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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문제적 인간 시리즈

[기타 잇키] 책 소개

by 교양인 2010.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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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잇키보도자료.hwp



“기타 잇키의 《일본개조법안대강》은 쇼와 시대 초국가주의 운동의

《나의 투쟁(Mein Kampf)》이었다.” - 마루야마 마사오


“쇼와사의 현상 배후에는 항상 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처럼 중국옷을 입은

기타 잇키의 야윈 몸이 서 있었다.” - 미시마 유키오





일본 군국주의의 배후로 낙인찍혀

역사의 무덤에 매장당한 혁명가

기타 잇키의 진짜 얼굴을 만난다!


유배자들의 섬 사도(佐渡)에서 태어나 자유 민권 시대의 공기를 들이마신 변경인. 사회주의, 아나키즘, 민주주의, 국가주의, 천황주의, 자유주의, 개인주의, 낭만주의 등 온갖 사상의 용광로에서 자신의 이념을 정련한 조숙한 청년. 스스로 ‘동양의 루소’라 칭했던 광기의 천재. 자신의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기꺼이 죽음으로 나아갔던 사상가. 공화주의 혁명을 꿈꾸며 바다 건너 중국 혁명에 뛰어든 열혈 혁명가. 천황 신화를 폐기하고 천황을 혁명의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던 가공할 상상력의 소유자. 24살 때 쓴 1천 쪽이 넘는 대작 《국체론과 순정사회주의》로 일본 사상계를 강타한 기괴한 사상가 기타 잇키(北一輝, 1883~1937)를 만난다.

《기타 잇키》는 1936년 일본 전역을 뒤흔든 2․26 쿠데타의 정신적 지도자 기타 잇키의 삶과 사상을 끈질긴 추적과 철저한 고증으로 되살려낸 탁월한 전기이자 독창적인 역사서이다. 쿠데타의 배후라는 이유로 역사의 무덤에 깊숙이 매장당한 기타 잇키는 박정희와 5․16 쿠데타의 사상적 배경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일본의 사상사가 마쓰모토 겐이치가 30년에 걸쳐 200자 원고지 7천 장에 담아낸 이 책은 과격 천황 숭배자들의 우두머리이자 극우 파시스트로 오해받아 온 불온한 혁명가 기타 잇키의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좌익과 우익 고정관념 너머의 존재, 일본 근대 사상계의 마왕

기타 잇키는 가장 격정적인 ‘천황 신앙’ 파괴자였다. 국체론이라는 이름의 천황 절대주의를 가장 날카롭게 비판하고 해체한 사람이었다. 발행되자마자 모두 압수되어 금서로 묶인 《국체론과 순정사회주의》는 사회주의와 국가주의를 결합한 사상서이자 천황 주권론에 맞서 국민 주권론을 제시한 이론서였다.

그는 스스로 ‘동양의 루소’라 칭했던 광기의 천재였다. 사회주의 사상을 자양분으로 삼아 스스로가 곧 국가의 체현자이기를 갈망한 국가사회주의자였다. 인간은 모두 고귀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정신적 귀족주의자였고, 계급 차별을 타파하고 하층을 상층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한 고상한 평등주의자였으며, 국가라는 공동체 안에서 사회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믿은 ‘순정(純正)’ 사회주의자였다. 동시에 그는 개인의 자유를 열렬히 옹호한 개인주의자였고, ‘동양적 공화주의 혁명’을 실현하기 위해 중국 신해 혁명에 뛰어든 낭만적 혁명가였다.

그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법화경을 낭송한 경건한 불교 수행자였다. 메이지 말기부터 쇼와 초기까지 30년 동안 그는 일본 사상계의 ‘마왕(魔王)’이었다. 당대 일본의 지배 세력에게 그는 불온한 급진파였고, 위험한 지식인이었다. 그는 천황 신화를 거부했고, 천황 숭배라는 미신에 빠진 일본을 야만의 나라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가사회주의 이념의 원조였지만 히틀러의 나치즘이나 무솔리니의 파시즘과는 무관한 독자적인 ‘파시즘 혁명가’였다. 그는 일본의 중국 침략을 비판하고, 중국과의 전쟁이 결국 2차 세계대전을 불러와 일본이 패망할 것이라 예언한 선견지명의 소유자였다. 이 점에서 그는 군국주의적 침략 논리로 태평양전쟁으로 치달은 일본 천황주의자나 군국주의자들과는 다른 존재였다.

정식으로 간행되기도 전에 금서가 된 《일본개조법안대강》은 아는 사람들끼리 비밀리에 필사해 돌려 읽는 가장 위험한 불온 문서였다. 일본 국가 혁명의 강령이 담긴 이 대작은 좌우를 넘어 지식 계층 전체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으며, 1936년 2·26 쿠데타의 주역이 된 청년 장교들 사이에서 ‘바이블’로 받아들여졌다. 기타 잇키는 청년 장교들을 사상으로 현혹했다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쿠데타 주역들이 모두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죽어갈 때, 사형대에 선 이 사상의 지도자는 ‘만세’ 부르기를 거부했다.
과격 천황 숭배자들의 배후로 지목받았으나 한 번도 천황주의자였던 적이 없었던 절대적․비판적 개인, 카리스마 대 카리스마로 마지막 순간까지 천황과 맞섰던 거의 유일한 적수, 기타 잇키의 삶과 사상의 총체를 만난다.


30여 년의 추적 끝에 처음으로 밝혀낸 불온한 혁명가 기타 잇키의 총체적 진실!

《기타 잇키》는 2004년 일본 이와나미서점에서 출간되어 “보기 드문 독창적 근현대사 연구” “뛰어난 문학성을 획득한 역사서”라는 찬사를 받은 《평전 기타 잇키(評傳 北一輝)》(전 5권)의 한국어판이다.
‘좌도 우도 아닌 일본을 그리는 지성’으로 불리는 저자 마쓰모토 겐이치는 필생의 역작인 《기타 잇키》에서 역사와 사상을 종횡무진 내달리는 해박한 지식과 사건의 이면을 꿰뚫어 보는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사이비 혁명가, 극우 파시스트라는 오해 속에 가려져 있던 기타 잇키의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또한 저자는 사회주의에서 국가주의에 이르는 기타 잇키의 사상적 편력을 통해 근대 일본이 수용하고 대결해야 했던 사상적 스펙트럼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나아가, 쑨원과 쑹자오런을 비롯한 중국 신해 혁명의 주역들, 노동자들의 직접 행동을 주장한 사회주의자 고토쿠 슈스이, 아나키스트 오스기 사카에, 기독교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 천황 암살 계획을 세웠던 조선의 독립 운동가 박열, 한일 병합의 배후인 흑룡회와 우치다 료헤이, 만주국의 기획자 이시하라 간지에 이르기까지, 기타 잇키의 삶의 궤적을 따라 등장하는 근대 초 일본과 중국에서 활약한 사상가와 혁명가, 음모가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우파와 좌파, 보수와 진보에 대한 개념마저 명확하지 않은 한국의 지적 풍토에서 사회주의에서 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역을 아우르는 기타 잇키의 사상적 행보는 조금 낯설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상 발자취를 남긴 인물의 사상이 하나의 이념이나 신념으로 재단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사유의 직조물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자세를 갖춘 사람들에게, 기타 잇키의 사상적 역정은 삶과 사상과 행동의 관련성을 고민하는 데 시금석이 되어줄 것이다.


5․16과 2․26, 박정희와 기타 잇키

(1960년) 박정희가 일본 청년 장교들이 일으킨 5․15 사건, 2․26 사건을 들먹이면서 찬사를 늘어놓자 황 주필(박정희의 친구이자 당시 <부산일보> 주필이던 황용주)이 “너 무슨 소릴 하노. 놈들은 천황절대주의자들이고 케케묵은 국수주의자들이다. 그놈들이 일본을 망쳤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소린가!”라고 반박했다.
“일본의 군인이 천황절대주의자 하는 게 왜 나쁜가. 그리고 국수주의가 어째서 나쁜가.” 
황용주가 “그것은 고루한 생각으로서 세계 평화에 해독이 된다.”고 반박하자 박정희는 열을 올렸다.
“그런 잠꼬대 같은 소릴 하고 있으니까 글 쓰는 놈들은 믿을 수 없다. 일본이 망한 게 뭐꼬. 지금 잘해 나가고 있지 않나. 역사를 바로 봐야 해. 패전 후 얼마 되지 않아 일본은 일어서지 않았나.”
“국수주의자들이 망친 일본을 자유주의자들이 일으켜 세운 거다.”
“자유주의? 자유주의 갖고 뭐가 돼. 국수주의자들의 기백이 오늘의 일본을 만든 거야. 우리는 그 기백을 배워야 하네.” - 이병주 ‘대통령들의 초상’, <월간조선> 1991년 7월호



한국에서 기타 잇키라는 이름은 박정희, 5․16 쿠데타와 함께 회자된다. 박정희가 1936년 일본 청년 장교들의 쿠데타인 2․26 사건을 높이 평가했으며, 2․26 쿠데타 주역들의 사상적 배후인 기타 잇키를 연구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기타 잇키는 박정희의 사상적 배후인가?


우파와 좌파, 보수와 진보에 대한 개념마저 명확하지 않은 한국의 지적 풍토에서 기타 잇키는 조금 낯설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회주의에서 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역을 아우르는 그의 사상적 행보는 적잖이 당황스러울 것이다. 물론 법화경 행자 춘원 이광수가 쓴《이순신》을 탐독하면서 스스로 영웅이 되기를 갈망했던 군인 박정희에게서 기타 잇키의 흔적을 발견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예컨대 이순신이나 나폴레옹 또는 일본 역사에 등장하는 군사 영웅 등을 숭배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군대 조직, 일본 제국, 국가(대한민국) 등의 단체를 자신과 거의 일치시키는 관념을 드러낸 박정희는 자신을 국가 의지의 체현자로 상상한 기타 잇키와 일정 정도 관련성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박정희가 2·26사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5·16 쿠데타 직전 “2·26 사건 때 일본의 젊은 우국 군인들이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궐기했던 것처럼 우리도 일어나 확 뒤집어엎어야 할 것이 아닌가?”라고 기염을 토했다는 전언도 기타 잇키—2·26 사건—박정희의 사상을 잇는 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구체적인 관련 양상은 역사적 특수성, 주체의 위치, 사상과 행동의 낙차 등을 고려하여 더욱 깊이 고구되어야 할 것이다. - ‘옮긴이 해설’에서



지은이 * 옮긴이


마쓰모토 겐이치(松本健一)

문예 평론가, 작가, 역사가, 사상사가. 사건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 역사와 사상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일본 근대사와 동아시아 사상사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으며, ‘좌도 우도 아닌 일본을 그려내는 지성’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우익’ 을 최초로 ‘사상’의 측면에서 다룬 학자로 알려져 있다.

1946년 군마 현에서 태어났다. 1968년 도쿄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호세이대학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문학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레이타쿠대학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71년에 출간한 《청년 기타 잇키》로 큰 주목을 받았다. 파시스트 혹은 사이비 혁명가로 불리며 누구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기타 잇키를 천황제 일본과 격렬하게 대결했던 혁명 사상가로 새롭게 평가함으로써 놀라운 충격을 주었다. 이후 30여 년에 걸친 그의 기타 잇키 연구는 2004년에 출간된 《기타 잇키(評傳 北一輝)》로 완결되었다. 천황제 신화를 폐기하고 천황을 혁명의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던 가공할 상상력의 소유자, 좌와 우를 아우르며 ‘마왕’으로 불렸던 ‘카리스마’ 기타 잇키의 삶과 사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마쓰모토 겐이치는 《기타 잇키》로 2005년 “역사서로서 뛰어난 문학성을 획득”하였다는 평가를 받으며 ‘시바 료타로 상’을 받았다. 또 “위험한 혁명 사상가를 중심에 둔 보기 드문 독창적 근현대사 연구”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 《기타 잇키론》 《일본 우익 사상의 기원과 종언》 《일본의 내셔널리즘》 《다케우치 요시미 ‘일본의 아시아주의’ 정독》 《마루야마 마사오 ― 8·15 혁명 전설》 《평전 사이토 다카오》 《미시마 유키오의 2·26 사건》 《쇼와 천황》 《해안선의 역사》 등이 있다.


정선태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국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개화기 신문 논설의 서사 수용 양상》 《심연을 탐사하는 고래의 눈》 《근대의 어둠을 응시하는 고양이의 시선》 《한국 근대 문학의 수렴과 발산》 《시작을 위한 에필로그》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동양적 근대의 창출-루쉰과 소세키》 《일본 문학의 근대와 반근대》 《가네코 후미코》 《지도의 상상력》 《일본어의 근대》 《생활 속의 식민지주의》 《창씨 개명-제국주의 일본의 조선 지배와 이름의 정치학》 《일본 근대의 풍경》(공역) 《삼취인경륜문답》(공역) 《일본 근대사상사》(공역) 《조선의 혼을 찾아서》(공역) 등이 있다.


오석철

일본 주오대 문학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 대학원 인문사회계연구과 석사를 마쳤다. 전공은 미디어론과 문화 연구이다. 옮긴 책으로 《삼취인경륜문답》(공역) 《도쿄 스터디즈》 《왜 다시 친미냐 반미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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