 뜻을 밝혀내는 번역가의 마음으로 이 사전 저 사전을 뒤지면서 기존의 사전에 없는 뜻을 찾아내려는 간절함이 있을 때 좋은 사전편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번역가는 사전편찬자입니다. 번역가와 사전편찬자는 영과후진의 동반자입니다. (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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