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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심리학

스키너의 행동심리학

by 교양인 2017. 8. 28.

 

스키너의 행동심리학 _ B. F. 스키너

 

 

 

 

“인간을 이해하려면 행동을 관찰하라.”
프로이트 이래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킨 심리학자,
20세기 행동심리학의 대표자 스키너의 명쾌한 설명

 

 

20세기 초에 미국의 심리학자 존 B. 왓슨이 창시한 ‘행동주의’는 심리학이 객관적인 과학이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관찰 가능한 행동만을 연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행동은 예측과 통제가 가능하며 학습을 통해 수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본성이 아닌 양육(환경)의 중요성을 부각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인간의 의식, 감정, 마음을 무시한다.” “사람을 기계인형, 로봇처럼 여긴다.” “인간의 창조성과 윤리적 행위를 설명하지 못한다.” 같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스키너의 행동심리학(About Behaviorism)》(1974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급진적 행동주의’를 정립한 스키너는 이 책에서 행동주의에 쏟아진 온갖 오해를 바로잡고 올바른 이해를 제공하고자 한다.

스키너는 인간 행동의 원인을 내면에서 찾는 정신분석이나 인본주의 심리학을 비판하면서 외부 환경에서 원인을 찾았다. 그러나 인간을 단순히 환경의 산물로만 본 것은 아니었다. 인간과 환경은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영향을 끼친다. 인간은 환경을 통제하고 변화시킴으로써 자신과 타인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 한편으로 환경이 인간에게 가하는 통제를 잘 알면 감정, 감각, 회상, 추상적 사고 같은 내적 과정도 해석할 수 있다. 스키너의 행동주의는 인간 행동을 과학에 입각해 총체적으로 규명하려 한 과학 철학이자, 인간 존재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세계관이다.

 

오늘날의 세계에 관한 주요한 문제들은 우리가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를 개선할 때에만 해결될 수 있다. 전통적인 시각들은 수백 년을 거쳐 왔으니 이미 부적합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우리가 지금 처한 상황에 그 시각들은 다분히 책임이 있다. 행동주의는 장래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나는 그러한 입장을 명쾌하게 보여주고자 이 책을 썼다. - <들어가는 글>에서

 

행동주의가 인간을 비인간화한다는 말은 보통 행동주의가 기계나 동물에서 찾을 수 없는 중요한 능력, 가령 선택하고, 목적을 품고, 창조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간과한다는 뜻으로 통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선택, 의도, 독창성을 행동에서 추론해내며, 그러한 행동은 행동 분석의 범위 안에 있다. 과연 다른 종들이 행동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것인지도 확실치는 않다. 인간은 아마 유일한 도덕적 동물이겠지만 이 말은 인간이 도덕성을 소유한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 환경을 구성했고 그 안에서 자기 자신과 타인들에게 도덕적으로 행동해 왔다는 뜻일 뿐이다. - 본문에서

 

 

 

 

행동주의란 무엇인가

 

 

행동주의의 탄생
심리학이란 무엇인가? 대략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는 학문” 정도로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어떻게 연구할 수 있을까?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빌헬름 분트나 그의 제자였던 티치너 같은 학자들은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관찰하고 분석하는 방법(내성법, introspection)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는 연구의 객관성과 정확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 자기 성찰적인 심리 연구를 바탕으로 한 이론은 입증할 수 없었다. 미국의 심리학자 존 B. 왓슨은 내성을 이용한 주관주의적 심리 연구를 비판하면서 심리학은 객관적으로 관찰 가능한 행동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왓슨은 1913년에 발표한 논문 <행동주의자로서 바라본 심리학>에서 “진정한 과학적 심리학은 … 행동의 예측과 통제에 중점을 둔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후 이 논문은 행동주의자들 사이에서 ‘행동주의 선언서’로 알려졌다.

 

‘스키너 상자’와 행동주의의 시대
행동주의는 1930년대에 미국 심리학계의 주류로 떠올랐다. 그 중심에 버러스 프레더릭 스키너(Burrhus Frederic Skinner, 1904~1990)가 있었다. 스키너는 파블로프, 왓슨 같은 초기 행동주의자들과 진화론, 생리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엄격하게 통제된 실험과 관찰을 통해 행동주의를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스키너는 훗날 ‘스키너 상자’라고 알려지는 실험 장치를 발명해 독창적인 행동 실험을 했다. 바로 상자 안에 쥐를 넣고 쥐가 그 안에 설치된 막대를 누를 때마다 먹이가 제공되도록 만든 장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쥐가 먹이를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막대를 누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막대를 누르게 만드는 직접적인 자극은 없었고 쥐가 우연히 막대를 누르다가 먹이를 얻는 법을 학습하게 된 것이었다. 스키너에 따르면, 쥐가 막대를 누르는 행동은 행동의 긍정적 결과(먹이)에 의해 ‘강화’된 것이었다. 스키너는 이렇게 제시된 자극 없이 일어나는 행동을 ‘조작적 행동’이라고 불렀다. 조작적 행동과 달리 특정한 자극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해 일어나는 행동을 ‘반응 행동’이라 한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으로 확인된 ‘조건 반사’나, 무릎반사 같은 ‘무조건 반사’가 여기에 해당한다. 스키너는 다양한 행동 실험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의 행동은 행동의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로써 자극이 없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자발적 행동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와 인간의 마음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인지심리학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행동주의는 힘을 잃었다. 하지만 스키너의 핵심 이론은 지금도 임상 심리 현장에서 쓰이는 행동 수정 기법이나 교육공학 등 여러 영역에서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심리 치료에서 내담자가 바람직한 행동을 했을 때 치료자가 토큰을 주고 토큰이 일정 개수 모였을 때 내담자가 원하는 일을 하게 해줌으로써 바람직한 행동을 강화할 수 있다. 기업이 성과급이나 승진 기회 등을 제시해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일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도 스키너의 연구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행동주의 심리학의 거장, 스키너

 

 

스키너는 1904년 3월 20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작은 마을 서스쿼해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변호사였고 어머니는 전업 주부였으며 남동생이 한 명 있었다. 스키너의 말에 따르면 ‘따뜻하고 안정된’ 가정이었다고 한다.
1922년에 뉴욕의 해밀턴 칼리지에 입학해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작가를 꿈꾸었다. 1926년 졸업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 시와 단편 소설 등을 썼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다시 뉴욕으로 갔다. 이후 뉴욕에서 서점 점원으로 일하면서 행동주의의 선구자인 러시아의 생리학자 이반 파블로프와 미국의 행동주의자 존 B. 왓슨의 연구를 읽고 크게 흥미를 느꼈다. 스키너는 행동주의를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세계관’으로 받아들이고 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1928년에 하버드 대학 대학원에 진학했다.
1931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몇 년간 하버드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미네소타 대학(1936~1945)과 인디애나 대학(1945~1948)을 거쳐 1948년부터 하버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74년에 퇴직한 뒤에도 1990년에 백혈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확고한 행동주의자로서 강연과 저술 활동을 계속했다. 1938년에 출간한 《유기체의 행동》은 세계적으로 행동 실험 연구의 기반이 되었고, 1948년에는 이상 사회를 그린 소설 《월든 투》를 출간했다. 그 밖에 《과학과 인간 행동》, 《언어 행동》, 《자유와 존엄을 넘어서》 등을 출간했다.

행동주의를 창시한 왓슨보다 유명한 행동주의자인 스키너는 “자기 세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실험심리학자”이자 “프로이트 이래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킨 심리학자”였다. 그의 연구는 심리학이 현실에 응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높였으며, 인간의 본성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또 그는 객관적이고 엄격한 실험을 통해 심리학이 과학임을 확실히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심리학자이면서 정작 인간의 심리는 제대로 다루지 못했으며 인간의 자유 의지를 무시하고 인간 행동을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분석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스키너는 인간의 행동을 예측, 조작, 통제할 수 있는 ‘행동 공학’을 구상했다. 그의 소설 《월든 투》는 행동 공학의 이상을 담은 것으로서 긍정적 강화를 통해 모든 사람의 행동을 세심하게 통제하는 이상적인 공동체 사회를 그렸다. 처벌이나 혐오스러운 통제 없이 모든 사람이 효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구상이었다. 이 작품을 발표하고 스키너는 전체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1971년에 출간한 《자유와 존엄을 넘어서》도 논란을 일으켰다. 스키너는 인구 과잉, 환경오염, 핵전쟁의 위기 앞에서 인류의 미래는 과학 기술이 아니라 바로 ‘인간’에게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인간을 다르게 행동하게 만들려면 환경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사람들은 스키너가 인간을 환경에 지배받는 수동적 존재로 본다고 분노했지만, 그것은 인간이 환경을 통제한다는 스키너의 전제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었다. “행동주의에 관한 최고의 입문서”라는 평가를 받은 《스키너의 행동심리학》은 스키너가 자신의 행동주의에 쏟아진 온갖 오해에 대해 내놓은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왓슨 이래 행동주의는 “인간의 자유 의지와 감정을 무시한다.” “실험자와 실험 대상의 관계를 조종하기 때문에 반민주적이다.”와 같은 비판을 끊임없이 받았다. 이 책에서 스키너는 정신분석학이나 인본주의 심리학 같은 다른 심리학 학파와 행동주의의 차이, 초기 행동주의자들의 이론과 자신의 ‘급진적 행동주의’의 차이점을 명쾌히 정리한다. 나아가 행동주의를 둘러싼 오해를 바로잡고 올바른 이해를 제공하고자 한다.

 

스키너의 ‘급진적 행동주의’
스키너는 자신의 연구를 ‘급진적 행동주의(radical behaviorism)’라고 불렀다. 급진적 행동주의는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과학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 행동을 과학주의에 입각하여 총체적으로 규명하려 한 과학 철학이자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세계관이다. 스키너는 언어, 감정, 감각을 비롯해 흔히 내면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과정이라 불리는 것도 행동의 차원에서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행동주의자들이 감정, 감각, 생각과 그 밖에 심리적 삶의 다른 특징들을 부정한다는 주장은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방법론적 행동주의와 일부 논리실증주의 유파는 개인적 사건은 그 타당성에 대해서 공적 합의가 있을 수 없다고 보아 아예 배제해버렸다. 내성은 과학적인 것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빌헬름 분트나 티치너 같은 사람들의 심리학은 몹시 두들겨 맞았다. 그렇지만 급진적 행동주의는 노선을 달리한다. 급진적 행동주의는 자기 관찰이나 자기 지식(self-knowledge)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을뿐더러 그런 것이 유용할 수 있다는 생각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느껴지거나 관찰되는 것, 그로써 알게 되는 것의 본질에 의문을 제기한다. - 24쪽

 

(급진적 행동주의의 입장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겠다. 우리가 느끼는 것, 내적으로 관찰한 것은 의식, 마음, 정신적 삶 같은 비물질적인 세계가 아니라 관찰자 우리 자신의 신체다. 뒤에서 보여주겠지만, 이 말은 내성(內省, introspection)이 일종의 생리학적 탐구라는 뜻도 아니고, (이것이 핵심인데) 우리가 느끼는 것, 내적으로 관찰한 것이 행동의 원인이라는 뜻도 아니다. 생물은 자신의 현재 구조에 걸맞게 행동을 하지만 그 구조는 대부분 내성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때 우리는 방법론적 행동주의자가 주장하는 대로 개인의 유전적 ․ 환경적 이력들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내적으로 관찰된 것은 이러한 이력들의 부산물 같은 것이다. - 25쪽

 

 

사람들은 왜 행동의 원인을 내면에서 찾는가?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어떤 행동을 왜 했는지 모를 때 행동 직전에 느낀 감정이나 감각 따위를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스키너는 사람은 행동의 이유를 모를 때 행동 원인을 지어내기 쉽다고 지적한다. “내가 그렇게 한 걸 보면, 그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게지.” 수많은 신화들은 아무 근거 없는 미신적 행동에 관해서 지어낸 원인들에 불과할 수도 있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어떤 행동이 일어나게 된 환경이다.

 

내적 원인으로 가정되는 많은 것, 가령 태도, 의견, 성격상의 특징, 철학은 거의 전적으로 추리에 따른 것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이 노동자 친화적이다, 어느 후보에게 투표할 계획이다, 똑똑하다, 자유주의자다, 실용적이다, 라고 할 때 이 사실은 그 사람의 감정이 아니라 언행으로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격상의 특징을 가리키는 단어들이 행동 설명에 기탄없이 쓰인다. 어떤 정치가가 공직에 출마하는 이유는 ‘야심’ 때문이고, 수상쩍은 거래를 하는 이유는 ‘탐욕’ 때문이며, 차별 철폐 정책에 반대하는 이유는 ‘도덕적 무감각’ 때문이며, 그래도 지지자들의 성원을 받는 이유는 ‘리더십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적 원인들은 증거를 제시할 수 없으며, 그저 이러한 원인들에서 나왔다는 행동이 있을 뿐이다. - 196~197쪽

 

마음의 정서적이고 동기적인 삶을 탐구하는 것이 사상사의 위대한 업적에 속하는 양 이야기되는데, 오히려 그것이 가장 큰 재앙일 수도 있다. …… “총이 아니라 마음이 죽인 것이다.” 라는 주장은 총을 못 쓰게 한다고 해서 암살자들을 통제할 수 없음을 강조할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이 죽인 것이라는 설명을 받아들이는 한, 다른 통제 수단들은 간과되고 말 것이다. 마음의 내적 작용을 반박하는 이유는 그러한 작용을 검토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더 중요한 것들을 검토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 203~204쪽

 

 

다른 사람을 안다는 것
스키너는 감정, 생각, 감각, 의식 같은 ‘마음속에 있는 것’을 말로써는 정확히 표현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행동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가 그 행동을 어떻게 느끼느냐가 중요하다면” 감정을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감정을 살피지 않고도 얼마든지 다룰 수 있다.

 

행동주의 분석에서 다른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냥 그의 현재 행동과 과거 행동을 안다는 것, 혹은 그가 장차 할 행동을 안다는 것이고 유전적 자질과 과거와 현재의 환경이 왜 그가 그렇게 행동하는가를 설명해준다. 우리 힘으로 파악할 수 없는 관련 사실들도 많고 한 사람 한 사람은 분명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러한 소임은 결코 녹록지 않다. 우리가 물리학과 생물학의 세계에서 알고자 하는 것을 다 알지는 못하듯이, 이 분야에서도 알아야 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들이 아예 성격 자체가 달라서 알려지지 못한 것은 아니다. 다른 과학 분야에서도 그렇지만, 우리도 종종 예측과 통제에 필요한 정보가 없어서 해석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조건에서 가능했던 예측과 통제가 우리의 해석을 뒷받침해줄 것이다. - 218쪽

 

 

윤리적이고 이타적인 행동은 어떻게 가능한가? 
비탄에 빠진 자를 위로하고, 병든 자를 고쳐주고,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이유가 그런 불행한 이들에게 공감하고 감정을 함께 나누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스키너는 이러한 주장에 반박하며, 그렇게 감정과 결부된 행동이 생존에 가치 있는 행동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잘 대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위로하고, 공감하고, 나누는 이타적인 행동 역시 스키너는 역통제를 받아서 조정되는 행동이라고 보았다. 우리가 남들에게 상처가 되는 행동을 삼가는 이유는 ‘그들이 상처받으면 어떤 기분일지를’ 알아서가 아니다. 같은 종 안에서 다른 구성원에게 상처를 입히면 종의 생존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이고, 남을 상처 입혔을 때 나도 상처 입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죄를 짓기 때문에 죄악의 존재인가, 아니면 죄악의 존재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인가? 마르크스도 비슷한 질문을 제기하고 이렇게 답한 바 있다. “인간의 의식이 그의 실존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 실존이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윌리엄 제임스도 정서 영역에서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울기 때문에 슬픈 것이다.” 이상의 세 진술은 모두 중요한 세부 사항 하나가 빠져 있다. 상태 ‘그리고’ 행동, 이 양쪽 모두의 원인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도덕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도덕적 인간인가, 도덕적 인간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둘 다 아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사람은 특수한 환경에 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행동하고 우리가 그를 도덕적이라 일컫는 것이다. - 240~241쪽

 

 

행동주의는 무의식을 다룰 수 없다?
정신분석학자들은 행동주의가 무의식을 다룰 수 없다고 곧잘 지적한다. 스키너에 따르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유전 및 환경 변수들과 행동 사이의 관계는 우리가 관찰하지 않는 한 무의식적이다. 프로이트는 이 관계가 관찰되지 않더라도(즉, 의식적이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효력을 지닐 수 있다고 강조한 장본인이다.” 행동주의가 거부하는 것은 무의식 자체가 아니라 무의식을 인간 행동의 주체로 보는 것이다.

 

행동주의가 거부하는 것은 행위 주체(agent)로서의 무의식이다. 물론, 행동주의는 의식(conscious mind)을 행위 주체로 보는 것도 거부한다. 어떤 무함마드 평전은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무함마드가 들었다는 말이 …… 무함마드 본인의 무의식이 불러준 것에 불과할 터요…… 알라의 목소리도 사실은 무함마드의 무의식의 목소리일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야기를 했다면 그 사람은 무함마드 자신이고, 그가 본인의 행동을 관찰하지 못했더라도 이 점은 마찬가지다. 행동을 설명하려면 파편적인 내적 행위 주체 따위가 아니라 인간 무함마드, 그가 무함마드로서 존재하게 한 (개인의) 역사를 봐야 한다. - 190쪽

 

 

행동주의는 인간을 비인간화하고 기계처럼 여긴다?

행동은 사람의 성취다. 우리가 행동의 근원으로 환경을 지목하다 보니 인간의 천성적인 몫을 박탈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인간을 비인간화하지 않는다. 인간을 호문쿨루스처럼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본질적인 쟁점은 자율성이다. 인간은 자기 운명을 스스로 다스리는가, 아니면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과학적 분석이 인간을 승리자에서 피해자로 바꾸어놓았다는 주장도 대개 같은 맥락에 있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지금까지 그래 왔던 대로일 것이며 인간의 가장 뚜렷한 성취는 자신을 제약에서 해방시키고 운신 범위를 크게 확장해주는 세계를 설계하고 구성했다는 데 있다.
- 295~296쪽

 

 

 

 

옮긴이

 

 

이신영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서강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심리학 관련 서적을 여러 권 우리말로 옮겼다.

 

 

 

 

차 례

 

 

들어가는 글

1장 행동의 원인
2장 살갗 안의 세계
3장 선천적 행동
4장 조작적 행동
5장 지각
6장 언어 행동
7장 생각
8장 원인과 이유
9장 앎
10장 동기와 정서의 내면 세계
11장 자기와 타자들
12장 통제의 문제
13장 살갗 안에 무엇이 있는가?
14장 요약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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