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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인문학

광기와 천재

by 교양인 2024. 1. 11.

광기와 천재 _ 고명섭


“천재는 광기의 심연에서 솟아오르며, 
광기는 천재의 어두운 그림자와 같다. 
광기가 없었다면 천재성도 없었을 것이며, 
천재가 아니었다면 광기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자신을 한계 너머로 몰아붙인 루소, 푸코, 비트겐슈타인…
극한의 삶에서 발견하는 인간 존재의 내면 세계

루소, 푸코, 비트겐슈타인, 카프카, 히틀러…… 이 책이 들여다보는 인간들은 모순과 역설을 지닌 문제적 인간들이다. 제어할 길 없는 삶의 충동에 떠밀려 사유와 행동의 극한에 섰던 인간들이다. 저자는 자신을 한계상황까지 밀어붙이고 그럼으로써 삶의 모순을 스스로 드러내 보였던 광기 어린 천재 여덟 명의 내면 세계를 추적한다.

문제적 인간들은 우리에게 문제를 던진다. 인간이 무엇인지 답해보라고 수수께끼를 던진다. 불과 얼음, 광기와 천재, 온화함과 냉혹함이 한 마음 안에 동거하는 모순투성이 인간들. 우리의 마음은 그 기이한 마음들과 얼마나 다른가. 그들의 행동양식과 사고방식을 따져보는 것은 곧 우리를 둘러싼 삶을 이해하는 데 나침반 노릇을 해줄 수 있다. 그들의 정신을 절개해 들여다보면 만화경 같기도 하고 살풍경 같기도 한 풍경이 펼쳐지며, 때로는 경탄을 자아내는 숭고한 광경이 열리기도 한다.

폭풍우처럼 숨 가쁘게 몰아치는 특유의 문체로 저자는 문학과 사상과 정치를 가로지르며 문제적 인간들의 내면으로 난 한없이 어두운 미궁 속으로 직진해 들어간다. 안으로 찢겨 자기와 다투고 불화하는 인간들의 내면을 통과해 우리는 인간 존재의 보편적 역설을 만난다.

“천재는 광기의 심연에서 솟아오르며, 광기는 천재의 어두운 그림자와 같다. 광기가 없었다면 천재성도 없었을 것이며, 천재가 아니었다면 광기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광기는 한계 체험까지 자신을 몰아갔던 내적인 충동의 다른 말이다. 그 광기의 충동이 열어놓은 지평 위에서 인간의 욕망과 절망과 희망이 새벽녘 안개처럼, 한낮의 햇살처럼 드러나 보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삶의 완성이 불가능한 꿈이듯, 인간에 대한 이해도 내 소박한 인식 저 너머에 있다. 그 아득함을 잠깐 엿보았을 뿐이다.” - ‘머리말’에서

 

 

글 쓰는 인간 ‘호모 스틸루스’의 매혹적인 주술

“고명섭은 눈과 귀와 코로 읽어낸 세상사를 자기 심장에 새긴 뒤 모든 죽어버린 이념과 시대와 인간에 박동을 부여하는 매혹적인 주술사다. 철저히 수공업적인 ‘글 쓰는 인간(Homo Stilus)’의 전형을 보여주는 고뇌 어렸으되 긴박한 그의 문체는 글을 읽는 내내 심장 박동을 가속화한다. 

문학과 역사와 철학은 이미 경계가 녹아버리고 없다. 가히 지식 연금술이다. 거기에 광기로 얼룩진 20세기 인간 군상들이 숨 쉬고 있다. ‘천재’란 시대가 개인을 빌려 얼굴을 나타낼 때 모습이다. 《광기와 천재》는 그 광기로 우리를 안내하는 혀다. 다만 한 가지 경고를 덧붙인다. 조심하라! 또 조심하라! 침을 삼키게 하는 글의 유혹은 생각의 관절을 무시로 버근거리게 한다.” - 서해성(소설가)

 



모순과 불화의 틈새에서 솟아난 독창성, 장 자크 루소

루소의 일생은 “화해할 길 없는 모순의 드라마”였다. 문학과 예술이 사회를 타락시킨다고 성토했지만 낭만주의 문학의 포문을 연 연애소설《신엘로이즈》를 썼고, 근대 교육학의 출발점이 된 《에밀》을 썼지만 자신의 아이들은 남김없이 고아원에 버렸다. 자기 시대의 부자와 귀족과 권세가를 끝없이 공격했지만 그들의 호의와 후원을 받아 생계를 이어갔다. 그의 모순은 끝이 없었다. 그러나 그 모순, 그 불화의 틈새에서 독창성으로 빛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루소의 경험에서 특징적인 것은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윗도리가 다 젖도록 눈물을 쏟았다는 점이다. 갑자기 세상의 진실을 통찰한 루소는 학문과 예술로 치장한 이 세상이야말로 타락하고 부패했으며 그 세상의 질서에 짓밟히던 자신이야말로 순수하다는 충격적인 발견을 한 것이다. …… 이 깨달음을 기점으로 하여 루소는 “다른 세상을 보았고 다른 사람이 되었다.” - 43쪽

루소가 쓴 글의 모든 내용은 당대 지식인들의 통념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볼테르를 비롯한 계몽주의 지식인 가운데 어느 누구도 학문과 예술과 지식을 부정한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이것들이야말로 진보의 동력이요 원천이라고 이들은 확신하고 있었다. 루소는 이 확신에 망치를 내리쳤다. - 44쪽

루소는 동시대 계몽철학자들처럼 인간성의 꾸준한 향상과 사회의 자연스런 발전을 믿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참으로 인간다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내려면 훨씬 더 근본적인 처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가 바로 그의 역사적 비관주의가 혁명적 의지주의로 도약하는 지점이다. - 56쪽

그는 모든 것들과 심지어 자신의 삶 자체와도 불화했지만, 단 하나, ‘자유’라는 자기 삶의 원칙과는 다투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원칙을 고수했다. …… “나는 굴종으로 얻는 평화보다 위험한 자유를 선택하겠다.” 그는 자유를 절대적 가치로 끌어올린 최초의 철학자였다. - 65~66쪽


배덕자, 배교자, 지식계의 무뢰한 미셸 푸코

푸코는 망치를 든 철학자였다. 근대 서구가 수백 년 동안 쌓아 올린 도덕의 신전을 무너뜨린 사람이었다. 어떤 도덕도 도덕적이지 않음을, 설교대 뒤에 어두운 야심이, 지배의 욕망이 도사리고 있음을 폭로했다. 자기 내부의 ‘광기’를 철학의 토대로 삼아 주체, 이성, 지식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오랜 세월 학문 세계를 통치하던 모든 권위와 상징물들은 산산이 부서지고 철거되었다. 

 

푸코는 《광기의 역사》 서문에서 명백하게 자신이 의사의 편이 아니라 광인의 편임을 선언한다. 의사의 언어, 다시 말해 이성의 언어에 의해 묵살당해 침묵 속에 파묻힌 광인의 언어를 되살리겠다고 다짐한다. …… 이 엄격한 학술 논문은 동시에, 스스로 광인과 동일시했던 푸코 자신의 피맺힌 외침이기도 했다. - 85~86쪽

푸코의 《말과 사물》은 좌파·우파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진영으로부터 비판을 받았지만, 동시에 마르크스주의와 실존주의의 강압적인 군림을 못 견뎌하던 사람들에게는 해방의 소식으로 전해졌다. 푸코는 자신을 짓눌렀던 사상들로부터 스스로 해방되기 위해 책을 썼고, 그럼으로써 비슷한 처지의 다른 많은 사람들을 정신의 감옥으로부터 해방시켰다. - 92쪽

파레시아스트란 ‘파레시아(parrhesia)’를 행하는 자를 말한다. ‘파레시아’란 “진실의 용기”를 뜻하며, 풀어 쓰면 “두려움 없이 진실 말하기”를 뜻한다. “자신이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을 처벌이나 후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행위”가 파레시아다. 이 파레시아를 행하는 자가 바로 푸코적 주체, 혹은 푸코적 지식인일 것이다. - 108쪽

“왜 램프나 주택과 같은 것들은 예술의 대상이 되는데 사람의 인생은 예술 작품이 될 수 없다는 말인가?” 광기의 심연을 거쳐 저항과 투쟁의 강을 지나 그는 마침내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을 예술로 만들고 그렇게 예술로 만드는 데 각각의 주체들이 서로 참여하는 실존의 숲에 이르렀다. 삶은 아름답다. 푸코의 고통과 승리의 삶은 그렇게 말한다. - 109쪽


도덕의 폭군, 순수의 전사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천재의 가장 완벽한 사례”였던 비트겐슈타인은 도덕의 폭군, 순수의 전사였다. 그는 철학적 안개가 걷힌 명료성의 대지를 찾으려 모험했고 정신을 편히 내려놓을 확실성의 토대를 닦으려고 노동했다. 마음 안쪽에서 자신의 나약함과 혹독한 싸움을 벌였다. 다른 사람은 전혀 몰랐겠지만 그는 자기 내부에서만큼은 절실한 문제였던 나약함, 부실함과 혹독한 싸움을 벌였을 뿐이었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극복하는 것, 그것이 비트겐슈타인의 궁극적 목표였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극복하는 것, 그것이 비트겐슈타인의 궁극적 목표였다. 그러므로 자기 안에서 그는 예언자도 마법사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자신을 둘러싼 혼돈의 세상을 견딜 수 없어 불가피하게 몸을 일으킨 반항자였다. 다만 그 반항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무시한 반역으로, 공포스러운 포효로 다가왔던 것이다. - 114쪽

비트겐슈타인의 결벽주의와 완벽주의는 자기 자신의 부실함을 견디지 못했다. 그가 논리학에 그토록 매달린 것도 논리적으로 세계를 해명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해명하고 구출하겠다는 열망과 결합해 있었다. 이제 이 열망이 전쟁터로 향한 것이다. 거기에는 ‘죽음의 충동’이라고 할 만한 것이 결부돼 있었다. 나 자신을 철저히 바꾸지 못한다면 깨끗이 죽는 것이 낫다는 바이닝거적 사고가 마음 밑바닥에 뭉쳐 있었던 것이다. - 132~133쪽

비트겐슈타인은 어디를 가든 사람들을 압도했다. 아무도 그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고 그를 본 사람들은 마치 메두사의 얼굴을 본 것처럼 얼어붙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엄밀성과 정확성을 요구했다. 허튼소리를 용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를 숭배하면서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다. 비트겐슈타인의 친구가 된다는 것은 이를테면, 인격을 벌거벗고 대면하는 일이었다. - 145쪽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주변에 있으면 거의 병적인 고통을 느꼈다. 그것을 바로잡지 않는 한 그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는 끊임없이 지적하고 비판하고 교정하는 작업을 되풀이했다. 그가 철학에서 행한 작업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는 철학자들이 언어를 오해함으로써 남발하는 철학적 문제들을 뿌리에서부터 없애버리려고 했다. 철학의 안개를 걷어내는 것, 철학의 마구간을 청소하는 것이 그가 자신에게 준 임무였다. - 147~148쪽


‘지하 세계’의 어둠 속에 갇힌 소년 프란츠 카프카

카프카는 “성년의 숲을 두려움에 떨며 방황하는 미성년”이었다. 카프카의 작품 속 보이지 않는 족쇄, 보이지 않는 창살, 보이지 않는 담장에 갇혀 있는 인물들은 죄의식에서, 아버지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카프카 자신의 모습이었다. 현실 세계의 뛰어난 관리자, 유능한 직장인은 문학이라는 ‘지하 세계’의 어둠 속에서 간결하고 냉정한 문체로 20세기 문학을 상당 부분 규정지은 유례없는 이미지를 창조해냈다. 

카프카에게 아버지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심판자였고 저항을 허용하지 않는 지배자였고 모든 것을 주관하는 절대자였다. 아버지의 압도적인 권위에 짓눌린 자식은 자기를 하찮고 쓸모없는 존재로 인식했다. …… 아버지에게서 멀어지려는 힘과 아버지에게 다가가려는 힘은 카프카의 마음속에서 완전히 동등한 긴장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 166~167쪽

이런 윤리적 결벽주의의 압력 아래서 카프카의 죄의식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워졌고, 사람들이 자신을 적발해 처벌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그만큼 커졌다. 카프카는 그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외부 세계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후퇴했다. …… 외부 세계와 단절해 자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고립과 유폐는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자기만의 세계 안에 갇힌 소년 카프카는 책읽기와 글쓰기에서 출구를 찾았다. - 169~170쪽

카프카는 관찰자였다. 그는 카페의 열띤 분위기에 휘말리지 않고 그 모든 광경을 거리를 두고 살폈다. 그 심리적 거리에서 카프카 문학의 독특한 문체가 탄생했다. …… 간결하고 냉정하고 무심한 그의 문체는 세계를 정직하게 보려는 윤리적 태도의 소산이었고,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거짓도 치장도 거부했던 금욕적 태도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투명하고도 거짓 없는 문체가 만들어낸 세계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이미지의 세계를 이루었다. - 172~173쪽


불안과 불만으로 세기의 경계를 넘은 나쓰메 소세키

나쓰메 소세키에게 문학은 낯선 세계로 떠나는 항해였고 모험이었다. 푯대도 등대도 없었기에 그는 불만에 차서, 불안에 떨면서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았고, 세기의 경계를 두려움 속에서 넘었다. 소세키는 시대와 문명을 비판하고 인간의 실존을 문제 삼는 소설을 쓰며 일본 근대 문학의 시작을 알렸다. 그러나 이 ‘문명 비평가’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이라는 현실에는 눈길을 주지 않은 시대의 한계 안에 갇힌 호랑이였다.

그는 소설의 힘을 빌려 시대를 비판하고 문명을 비평하고 인간의 실존을 문제 삼았다. 다채로운 문학적 교향악은 날선 비판 의식과 함께 그를 국민 작가로 띄워 올렸다. 그를 따르는 후배 문인들의 발길이 끝없이 그의 집으로 이어졌다. 거기서 일본 근대 문학의 무수한 제2의 씨앗이 뿌려지고 싹이 텄다. 그가 런던 시절 발굴한 네 글자 ‘자기본위’는 문학적 영광의 뒷받침을 받아 제 발로 튼튼히 선 것처럼 보였다. - 218~219쪽

그 자기본위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는 위대한 힘이 되었고, 선진 영국과 대결할 때도 방패 노릇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가 그 자기 본위의 자세로 아시아의 식민지 나라들을 대했을 때 그것은 이기적 자기중심주의의 다른 말일 뿐이었다. …… 그는 근대 제국주의 체제의 어두운 힘 속에 갇힌 한 마리의 호랑이였다. - 226쪽


영원한 음모가, 끝없는 배신자, 과격한 기회주의자 조제프 푸셰

루이 16세를 단두대로 보낸 프랑스혁명, 로베스피에르를 무너뜨린 테르미도르 쿠데타, 나폴레옹의 몰락까지 푸셰는 역사상 가장 극적인 혁명 사건의 배후 음모자였다. 극좌와 극우를 오간 이 ‘정치적 동물’은 인간의 가장 어두운 면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준 사람이다. 빈털터리로 시작해 정치의 생리를 철저하게 습득함으로써, 정치의 논리를 완벽하게 실천함으로써 그는 두려움과 더러움이 뒤섞인 늪지대에서 자신의 나라를 건설했다. 

푸셰의 기회주의에는 특별한 면이 있었다. 그는 단순히 견해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았고, 그것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뻔뻔스럽게 밀고 나가 다른 쪽 극단으로까지 치달았다. …… 대담함과 영리함을 겸비했다는 점에서 푸셰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기회주의자라 할 만하다. 지롱드파가 몰락한 자리에서 그는 둘도 없는 자코뱅이 되었다. 그것도 급진 과격파 자코뱅이 되었다. - 240~241쪽

푸셰의 목적은 권력이었고 권력의 향유였지 고귀한 이상의 실현이 아니었다. 그가 학살 기계를 가동한 것은 상부의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 온건파로 몰려 숙청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다수를 장악한 급진파의 논리를 다만 좀 지나치게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었다. - 245~246쪽

언제 단두대의 칼날이 목을 덮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여론이 공포정치에 염증을 내고 있었다. …… 그 극단의 상황 속에서 푸셰가 활동을 시작했다. 두더지처럼 지하에서 쉼 없이 움직였다. 그는 공포로 주눅 든 의원들을 비밀리에 만나 그들을 계략의 실로 촘촘히 엮었다. 무대 뒤에서 완벽한 음모극을 꾸미는 것, 이것이 푸셰의 일이었다. 증오와 분노와 질투와 불안과 공포를 한데 엮어 결코 끊어지지 않을 그물을 짰다. - 251쪽

급진 혁명가, 피에 굶주린 범죄자 세르게이 네차예프

네차예프는 러시아혁명에서 가장 과격한 혁명가였다. 동시에 그는 음모가였고 사기꾼이었고 공갈범이었고 복수의 화신이었고 피에 굶주린 범죄자였다. 네차예프는 이 모든 것이었다. 혁명의 정사에서 네차예프는 거의 완전히 잊혀진 존재이지만 그가 쓴 악명 높은 글 <혁명가의 교리문답>은 혁명의 뒷골목 골방에서 수없이 되풀이해 읽혔다. 그는 모든 건전한 혁명가들의 배후에 어른거리는 그림자였다.

그[네차예프]에게는 파괴와 폭력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다시피 했다. 라흐메토프의 엄격주의도 ‘혁명에 삶의 모든 것을 종속시킨다’는 본래의 태도를 넘어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단도 다 용납된다’는 속류 마키아벨리즘으로 뒤집혔다. …… 영웅-순교자 판타지는 더욱 강화돼 한편으로는 영웅주의적 자기 과시로 부풀어올랐고, 다른 한편으로는 거기에 대응하여 더욱 과도한 순교자적 심리로 빠져들었다. - 279쪽

스물여섯 조항으로 이루어진 이 간략한 강령은 극단적인 비도덕과 무자비함을 제약 없이 표출함으로써 100년이 넘도록 수많은 논란과 찬탄과 혐오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를 맴돌았다. 니힐리즘, 라흐메토프주의, 테러리즘, 예수회주의 따위 그때까지 혁명 운동에 나타난 모든 과격한 경향을 종합해 한 단계 높여놓은 것이 이 문건이었다. <혁명가의 교리문답>은 혁명가를 현재의 질서를 파괴할 수만 있다면 어떠한 범죄도 배신도 사기도 거리낌없이 저지르는 완전한 부도덕가로 묘사했다. - 286~287쪽

네차예프가 보여주었던 범죄 혹은 사악함을 러시아어로는 네차옙시나라고 한다. 네차예프적 범죄 혹은 네차예프적 악이라는 뜻을 내포한 네차옙시나, 곧 네차예프주의는 공식적으로 부인되고 거부되었지만, 그것이 혁명의 역사에서 사라졌다는 증거는 빈약하다. 오히려 그 반대의 증거가 훨씬 더 많다. …… 더 중요한 것은 공식 혁명사의 상당 부분이 네차예프주의를 내적 원리로 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  299쪽


복수와 파괴의 정치, 아돌프 히틀러

아돌프 히틀러에게 삶은 거대한 공포였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혼자였다. 겁에 질린 작은 인간 은 실존의 벼랑 끝에서 일어섰다. 오랫동안 짓눌렸던 원한과 증오와 분노가 터져 나왔다.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고 모든 것을 없애버리리라. 복수와 파괴에 눈먼 자는 벼랑 끝 너머로 내달렸다. 그의 삶의 속도 안에서 하나의 세계가 무(無)로부터 세워졌다가 그 자신과 함께 무로 사라졌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사나운 힘으로 하나의 건설 의지와 하나의 파괴 의지가 연달아 일어나 파멸적 충동을 벌인 건 인류사에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인간은 인간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고민을 시작해야 했다. 

수줍고 침울한 젊은이는 이 한없는 추락이 어디서 끝날지 두려움에 떨었다. 유대인 문제가 그의 관심사였다면 그것은 심리적으로 이 두려움을 촉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두려움을 혐오감으로 치환함으로써, 다시 말해 두려운 대상을 혐오스런 대상으로 심리적으로 조작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마음을 겨우 다스릴 수 있었다. 불안과 공포에 젖은 눈초리로 그는 이 몇 년 동안 삶의 밑바닥에서 사물과 사람과 세상을 관찰했다. - 319쪽

111명이 참석한 이날 저녁 집회에서 히틀러는 두 번째 연사로 연설했다. 빈의 밑바닥 시절 이래 오랫동안 우울한 독백 속에 담아 두었던 증오의 감정들, 분노의 이미지들, 원한 섞인 고발들이 터져 나왔다. 연설이 끝날 무렵 작은 맥주홀 안에 모인 사람들은 전기가 오르는 듯 흥분했다. …… 이날 저녁 전망 없이 방황하던 서른 살 젊은이에게서 선동가 히틀러가 태어났다. 이 순간이야말로 그가 정치가가 되기로 결심한 결정적 순간이었다. 사람들을 단지 설득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내면에 잠자고 있던 감정들을 끄집어내 불질러버리는 말의 힘을 그때 그는 현실로 확인했다. - 332쪽

히틀러의 무기는 말이었다. 그의 모든 힘은 말에서 나왔다. …… 히틀러에게 이념이란 단지 몇 개의 원칙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므로, 언제나 그에게 핵심적으로 중요한 것은 선전의 기술과 대중의 동원이었다. 대중을 장악하는 자가 권력을 장악한다는 것이 그의 변치 않는 신념이었다. 여기에서 대중심리학자 히틀러의 어두운 안목이 빛을 발했다. - 335쪽

히틀러가 원한 것은 단순한 독재, 단순한 권력이 아니었다. 권력을 장악하고 확장하고 이용하고 마침내 다 써버린 그 쉬지 않는 행동은 단순한 독재자의 행동 법칙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게르만 민족의 치명적인 위협에 맞서겠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 그에게 정말 중요했던 것은 국민 전체의 동의와 열광이었다. 국민의 일반 의지를 완전히 체현한 진정한 권력자, 진정한 지도자가 되는 것을 그는 열망했다. - 354~355쪽

그의 요청대로 시신은 벙커 밖 총통 관저 뜰에서 불태워졌다. …… 유사 이래 가장 광포한 상상력을 정치 현실에서 펼쳤던 인간, 모든 척도를 뛰어넘는 무시무시한 에너지로 세계를 열광시키고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인간, 아돌프 히틀러의 출현과 몰락으로 인류는 끔찍하고도 아득한 새로운 체험의 지평 위에 놓였다. - 364쪽

 

 



고명섭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한겨레신문 기자로 있다. 하이데거의 깊고 어두운 사유 세계를 탐사한 《하이데거 극장: 존재의 비밀과 진리의 심연》(전 2권), 니체라는 희귀한 철학자의 정신을 답사한 《니체 극장: 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를 썼다. 이밖에 《생각의 요새: 사유의 미로를 통과하는 읽기의 모험》, 《만남의 철학: 김상봉과 고명섭의 철학 대담》(공저), 《즐거운 지식: 책의 바다를 항해하는 187편의 지식 오디세이》, 《담론의 발견: 상상력과 마주보는 150편의 책읽기》, 《지식의 발견: 한국 지식인들의 문제적 담론 읽기》를 썼으며, 시집 《숲의 상형문자》, 《황혼녘 햇살에 빛나는 구렁이알을 삼키다》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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