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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인문학

[다석 씨알 강의] 책 소개

by 교양인 2015. 3. 12.

 

다석씨알강의_보도자료.hwp

보도자료를 내려받으실 수 있습니다.

 


초월의 사상가 다석 류영모, 4·19혁명과 민주주의를 말하다!
“좋거나 싫거나 사람은 감정을 아니 갖고 살 수 없습니다.
미워할 땐 미워해야지, 도무지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
4·19혁명 때 나타난 것은 미워할 것을 바로 미워한 것입니다.
그렇게 잘할 수가 없었습니다.”(류영모)

 

 

 

 


“정치란 간단합니다. 씨알 섬길 생각만 하는 것입니다.”
동서회통의 큰 사상가 다석 류영모가
혁명의 섬광 속에서 부른 자유와 민주의 노래!

 

 

동서고금의 종교와 철학에 두루 능통했던 대석학이자, 우리말과 글로 철학을 했던 최초의 철학자 다석(多夕) 류영모(柳永模). 다석은 함석헌과 김흥호 등 20세기 한국 기독교 사상계를 이끈 거인들의 스승으로서 먼저 알려졌으나, 21세기에 들어와 그의 독자적인 종교 철학이 세계 신학계와 철학계에서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했다. 기독교를 큰 줄기로 삼아 유교, 불교, 노장 사상 등을 하나로 꿰뚫어 ‘가르침은 여럿이지만 진리는 하나’임을 밝힌 다석 사상에서 종교 간 분열과 갈등을 넘어 화해와 상생을 가능하게 해줄 희망의 씨앗을 발견한 것이다. 2008년에 한국에서 열린 ‘세계 철학자 대회’에서 다석은 함석헌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철학자로 소개되었다. 최근에는 20세기에 나타난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한국 철학을 탐구하는 흐름에서 ‘한국 철학을 정립한 철학자’ 중 한 명으로 주목받고 있다.(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의 논문 ‘20세기 한국 철학의 좌표계’ 참조.)

 

《다석 씨알 강의》는 다석 류영모의 생생한 육성이 담긴 진귀한 현장 기록이자 다석 사상의 진면목을 파악하는 데 특히 중요한 책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다석 사상은 주로 ‘욕망과 생사(生死)의 노예인 제나(自我, ego)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인 얼나(靈)로 솟나야(거듭나야) 한다.’라는 형이상학적 차원의 깨달음에 관한 말씀이었다. 그런데 《다석 씨알 강의》에는 철저한 금욕의 삶과 공부를 통해 깨달음에 이른 큰 사상가의 모습만이 아니라, 독재에 반대하고 혁명을 높이 평가하는 민주주의자 류영모의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1960년 4·19혁명을 전후한 시기에 다석은 YMCA 연경반 강의에서 학생들의 의거에 관해 여러 차례 이야기했는데, 그 강의 내용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4·19혁명을 전후해 봇물처럼 터져 나온 씨알(民)과 정치에 대한 생각
55년 만에 소개되는 강의 45편에 담긴 민주주의자 류영모의 목소리 
다석은 평생 쓴 일기(《다석일지》) 외에 스스로 책을 써서 남기지 않았다. 현재 다석과 관련된 책들은 다석이 직접 구술하거나 쓴 것이 아니라 스승의 가르침을 세상에 알리려는 제자들의 기록이거나 다석 사상 해설서가 전부이다. 다만, 다석이 1956~1957년에 서울 YMCA에서 한 연경반 강의의 속기록 전문을 다듬어 출간한 《다석강의》와 1971년 8월 전남 광주에 있는 금욕 수도 공동체 ‘동광원’에서 일주일간 한 강의의 녹음 테이프를 풀어 옮긴 《다석 마지막 강의》가 있어 다석의 육성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제 《다석 씨알 강의》가 다석과 그의 사상을 알고자 하는 많은 이들의 목마름을 풀어줄 수 있게 됐다.

 

《다석 씨알 강의》는 다석 류영모가 1959년부터 1961년까지 종로 YMCA 연경반에서 한 강의의 기록이다. 류영모는 강의 시간에 성경과 사서삼경, 불경, 그리고 자신이 일지에 쓴 한시와 시조를 풀이하였는데, 그냥 흩어지고 말았을지도 모를 이 강의 내용은 연경반 수강생 주규식이 공책에 받아 적음으로써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당시 대학생이던 주규식은 강의의 핵심 내용을 속기에 가까울 정도로 꼼꼼히 기록하였다. 이 책은 그 기록을 바탕으로 하여 그때 함께 강의를 들었던 다석의 직제자 박영호가 해설을 덧붙인 것이다.
이 책은 동서를 두루 아우르며 ‘가르침은 여럿이지만 진리는 하나’라는 일원다교(一元多敎)의 다석 사상이 펼쳐지는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1960년 4·19혁명을 전후한 시기에 독재 정권을 타도하려고 거리로 나선 젊은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민주주의의 승리를 기뻐하는 다석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이 땅의 주인인 씨알들의 삶에서 진리를 발견하는 ‘민주주의자 류영모’의 알려지지 않은 참모습을 이 강의록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책의 구성에 대하여
《다석 씨알 강의》는 모두 45편의 강의를 담고 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주규식이 1959년 11월 6일부터 1961년 11월 17일까지 다석의 강의 내용을 기록한 노트를 저본으로 삼았다. 매주 금요일마다 열린 종로 YMCA 강의 외에 다석의 자택(은평구 구기동)을 찾아가 들은 강의와 다석이 다른 곳에서 한 강의도 담겨 있다. 주규식은 다석의 말투까지 살려서 적을 정도로 꼼꼼하게 강의를 기록했으나, 속기가 아니었기에 전체 강의 내용을 온전히 담지는 못했다.
다석은 자신이 지은 시조나 한시, 성경 구절 풀이, 사서삼경 풀이를 한지에 직접 적어 와서 칠판에 붙여놓고 강의했다고 한다. 이 책은 주규식의 노트를 바탕으로 하여 당시 강의 내용을 가능한 한 그대로 재현하고자 했다. 노트에 기록된 내용 외에 추가로 배경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그때 함께 강의를 들었던 박영호가 풀이 글을 따로 썼다.

 


“나는 이 세상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안 되는 이 세상이지만 혹 되는 듯하면 참 기뻐요. 하룻밤 자고 갈지라도 뭐가 좀 되는 듯하면 나도 퍽 복을 느낍니다. 흙으로 된 세상 이 땅 위에서는 아무것도 바로 되는 게 없어요. 그러나 8·15 때는 나도 참 복이 있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또 4·19가 툭 터졌어요. 내가 무슨 복이 있어 통쾌한 꼴을 두 번이나 보게 되나 하고 퍽 기뻤습니다. 씨알(민중)이 민주주의의 시민이 된 것을 감격스러이 생각해야만 참 민주주의가 되지요.”
4·19혁명에 대해 류영모 스승님이 하신 이 말씀을 이 책에서 듣게 된다. 자못 감개무량한 일이다. …… 4·19혁명을 전후해 류영모 스승님이 YMCA 연경반에서 하신 강의는 강물이 흘러가듯이 한때의 일로 지나가버렸다. 녹음도 속기도 된 것이 없었다. 다만 류영모 스승님의 말씀에 담긴 하느님의 뜻이 수강자의 마음속에 살아 있었다. …… 1981년 2월 3일 다석 스승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에서 연경반 강의를 들었던 주규식 님을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그때 주규식 님이 4·19혁명 전후 시기 스승님의 강의 일부를 기록해 두었다는 것을 일러주어 알게 되었다. 그 노트가 바로 이 책이 나오게 된 밑바탕이 되었다. 어떤 값비싼 보물 보시도 필사한 불경의 법보시엔 비길 수 없다는 말이 《금강경》에 있다. 주규식 님의 뜻 깊은 법보시에 경의와 감사를 드린다. - <머리말>에서

 

 


주요 내용 

 

“주권이 씨알(民)에게 있다는 것이 민주입니다.”

 

다석 류영모는 “예수, 석가는 상대 세계를 철저히 부정했다. 철저한 부정을 하지 않으려면 예수, 석가를 믿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물욕, 식욕, 정욕을 지닌 이기적인 자아(제나, ego)의 삶에 집착하지 말고 진정한 ‘나’ 즉 하느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으로 솟나야 한다는 가르침에서 초월의 철학자 류영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류영모는 ‘오늘 하루살이(一日一生)’의 철학으로 잠자는 것과 죽음을 똑같이 보고 하루를 평생으로 여기며 매일 죽는 연습을 했다. 그에게 몸의 죽음은 진정한 죽음이 아니므로 두려워할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보면 현실에 무관심하고 오로지 죽음 너머의 삶, 깨달음에만 몰두한 초월적 종교가로서 다석을 상상하게 된다. 그렇다면 ‘행동하는 사상가’로서 일평생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다석의 제자 함석헌은 사상적으로 스승을 떠난 이단아 혹은 돌연변이였던 걸까? 이 의문을 풀 실마리를 《다석 씨알 강의》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 실린 민주주의와 4·19혁명에 관한 류영모의 말에서 함석헌의 씨알 사상의 뿌리를 발견하게 된다. 더불어, 다석 사상은 결코 하나의 틀로 규정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깊고 넓은 세계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류영모는 백성, 민중을 순수한 우리말로 ‘씨알’이라고 썼다. 씨알이란 말은 원래 있던 말이지만 민(民)을 씨알이라고 표현한 것은 류영모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씨알이라는 말을 널리 퍼뜨린 사람은 함석헌이었다.) 류영모가 쓴 씨알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었다. 싹이 안 튼 씨알은 민(民)의 뜻으로 쓰고, 싹이 튼 씨알은 얼(靈)의 뜻으로 썼다. 이 책에선 민중을 뜻하는 씨알이라는 말을 자주 볼 수 있다.

 

민주(民主)가 씨알님입니다. 이 씨알을 위함이 하느님 위함입니다. “이 소자 중에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다.”라고 예수가 말했습니다. 백성을 모른다 하면서 하느님만 섬긴다 함도, 하느님은 모른다 하면서 백성만 위한다 함도 다 거짓입니다. 이제는 민주주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저절로 처음부터 마음이 민주가 되어야 합니다. 민(民)이 주(主)인 것은 천의(天意)·천도(天道)라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게 백성 위하는 게 되어야 합니다. (24~25쪽, <이 인생에서 진리는 얼크러진 실입니다.>)

 

늙은이가 짐을 안 지고, 스스로 죽는 자살자가 없는 나라가 공맹(孔孟)의 이상(理想)이었어요. 어떤 의미에서 정치란 간단한 거예요. 어쨌든 씨알 섬기려고만 생각하고 나가면 돼요. (126쪽, <정치란 간단합니다. 씨알 섬길 생각만 하는 것입니다.>)

 

‘가늠’은 권리입니다. ‘제쥔 가늠’이란 제가 붙잡은 권리입니다. 백성 자신의 권리입니다. ‘때갊’은 때가 갈리는 것, 시대 변천을 말합니다. 씨알 때갊입니다. 백성 시대, 민주권 시대, 제2공화국이 정말 잘되면 이 방에 있는 이 사람으로만 만나지 않을 거예요. 나도 밖에 나가서 일하지요. 이런 좋은 때가 어디 있어요? 4·19혁명 때 죽은 젊은이들의 혼이 있다면 춤을 출 거예요. (213~214쪽, <맹자라는 이는 민주를 완성하자 한 이입니다.>)

 

 

 


“우리의 더러움을 씻어간 게 4·19입니다.”

 

다석 류영모는 연경반 강의에서 이 나라가 일제의 속박에서 풀려난 광복을 보게 된 것과 씨알이 독재자의 횡포에서 풀려난 4·19의거를 보게 된 것이 통쾌한 기쁨이라고 말하였다. 이승만 독재 정권에 항거해 거리로 나온 젊은이들에게서 다석은 민족의 희망을 보았다. “다석은 4·19 이후 100일이 지나도록 거의 날마다 의거에 대한 글을 썼다. 4·19의거를 정의(正義)를 드러낸 인(仁)으로 본 것이다. 그에 비해 훗날 5·16 군사 쿠데타는 정권 도둑질이라고 말하였다.”(65쪽)
다석은 4·19혁명을 주제로 삼아 시조와 한시를 많이 썼고 그 시조와 한시를 YMCA 연경반 강의에서  풀이하였다.

 

좋거나 싫거나 사람은 감정을 아니 갖고 살 수 없습니다. 미워할 땐 미워해야지, 도무지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미워할 것을 미워하고 사랑할 것을 사랑한다면 자기 공부가 꽤 된 것입니다. 감정을 능히 바로 가지는 사람은 된 사람입니다. 미워할 걸 미워하고 좋아할 것을 좋아하는 게 우리의 표준이 돼야 합니다. …… 4·19혁명 때 나타난 것은 미워할 것을 바로 미워한 것입니다. 그렇게 잘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한 것입니다. 미워할 것을 바로 미워하면 괴로움이 적을 것입니다. (60쪽, <미워할 것을 바로 미워한 것이 4·19입니다.>)

 

태양 밑에 사는 우리는 자꾸 빚을 져요. 이 빚을 자꾸 빼내는 일을 해야 해요. 우리가 이 세상에 난 것이 빚이에요. 아예 안 나는 게 좋아요. 4·19혁명은 우리 민족 역사상 하나의 유월절을 지낸 거예요. 어린양을 잡아서 바친 것입니다. (76쪽, 4·19혁명은 우리 민족의 유월절입니다.>)

 

불평이 없으면 동(動)하지 않습니다. 동하니까 소리가 납니다. 소리를 내는 것은 불평이 있기 때문이에요. 이 우주가 동한 것, 우리가 노래하고 말하고 하는 것은 불평이 있기 때문이지요. 불평도 힘 있는 불평을 하면 평화롭게 돼요. …… 노래나 손짓 발짓은 불평의 표현인데 하려면 잘해야 합니다. 누가 우리를 이렇게 붙잡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지 몰라요. 놓아라 하는 게 소리예요. 불평이에요. 해탈은 자유입니다. 공산주의에 얽매인 북한 동포 구출하자는 건 놓아라 하는 노래입니다. 4·19혁명도 독재여 놓아라 하는 노래입니다. 세계의 무슨 일이든 이렇게 해야 합니다. 이런 일이 있으면 반드시 이에 대한 노래를 할 준비가 돼야 합니다. 이런 완전한 준비가 된 것이 자유 민주를 체득한 자입니다. (87쪽, <알지 못하기에 믿는 겁니다.>)

 

4·19혁명을 한 그 사람들 때문에 나라가 잘되었어요. 나라의 주춧돌이 된다고 하여 고등고시 준비하는 이들은 안 되고, 주춧돌 되기를 버린 듯한 사람들이 턱 동량이 됐어요. 4·19혁명이 젊은이들이 주체가 되어 일어난 것은 무한한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단체나 군대가 혁명을 일으킨 것보다도 젊은이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으니까요. 개중에는 진리를 바로 받을 줄 아는 두뇌를 가진 젊은이가 있어요. 그래서 희망이 있는 거예요. (217쪽, <예수는 우주 혁명, 우주 해방을 하러 오신 이입니다.>)

 

 

 

“얼나로는 예수와 석가와 내가 하나입니다.”
- 동서고금의 종교와 철학을 하나로 꿰뚫어 낸 ‘제소리’

 

다석 류영모는 일생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성경을 읽었으며, 예수를 삶의 모범으로 삼아 진리에 헌신했다. 그러나 그는 성경 자체를 진리로 떠받들며 예수를 절대시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예수, 석가, 공자, 노자 등 여러 성인을 두루 좋아하였다. 다석은 《반야심경》을 때마다 외울 정도로 불교의 가르침에 심취했고, 《중용》과 《노자》를 우리말로 완역할 정도로 유학과 노장 사상을 깊이 탐구하고 좋아하였다. 그는 동서 사상을 회통시켜 대통합을 이룬 큰 사상가였다.
다석은 예수, 석가, 공자, 맹자, 노자의 사상에서 하나의 공통된 진리를 보았다. 하느님이 보내주시는 하느님의 생명인 얼(성령)을 공자는 덕(德)이라 하고, 석가는 법(法)이라 하고 노자는 도(道)라 하고, 예수는 얼(靈)이라고 한 것이 다를 뿐이다. 이름만 다를 뿐 실체는 같다는 것이다. ‘얼나(참나)’로는 예수, 석가, 공자, 노자가 하나로 같다. 하느님이 보내주신 영원한 생명인 얼나를 깨달으면 우리도 예수, 석가와 같은 하느님 아들이 될 수 있다. 이때 다석이 말하는 하느님은 기독교에서 섬기는 인간의 모습을 한 인태신이 아니라, ‘없이 계시는 님’ ‘빔(空)’ ‘태허공(太虛空)’이라 표현되는 진리의 근원을 가리킨다.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는 말씀과 법(法)이에요. 로고스와 다르마가 다를 게 없어요. 진리(法)는 그 이상 더 없으니 이를 믿습니다. 하느님은 진리의 근원입니다. 이것을 아니까 삶(生)의 맛을 참으로 알고 삶의 맛을 참으로 아니까 영생합니다. 나라고 하는 것이 말씀의 수신기(受信機)예요. 하늘 방송을 듣는 수신기. 우리는 작지만 작다고 큰 것과 다른 게 아닙니다. (20쪽, <보내신 이를 아는 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뭐든지 큰 가치가 있는 것은 제가(개인이) 가질 수 없어요. 큰 보석도 은행에 맡겨야 해요. 너무 크면 멀어져요. 하느님도 너무 크시니까 먼 것 같지요. 하느님이란 종당엔 ‘나’예요. 내가 있으니 하느님도 계시다는 생각을 해야지요. 우리가 ‘큰 나’를 버리고 ‘작은 나’ 노릇 하니까 ‘큰 나’가 먼 것 같지요. 조상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속에 있지. 남의 조상이 아니라 바로 내 조상이지요. 요 다섯 자 몸뚱이를 보면 한심하지요. 그러니 이에서 박차고 나가야지요. 우리 머리가 위에 달린 게 위로 솟나자는 거예요. 머리를 위로 두어야 해요. 믿는다는 것은, 진리인 하느님을 향해 머리를 두는 것이지요. 하느님이 내 머리다 하는 것이지요. (110쪽, <하느님이란 종당엔 ‘나’입니다.>)

 

살기는 너른 데서, 서기는 바른 데서, 가기는 환히 큰 데로 넓은 대로여야 합니다. 뜻대로 되면 씨알과 함께 가고 뜻대로 안 되면 나 혼자서 가련다고 해야 합니다. 맹자의 대장부, 이게 사나이예요.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의 성격은 부귀해도 음란치 않고 빈천(貧賤)해도 옮기지(달라지지) 않아요. 자기는 제자리에 서고 또 넓은 길로 가는 것도 바꾸지 않고 뜻을 지키고 결코 굽히지 않아요. 《맹자》, 이것은 훌륭한 바이블이에요. 성경 말씀 안 될 게 없어요. (140쪽, <“뜻대로 되면 씨알로 더불어 가고 뜻대로 안 되면 혼자 그 길 가리라.”>)

 

 


우리말과 우리글로 철학한 최초의 철학자

 

다석 류영모는 말(言) 속에 진리가 깃들어 있다고 보았다. 특히 다석은 자신이 궁구한 이 세계와 존재의 의미를 서양에서 만들어진 철학 용어나 중국의 한자가 아닌 순 우리말, 우리글에 담아내고자 한 최초의 철학자였다. 한학(漢學)의 대가였던 다석은 한자 한 글자에 철학 개론 한 권이 들어 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파자(破字)’를 하여 한자 생성 원리를 밝혀 거기서 철학을 캐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우리말과 우리글을 아끼게 되었다. 다석은 한글을 소리글자이면서 동시에 깊은 철학과 뜻을 지닌 뜻글자로도 보았다. 《다석 씨알 강의》에서 이 같은 다석의 한글 철학을 볼 수 있다.

 

‘잚’이란 잠인데 자람의 준말이 잚이요 잠입니다. 잠자는 것은 자라는(성장하는) 거예요. 우리는 이다음에 죽어서 크게 자라는 게 있을지도 몰라요. (82쪽, <무한한 우주의 중심이 내 속에 있는 한 점입니다.>)

 

우리가 ‘말’을 가진 게 제일 이상한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천지 만물도 말씀으로 지었다, 말씀만이 남는다고 했어요. 말 중에 으뜸가는 말은 말의 말씨입니다. 나는 말의 말씨를 ‘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서울에 와서 공부하고 가지만 나중에는 ‘계’에 가야 합니다. 종당에는 ‘졔계’ 가야 합니다. 말의 말씨에 괴임(사랑) 받은 이는 꾀임에 안 듭니다. 괴임은 하느님의 은총이지만 꾀임은 사람의 학설, 선전 같은 것에 홀리는 것입니다.
‘ㄱ’은 으뜸을 뜻합니다. 으뜸을 상징하는 글자입니다. 우리말에도 ‘ㄱ’이 맨 처음에 온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에요. 그, 그리스도, 킹(King), 군(君) 모두 맨 위는 ㄱ형입니다. 위(ㅡ)와 뒤(ㅣ)가 가려져 ㄱ이 되어 안전합니다. (167쪽, <겸손이란 고개 숙이는 것이 아닙니다.>)

 

이 해 아래 있는 것은 낮은 거예요. 나온 것은 낮은 거예요. 낮아졌으니 올라가자는 거예요. ‘빟(허공)’가 낮아진 게 ‘빛’이고 빛이 낮아진 게 ‘몬’이고, 몬이 헤어진 게 ‘몬지(먼지)’이고 이 몬지로 된 게 ‘빛깔’이에요. 먼지에 반사되는 빛이 빛깔입니다. …… ‘그릇’이 있어야 살아가지만 그릇이 너무 많으면 그릇(잘못)됩니다. (176쪽, <있고 없고를 초월한, 없이 계시는 하느님입니다.>)

 

‘뜻의 뜻’이란 뜻 속의 뜻입니다. 뜻과 뜯은 상통합니다. 제가 뜯어봐야 뜻을 알지요. 뜯어서 뜻을 알게 돼요. (186쪽, <‘암’과 ‘옴’과 ‘아멘’은 모두 똑같은 의미입니다.>)

 

다석은 순 우리말을 찾아내어 새로운 뜻으로 쓰거나 한글을 조합해 새 낱말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씨알 가라칠 바른소리’라고 옮겨 썼고 ‘졸업’을 ‘마침보람’이라고 썼다. 이 책에서도 다석이 쓴 독특한 우리말을 볼 수 있다. 알마지(철학)·알짬(精)·빈탕(허공)·몬(物)·고디(정조)·긋(點)·속알(德)·가온쓸(中庸)·잘몬(萬物)·한늘(우주)·맘줄(心經)·없극것(無極)·커극겆(太極)·몯돌(坤) 등이 그것이다.

 

 

 

“바로 알아야, 옳게 알아야, 뚫어지게 알아야 압니다.”
- ‘알라’, 두 글자에 담긴 자각의 철학

 

이 책에 실린 45편의 강의 내용에서 민주주의와 정치에 관한 이야기 말고 특히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알라’라는 말이다. 다석은 1960년 9월 23일에 쓴 시조 <알라>를 중요하게 여겨 여러 차례 강의하였다. ‘알라’는 꼭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빔(허공)이 모든 물질의 근원이면서 참나임을 스스로 깨쳐 알라는 뜻이다.

 

안다는 것은 가장 귀한 것인데, 앎이란, 즉 맛을 알자는 것입니다. 이 세상 일의 대부분은 향락하도록 돼먹었어요. 난 이런 게 아니라 맛을 바로 알라는 생각입니다. 맛은 맛을 보란 것이지 거기 들러붙으란 게 아닙니다. 맛은 조금만 보고 지나가야 만날 님을 만나지요. 참님을 만나면 큰 것을 깨닫습니다. 큰 것을 깨달으면 할 일을 압니다. 바로 알아야, 옳게 알아야, 뚫어지게 알아야 합니다. 맛을 좇는 지식은 막힌 앎입니다. 마음이 텅 비는 게 곧 아는 것이고 앎이 텅 빔이에요. 텅 빈 마음에 오신 얼생명이 사람의 참빛입니다. (101쪽, <큰 것은 그 밖이 없고, 작은 것은 그 속이 없습니다.>)

 

<알라>, 이것을 매일 아침 외는데 그러면 내 생명이 긴장하게 돼요. 기도는 혼자서 해요. 제 기도는 제가 해야 해요. 여럿이 모여 할 때는 암만 해도 하는 척하게 됩니다. 이렇게 거짓으로 하는 기도는 미워해야 해요. 지극한 말을 하고 나면 기도나 찬송한 것과 같아요. (162쪽, <마음을 비워 두면 우주보다 더 큰 게 들어옵니다.>)

 

 

 

“삶은 사형수의 집행 유예 기간입니다.”
- 다석 류영모의 죽음 철학

 

류영모는 삶이란 눈 뜨고 꾸는 꿈이라고 보았다. 죽음은 그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류영모는 ‘오늘 하루살이(一日一生)’의 철학으로 잠자는 것과 죽음을 똑같이 보고 하루를 평생으로 여기며 매일 죽는 연습을 했다. 예수가 말한 영원한 삶(영생)도 육체의 부활이 아니라 얼의 부활, 얼의 영생을 말한 것이다.

 

예수는 간단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영생(永生)이란 죽음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죽음이 없다는 거지요. 이 껍데기 몸이 죽는 거지 얼이 죽는 게 아니에요. 죽음을 무서워하고 싫어할 까닭이 없어요. 보통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 껍데기가 퍽 쓰러져서 못 일어나는 것밖에 더 있어요? 이 껍데기가 그리되면 좀 어때요. 보통 삶이 끊어진다고 하는 게 그것입니다. 그리되면 어때요. …… 사는 것은 이게(肉, 몸) 사는 게 아니에요. 이거는 나의 삶의 그림자예요. 그림자에 불과해요. 이 껍데기가 훌렁 벗어져 나가는 게 그게 무슨 문제입니까? 삶이 끊어진다고 하는 것은 단지 이 몸뚱이, 껍데기가 떨어지는 것에 불과해요. 그것은 아무래도 좋지 않아요? (62쪽, <미워할 것을 바로 미워한 것이 4·19입니다.>)

 

우리의 일은 참나를 찾는 것입니다. …… 참나를 알아야 하늘나라를 알아서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이 몸생명이 가짜 생명이에요. 우린 참생명 찾자는 거예요. 이 세상이 통히 몸나로 좀 더 오래 살 수 없을까 하고 궁리하는 거예요. 과학자는 달리 대답하겠지만 잠도 안 잤으면 죽지도 않았으면 하고 원해요.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죽음도 있어야 하고 밤도 있어야 합니다. (82쪽, <무한한 우주의 중심이 내 속에 있는 한 점입니다.>)

 

귤 껍질의 울룩불룩한 것이 세균에게는 산(山) 같을 거예요. 마찬가지로 그렇게 사람이 지구와 비(比)해질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천지만물이란 떡의 곰팡이 같은 거예요. 제 자신은 장한 체하지만 아무것도 아닙니다. 죽음이란 참으로 없는 거예요. 하늘에도 땅에도 죽음이란 없는 건데 사람은 죽음의 종이 돼 있어요. 있는 게 늘 걱정이지요. 참 없으면 걱정 없지요. 장수(長壽)란 거짓 목숨인 가짜예요. 죽음의 중간에 얼마 동안 산다는 것은 한때입니다. 한때 있는 때예요. 한때 꿈을 꾸어 빚을 갚고 마는 것입니다. (163쪽, <마음을 비워 두면 우주보다 더 큰 게 들어옵니다.>)

 


 

 

앎과 삶이 하나가 된 우리 겨레의 큰 스승,
다석 류영모(1890~1981)

다석 류영모는 불경, 성경, 동양철학, 서양철학에 두루 능통했던 대석학이자 평생 동안 진리를 좇아 구경각(究竟覺)에 이른 우리나라의 큰 사상가였다. 그는 우리 말과 글로써 철학을 한 최초의 사상가였으며, 불교, 노장 사상, 공자와 맹자 등을 두루 탐구하고 기독교를 줄기로 삼아 이 모든 종교와 사상을 하나로 꿰는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사상 체계를 세웠다. 모든 종교가 외형은 달라도 근원은 하나임을 밝히는 다석의 종교관은 시대를 앞선 종교 사상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1890년 3월 13일 서울에서 태어난 류영모는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배웠다. 그러던 중 한국인으론 첫 YMCA 총무를 지낸 김정식의 인도로 서울 연동교회 신자가 되어 15세에 세례를 받았다. 1907년 서울 경신학교에 입학해 2년간 수학했으며, 1910년 20세에 남강 이승훈의 초빙을 받아 평북 정주 오산학교 교사로 2년간 봉직하였다. 이때 오산학교에 기독교 신앙을 처음 전파하여 남강 이승훈이 기독교에 입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광수, 정인보와 함께 1910년대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렸다. 1921년(31세)에 고당 조만식 선생 후임으로 오산학교 교장이 되어 1년간 재직하였다. 그때 함석헌이 졸업반 학생이었다. 1928년부터 YMCA에서 연경반(硏經班) 모임을 맡아 1963년까지 30년이 넘도록 강의를 하였다.

 

처음 세례를 받고 몇 년 동안 정통 기독교인이었으나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아 무교회주의적 입장을 취하게 되었으며, 그 뒤로 교회에 나가지 않고 평생 성경을 읽고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였다. 성경 자체를 진리로 떠받들며 예수를 절대시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예수, 석가, 공자, 노자 등 여러 성인을 두루 좋아하였다. 나아가 《노자(老子)》를 한글로 완역하는 등 여러 성인의 말씀을 우리 말과 글로 알리는 일에 힘썼다. 우리 말과 글을 사랑하여, 한자를 쓰는 대신 옛말을 찾아 쓰거나 ‘씨알(민중)’ ‘얼나’ ‘제나’ 같은 말을 만들어 썼다.

 

단순하고 소박한 금욕의 삶을 살고자 했던 류영모는 50살 무렵부터 하루 한 끼만 먹고, 하루를 일생으로 여기며 살았다. 항상 무릎을 꿇고 앉았으며, 얇은 잣나무판 위에서 생활하고 잠도 그 위에서 잤다. 새벽 3시면 일어나 명상을 한 후 일기를 썼다. 그 일기를 모은 《다석일지》는 그가 쓴 유일한 저술로 남았다. 평생 무명이나 베로 지은 한복에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늘 “농사짓는 사람이야말로 예수다.”라고 말했으며, 45살 때 북한산 밑으로 이사하여 직접 농사지어 먹고 살았다. 나이를 햇수로 세지 않고 날수로 하루하루 세었는데, 33,200일을 살았다.

 

 

풀이 - 박영호(1934~)

6․25전쟁 때 징집되어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후 삶과 죽음의 문제를 고민하며 방황하던 중 톨스토이의 글을 읽고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사상계>에 실린 함석헌의 글에 깊이 감명을 받고 그에게 편지를 쓴 뒤로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었다. 1959년부터 함석헌의 스승인 류영모의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1965년 어느 날 류영모가 이제 스승을 떠나 독립하라는 뜻으로 ‘단사(斷辭)’라는 말을 꺼냈다. 눈물을 흘리면서 스승을 떠난 그는 5년간 혼자 공부해, 정신이 지향해 나가야 할 방향을 세 가지로 정리한 첫 책 《새 시대의 신앙》을 출간했다. 그 무렵 다석으로부터 ‘졸업증서-마침보람’이라 쓰인 봉함엽서를 받았다. 자신의 참제자로 인정한 것이었다. 박영호는 《다석 전기》를 비롯해 《다석 마지막 강의》, ‘다석 사상 전집’ 등 다석에 관한 책을 써 스승을 알리는 데 힘을 기울여 왔다. 현재 ‘다석학회’ 고문과 성천문화재단 다석 사상 연구위원으로 있다.

 

 

 

차 례

머리말

1959년 11월 6일 _ 머리를 번쩍 들고 두 발로 곧이 섬,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1959년 11월 13일 _ 보내신 이를 아는 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1959년 11월 20일 _ 이 인생에서 진리는 얼크러진 실입니다.
1959년 12월 4일 _ 삶은 사형수의 집행 유예 기간입니다.
1960년 6월 24일 _ 우리는 뾰족한 바늘 끝에서 살고 있습니다.
1960년 7월 1일 _ 씨알 저울은 민권이고 민주입니다.
1960년 7월 8일 _ 미워할 것을 바로 미워한 것이 4·19입니다.
1960년 7월 15일 _ 4·19혁명은 우리 민족의 유월절입니다.
1960년 7월 17일 _ 무한한 우주의 중심이 내 속에 있는 한 점입니다.
1960년 9월 2일 _ 알지 못하기에 믿는 겁니다.
1960년 9월 4일 _ “마음 뚫어진 게 아는 것이고, 아는 것에 뚫리는 게 덕이다.”
1960년 9월 9일 _ 큰 것은 그 밖이 없고, 작은 것은 그 속이 없습니다.
1960년 9월 11일 _ 하느님이란 종당엔 ‘나’입니다.
1960년 9월 16일 _ 내 안에 아버지가 있고, 아버지 안에 내가 있습니다.
1960년 9월 18일 _ 정치란 간단합니다. 씨알 섬길 생각만 하는 것입니다.
1960년 9월 23일 _ 우리의 더러움을 씻어 간 게 4·19입니다.
1960년 9월 25일 _ “뜻대로 되면 씨알로 더불어 가고 뜻대로 안 되면 혼자 그 길 가리라.”
1960년 10월 2일 _ 나는 죽겠으나 믿음은 살겠지요.
1960년 10월 7일 _ 다부지게 의심해야 압니다.
1960년 10월 9일 _ 마음을 비워 두면 우주보다 더 큰 게 들어옵니다.
1960년 10월 14일 _ 겸손이란 고개 숙이는 것이 아닙니다.
1960년 10월 16일 _ 있고 없고를 초월한, 없이 계시는 하느님입니다.
1960년 10월 21일 _ ‘암’과 ‘옴’과 ‘아멘’은 모두 똑같은 의미입니다.
1960년 10월 23일 _ 진리니 구원이니 하는 것은 이 꿈을 딱 깨자는 것입니다.
1960년 10월 30일 _ 영원히 사는 것은 피나 살이 아니라 말씀입니다.  
1960년 11월 4일 _ 맹자라는 이는 민주를 완성하자 한 이입니다.
1960년 11월 6일 _ 예수는 우주 혁명, 우주 해방을 하러 오신 이입니다.
1960년 11월 11일 _ 하느님 아들이 군자(君子)입니다.
1960년 11월 13일 _ “오래고 오랜 연못에 개구리 한 마리 퐁당 뛰어드는 소리.”
1960년 11월 18일 _ 얼나로는 예수와 석가와 내가 하나입니다.
1960년 11월 20일 _ 《맹자》도 바이블 못 될 게 없습니다.
1960년 11월 25일 _ 이 세계는 어머니의 자궁, 우리는 모태 속의 쌍둥이입니다.
1960년 11월 27일 _ 살신성인은 인(仁)이 살라는 명령입니다.
1960년 12월 2일 _ 자기 혼자 있어도 조금도 부끄럼이 없어야 합니다.
1960년 12월 4일 _ 구원이니 성불이니 하는 것은 이 세상을 이겼다는 겁니다.
1960년 12월 9일 _ 나는 나그네, 허공을 건너는 나그네입니다.
1960년 12월 11일 _ 하느님은 진이면서 선이면서 미입니다.
1960년 12월 16일 _ 책임을 제 스스로 단단히 지고서 옆의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게 자유입니다.
1960년 12월 18일 _ “네가 마음의 스승이 되어야지, 마음을 네 스승으로 하지 말라.”
1960년 12월 25일 _ 주권이 씨알에 있다는 게 민주입니다.
1961년 6월 15일 _ 저 꼭대기에 있는 기(氣)가 흘러내려와 통하는 게 도(道)입니다.
1961년 10월 27일 _ 목숨 건 명상을 해야지, 지식으로는 깨닫지 못합니다.
1961년 11월 3일 _ 유교·불교·기독교를 서로 비춰 보아야 뭔가 알 수 있게 됩니다.
1961년 11월 10일 _ 네 속의 마음의 등불을 밝혀라, 그것밖에 없습니다.
1961년 11월 17일 _ 우주 혁명이란 인간 혁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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