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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문학

레오 아프리카누스

by 교양인 2025. 6. 5.

레오 아프리카누스 _ 아민 말루프

 


 

“나는 아프리카누스로 불리지만 아프리카 사람도, 유럽 사람도, 
아랍 사람도 아니다. 나는 길의 아들이며, 내 나라는 카라반이고,
내 인생은 종착지를 알 수 없는 항해였다.”

 

16세기 종교개혁과 르네상스, 오스만 제국과 신성 로마 제국의 시대에
이슬람과 기독교, 북아프리카와 유럽을 오가며 
종교와 언어와 신념의 경계를 넘나든 놀라운 삶의 서사!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이 결합된 역사소설의 진수!

마지막 무어인의 도시 그라나다에서는 부유한 검량사의 사랑받는 아들이었고, 망명지 모로코에서는 이슬람 경전을 통째로 암송하는 명민한 학생이었고, 16살 때 술탄의 외교 사절이 돼 사하라 사막을 건너 팀북투를 방문하고, 놀라운 배짱과 수완으로 20대 초반에 거부가 된 남자. 외교관으로 활동하던 중 운명의 일격을 받아 해적에게 납치되어 노예가 된 남자. 로마로 팔려 간 뒤 교황 레오 10세의 눈에 들어 양자가 되고 메디치가의 일원이 된 남자. 가톨릭 세례를 받고 이슬람과 기독교 두 세계를 연결하는 학자가 되어 라틴어 · 아랍어 · 히브리어 삼중어 사전을 만들고 기념비적인 책 《아프리카 지리지》를 저술한 남자. 교황의 특사가 되어 오스만 제국과 평화 협상을 꾀한 남자. 무너지는 제국들 사이에서 이름을 바꾸고 언어를 바꾸고 종교를 바꾸었지만 끝내 자기 자신으로 산 남자. 

《레오 아프리카누스》는 1488년경 그라나다에서 태어난 알하산 이븐 무함마드 알와잔, 후에 조반니 레오 혹은 레오 아프리카누스로 불린 여행가이자 상인, 외교관, 지리학자였던 실존 인물의 경이로운 삶을 따라가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라는 격동하는 역사의 현장을 강렬하게 그려낸 몰입감 넘치는 역사소설이다. 

 

“창조주께서 내게 빌려주신 시간, 나는 그 사십 년을 길에서 보냈다. 
로마에서는 지혜의 시간을, 카이로에서는 열정의 시간을, 
페스에서는 불안의 시간을 보냈고, 그라나다에서는 순수의 시간을 살았다.”

《레오 아프리카누스》는 제11회 박경리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아민 말루프가 1986년에 발표한 첫 장편소설이다. 세계 지형도를 그리듯이 섬세한 필치로 당시의 모습을 재현했다는 평과 함께 ‘쥘 베른의 소설을 연상케 하는 플롯과 모험이 담겨 있다’라는 찬사를 받았다. 출간 즉시 평단과 독자들에게 큰 주목을 받으며 말루프가 작가로서 명성을 쌓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는 작품이다. 
레오 아프리카누스의 회고록 형식을 취한 이 소설은 그가 거주했던 주요한 네 도시 즉 그라나다, 페스, 카이로, 로마를 따라 4부로 구성되어 그의 40년 인생을 따라간다. 사건과 사건 사이, 역사의 빈틈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풍요롭게 채워 과거를 현실로 되살려내는 말루프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며 ‘문명 간 충돌과 화해의 가능성 탐구’ ‘추방 ․ 이주 ․ 망명에 따른 상실 경험’ ‘경계인으로서 정체성 문제’라는 말루프 작품 세계의 특징이 뚜렷이 드러난 작품이기도 하다. 

 

“나는 레오 아프리카누스처럼 여러 문명 사이에 낀 존재입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삶, 경계를 넘나드는 삶에 대한 성찰  

1986년 첫 번째 장편소설 《레오 아프리카누스》 출간 직후, 한 인터뷰에서 아민 말루프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 자신을 묘사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레오 아프리카누스처럼 여러 문명 사이에 낀 존재입니다.” 레바논에서 태어나 자랐으나 내전 때문에 조국을 떠나 프랑스인이 된 말루프는 경계에 선 존재로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작품에 담아 왔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이미 첫 소설에서 뚜렷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16세기의 코스모폴리탄, 레오 아프리카누스 

이 작품에서 아민 말루프는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충돌과 그로 인한 정치적 격변, 종교재판과 추방과 망명, 찬란한 르네상스 문화와 루터의 종교개혁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가장 큰 변혁의 소용돌이를 깊숙한 곳에서 들여다본다. 동시에 이슬람과 기독교 두 세계의 중간에 선 존재로서 혼란과 갈등을 겪고, 낯선 세계를 접하며 이해와 공감을 배우며 성장하는 하산의 파란만장한 삶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하산은 16세기의 코스모폴리탄이었다. 추방당한 그라나다 최후의 무슬림, 지중해를 누비는 대상, 해적에게 납치된 노예, 로마 교황청의 학자까지 역사의 격랑에 휘말려 놀라운 삶을 살아간 인물이며, 동시에 외부에서 역사적 사건을 관찰하고 기록한 증언자이기도 했다.

놀라운 시대 속으로 한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역사소설의 매력    

대항해 시대가 막을 열고, 지중해 무역의 중심인 이탈리아를 차지하기 위한 강대국들의 쟁탈전이 벌어지던 16세기, 이 격동의 시기에 그라나다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망명길에 올랐던 하산이 훗날 ‘레오 아프리카누스’가 되기까지 겪는 거대한 역사적 서사 속에는 그라나다 왕국의 마지막 술탄 보아브딜, 에스파냐의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 페스의 무함마드 2세, 서아프리카 송가이 제국의 아스키아 무함마드, 로마의 교황 레오 10세와 클레멘스 7세,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 5세,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 오스만 제국의 황제 셀림 1세와 술레이만 1세, 화가 라파엘로 등 세계사의 주인공이었던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아민 말루프는 놀랍게도 주인공이 이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과 만나 관계를 맺고, 사건을 겪으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마치 눈앞에서 직접 겪는 것처럼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이야기에 빠져 읽다 보면 16세기의 그라나다, 페스, 팀북투, 카이로, 로마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런 놀라운 삶을 산 사람이 있었다는 경이로움과 함께 그 삶을 이토록 놀라운 소설로 창조한 작가의 역량에 다시 한번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 《레오 아프리카누스》에 쏟아진 찬사 
“레오 아프리카누스는 상상 속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하는 인물이다.” _ <New York Times>

“현명하고 용감한 여행자의 모험을 통해, 이 뛰어난 역사소설은 무어인이 에스파냐에서 추방되고 북아프리카와 남유럽 전역이 혼란에 빠졌던 격동의 시대를 생생히 되살린다. 말루프는 하산의 정치적, 개인적 삶을 따라가며 당시 이슬람 문명의 빛과 그림자를 넓은 시야로, 그리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_ <Publishers Weekly>

“말루프는 하산을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한 인물로 그려내며, 그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종교적 광신, 민족주의, 자본주의, 억압적 질서에 대한 통찰을 얻는다.” _ <The Guardian>

“말루프는 역사적 인물을 살려내는 데 탁월한 작가다. 그는 이슬람과 기독교를 내부자처럼 이해하면서도 그 둘을 초월하는 시선을 지녔다. 《레오 아프리카누스》는 강력한 영혼을 지닌 주인공과 작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_ <Emel Magazine>

“이 책은 감동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서사시다. 사랑과 상실, 부와 권력, 포로와 노예, 무슬림과 기독교인의 삶을 모두 담고 있다.” _ 아마존 독자 

 


‘레오 아프리카누스’는 누구인가?

레오 아프리카누스(Leo Africanus, ‘아프리카인 레오’)는 수 세기 동안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끼친 《아프리카 지리지》의 저자이자, 셰익스피어의 비극적 주인공 ‘오셀로’에 영감을 준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에스파냐의 레콩키스타와 그라나다 함락 

레오 아프리카누스는 1488년경 이베리아반도 최후의 이슬람 도시인 그라나다에서 태어났다. 본래 이름은 ‘알하산 이븐 무함마드 알와잔’. 그의 가족은 에스파냐 기독교 세력의 국토 회복 운동(‘레콩키스타’)으로 그라나다가 함락되기 직전인 1491년 말쯤 북아프리카의 대도시 페스(모로코 북부)로 망명했다. 1492년 그라나다가 함락되면서 711년부터 무려 800년 동안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했던 이슬람 세력은 이베리아반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북아프리카에서 로마까지, 외교관 ․ 상인 ․ 여행가 ․ 학자였던 다재다능한 사람  

페스에 정착한 뒤 이슬람 학교 마드라사에서 이슬람 율법, 신학을 공부한 하산은 16세 때 술탄의 외교관인 외숙부를 따라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면서 송가이 제국의 팀북투까지 북아프리카를 두루 돌아다녔다. 이때 보고 들은 사실을 기록한 《아프리카 지리지》는 14세기에 아프리카, 아라비아, 인도를 거쳐 중국에 갔던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 이후 아프리카와 이슬람 신앙에 대한 중세 유럽인들의 시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책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외교관, 사업가, 여행가로 활동하던 하산은 1518년에 아라비아반도의 메카에서 성지 순례를 마치고 튀니스로 돌아가던 중 해적에게 나포되었고, 로마로 보내져 교황 레오 10세의 눈에 들어 양자가 되고 1520년에 로마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교황은 세례를 받은 하산에게 ‘조반니 레오(Giovanni Leo)’라는 새 이름을 주었다. 

 

《아프리카 지리지》의 저자 

레오는 로마에서 뛰어난 학자로 인정받아 아랍어 ․ 히브리어 ․ 라틴어 삼중어 사전 편찬, 쿠란의 라틴어 번역본 교정 작업에 참여했다. 그리고 1526년에 아프리카의 지리, 기후, 관습, 문화를 다룬 《아프리카 지리지》를 완성했다. 이후 레오의 행적은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아프리카 지리지》 저자로서 ‘레오 아프리카누스’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시간이 흐른 뒤의 일이다. 1550년에 베네치아의 지리학자 조반니 바티스타 라무지오가 레오의 《아프리카 지리지》를 다섯 권짜리 여행기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출판했는데 엄청난 인기를 끌며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그 뒤로 이 판본이 프랑스어, 라틴어, 영어, 네덜란드어, 독일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아프리카 지리지》는 ‘아프리카’라는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유럽 최초의 저서로서 학자와 탐험가, 지도 제작자는 물론이고 아프리카의 황금을 탐내던 군주들에게도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또한 근대 초기에 유럽이 아프리카를 ‘인식’하고 ‘상상’하는 방식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책으로 평가받는다. 

프랑스 문단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 
아민 말루프 

아민 말루프는 누구인가?

아민 말루프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프랑스 문학계의 거장이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 50여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작가로서 말루프의 영향력은 프랑스의 ‘최고 엘리트’이자 ‘불멸의 지성’으로 일컬어지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정회원이라는 점에서 엿볼 수 있다. 1634년 공인된 프랑스 학술원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정회원 자격은 시인, 소설가, 극작가, 비평가, 철학자, 사학자, 과학자, 종교인, 정치인 등 국적과 직업에 상관없이 프랑스어를 빛낸 공로를 세운 단 40명에게만 주어진다. 말루프는 2011년 타계한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뒤를 이어 레바논계 프랑스인으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정회원이 되었고 2023년에는 종신 서기로 임명되었다.

시대를 관찰하고 평화를 노래하는 작가

말루프의 작품은 중동, 아프리카, 지중해 세계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을 소재로 삼으면서 인류에게 고통을 주는 종교적 · 정치적 압력과 충돌, 정체성의 문제를 다룬다. 말루프는 폭력과 고통으로 점철된 역사적 사건들을 문학으로 재현하며 “비극과 슬픔 속에서도 인간의 모험은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하는 작가다. 역사적 폭력을 다루는 가운데 “절대 선과 절대 악이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 용서와 화해,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말루프 작품의 특징이다. 이런 주제에 집요하게 천착해 온 것은 문학을 통해 타자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폭력과 고통을 해결할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야기꾼으로서 탁월한 재능과 함께 이러한 독창적 작품 세계가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었다.

이슬람과 기독교, 아랍 세계와 서구 세계 사이에서 

말루프 작품의 공통점은 중동과 서구의 공통된 역사를 아랍인의 관점에서 재조명한다는 데 있다. 말루프는 레바논에서 태어났지만 내전을 겪으며 조국을 떠나야 했던 경험, 아랍 세계에서는 기독교인이면서 서구 세계에서는 아랍인으로 받아들여지는 독특한 정체성을 작품에 녹여내 “서구 중심주의에 종속되지 않고 타자성의 포용을 통해 중심부와 주변부의 경계를 허물고자” 평생 글을 써 왔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그는 2022년 제11회 박경리문학상의 수상자가 되었다. 심사위원회는 말루프의 작품이 “대립하는 여러 가치의 충돌로 개인의 정체성이 위협받는 시대에 화합의 정신으로 인류 공동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한다”고 평가했다.


 

알하산 이븐 무함마드 알와잔 알파시 알자야티, 검량사 무함마드의 아들 하산, 이발사에게 할례를 받았고, 교황에게 세례를 받으면서 이름이 조반니 레오 데 메디치가 된 나는 현재 아프리카누스라 불리지만, 아프리카 출신도, 유럽 출신도, 아랍 출신도 아니다. 사람들은 나를 그라나다인, 페스인, 자이야티라고 부르지만 나는 어느 나라, 어느 도시, 어느 부족 출신도 아니다. 나는 길의 아들이며, 내 나라는 카라반이고, 내 인생은 종착지를 모르는 예측할 수 없는 항해와도 같다. (9쪽)

 

아들아, 내 입에서 아랍어, 튀르크어, 카스티야어, 베르베르어, 히브리어, 라틴어 그리고 이탈리아어까지 들을 수 있는 것은 모든 언어, 모든 기도가 내게 속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것에도 속해 있지 않다. 나는 오직 신과 대지에 속해 있으며, 머지않아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9~10쪽) 

 

술탄 보아브딜이 말에서 내려서려고 하자, 페르난도 왕이 손짓으로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그래서 술탄이 승자에게 다가가서 입을 맞추기 위해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페르난도 왕이 손을 거두는 바람에 페르난도 쪽으로 몸이 기울어져 있던 보아브딜은 왕의 어깨에 입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그 태도는 보아브딜을 이슬람의 한 술탄으로 대한다는 것이지 그라나다의 군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표시였다. 이제 보아브딜은 그라나다의 새 주인들이 하사해준 알푸하라스 산중의 작은 영지에서 식솔과 함께 살 수 있다는 허락을 받고 떠나는 신세로 전락했다. (87쪽)

 

페스를 떠나는 날 나는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유배를 당했지만 당당하게 떠나고 싶어서 비단옷을 입고 밤이 아니라 대낮에 카라반을 이끌고 북적거리는 거리를 지나갔다. 온갖 물품을 실은 낙타 2백 마리와 산적들이 감히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무장 호위병 50명으로 꾸린 대규모 상단이었다. (…) 
이렇게 요란한 행진은 사실 위험한 짓이었다. 악의적인 말이 재상에 이어서 술탄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나는 왕명을 조롱한 죄로 고발되어 체포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 쫓겨나는 신세일망정 내 자존심을 세우는 것일 뿐 아니라, 페스에 남아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 내 딸, 모든 일가친척이 내가 유배를 가 있는 동안 부끄러움 속에서 살지 않게 하려는 것이기도 했다. (302~303쪽) 

 

카이로가 나의 도시라고 느껴지면서 무한한 행복이 느껴졌다. 몇 달 만에 나는 진정한 카이로 시민이 되어 있었다. 나일강변의 집에 살면서 나는 날로 번창하는 사업가로서 궁정 내에 인맥을 넓힌 유력인사가 되었고, 나귀 몰이 소년, 과일 장수, 향수 장수, 금은 세공사, 종이 장수가 내 사람들이었다. 나는 신선한 물이 샘솟는 오아시스에 이르렀다고 믿었다. (335쪽) 

 

나는 육지도 바다도 태양도 보지 못했고, 여행이 끝났는지도 알지 못했다. 혀가 짭짤하고, 두통이 일면서 어지럽고 메슥거렸다. 내가 내던져진 선창에는 죽은 쥐와 널빤지에 핀 곰팡이, 나보다 먼저 붙잡혀 온 사람들의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아들아, 나는 그렇게 노예가 되었고, 내 피는 치욕을 당했다. 유럽 땅을 정복했던 조상들의 자손인 내가 어느 군주나 팔레르모, 나폴리, 라구사의 부자 상인에게 팔려 가거나, 최악의 경우는 카스티야인에게 팔려서 그라나다의 굴욕을 매 순간 느끼면서 살아가야 하는 신세가 될 수도 있었다. (411쪽) 

 

“교황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추기경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고? 대체 로마라는 이 도시는 어떤 신을 숭배하기에 이토록 사치와 쾌락에 빠져 있단 말인가?”
내게서 아랍어를 배우는 작센 출신의 독일인이 내뱉은 말이었다.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소속 수사 한스가 레오 10세의 대기실까지 쫓아와서 루터 수사의 주장을 전하며 나를 설득하려고 애를 썼지만, 나는 화형대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으면 제발 입을 다물라고 간청했다. (…) 
한스가 하는 말 중에는 이따금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하디스를 떠오르게 하는 것들이 있었다. 루터가 우상 숭배가 될 수 있다며 예배소에서 모든 조각상을 치우라고 했다지 않은가? (422~423쪽)

 

세례식이 끝난 뒤, 라파엘로는 많은 사람이 하듯이 교황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러 왔다가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궁금한 것이 있었는지 라파엘로가 대뜸 물었다.
“당신의 나라에는 화가나 조각가가 없다는 게 사실이오?”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사람은 있지만, 인물상을 표현하는 행위는 금지되지요. 창조주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니까요.”
“우리의 예술이 창조물에 필적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니 무한한 영광이군요.” 
라파엘로가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다소 거만하게 대꾸했다. (435~436쪽) 

 

아들아, 내 모든 방랑을 목격해 온 이 바다가 이번에는 너의 첫 망명지가 될 곳으로 나를 함께 데려가는구나. 로마에서 너는 ‘아프리카인의 아들’이었고, 아프리카에서는 ‘유럽인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가 어디에 있든, 네 피부색을 살피며 어떤 신에게 기도하는지 파헤치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들아, 그 사람들의 본능에 아첨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군중 앞에서 굴복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무슬림이든 유대인이든 기독교인이든, 그들은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너를 파멸시키려 할 것이다. 그들의 정신이 편협해 보이거든 신의 땅은 광활하고, 신의 손과 마음은 크고 넓다고 말하거라. 모든 바다 너머, 모든 국경 너머, 모든 나라 너머, 모든 믿음 너머로 떠나는 걸 결코 주저하지 말거라. (517쪽)

 



아민 말루프(Amin Maalouf) 

1949년 레바논에서 태어났다. 베이루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로 일하던 중 레바논 내전이 일어나자 1976년에 프랑스로 귀화했고 프랑스어로 창작 활동을 하였다. 
1986년에 르네상스, 종교개혁 시대를 배경으로 한 첫 소설 《레오 아프리카누스》를 발표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1988년에 발표한 《사마르칸트》로 프랑스출판협회상을 수상했고, 1993년에는 소설 《타니오스의 바위》로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받았다. 이 밖에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마니》《동방의 항구들》《초대받지 않은 형제들》《발다사레의 여정》 등을 썼다. 
말루프는 역사적 사실에 환상적인 요소와 철학적 사유를 더한 작품을 선보이며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특히 말루프는 중동, 아프리카, 지중해 세계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소재로 삼아 종교적, 정치적 충돌과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어 왔다. 역사적 폭력을 깊이 응시하면서 화해와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말루프 작품의 특징이다. 이야기꾼으로서 탁월한 재능과 함께 이러한 독창적 작품 세계가 말루프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었다. 《레오 아프리카누스》는 그의 모든 작품 세계가 시작된 데뷔작이다.
2010년 에스파냐 최고 권위의 아스투리아스상을 받았고 2011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을 받았다. 2022년 제11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2011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었고 2023년에 ‘아카데미 프랑세즈’ 종신서기로 선출되었다. 

 

이원희

프랑스 아미앵대학에서 〈장 지오노의 작품 세계에 나타난 감각적 공간에 관한 문체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장 지오노의 《언덕》 《세상의 노래》 《영원한 기쁨》, 장자크 상페의 《사치와 평온과 쾌락》 《각별한 마음》, 다이 시지에의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장 크리스토프 뤼펭의 《붉은 브라질》 《아담의 향기》,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카트린 클레망의 《테오의 여행》 《세상의 피》, 마르크 레비의 《그녀, 클로이》 《고스트 인 러브》 《달드리 씨의 이상한 여행》, 소피 오두인 마미코니안의 《타라 덩컨》 시리즈, 엘레오노르 드빌푸아의 《아르카》, 아민 말루프의 《마니》《사마르칸트》《타니오스의 바위》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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