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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인문학

[노자와 다석] 책 소개

by 교양인 2013.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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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다석_보도자료(최종).hwp





“내 뜻을 이루는 것은 인위(人爲)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무위(無爲)다.

하느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으니 무불위(無不爲)다.”




내 속에 존재하는 진리의 빛을 깨달아 올바르게 살려는 마음,

그것이 ‘도덕(道德)’이다!


5천여 자, 81장으로 이루어진 《노자》 즉 《도덕경》은 오늘날 수많은 판본과 번역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다석 류영모의 번역은 《노자》를 우리말로 풀어 쓴 선구적인 업적으로 꼽힌다. 다석은 노장(老莊) 연구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20세기 초반에 이미 깊이 있는 강해로 이름을 떨쳤다. 《노자와 다석》은 유교․불교․노장 사상과 기독교를 하나로 꿰뚫어 독창적인 사상 체계를 세운 다석 류영모의 《노자》 번역을 바탕으로 삼아 그의 제자 박영호가 풀이를 덧붙인 책이다.


류영모는 오산학교 교사로 있던 스무 살 때부터 《노자》를 즐겨 읽었고, 35년간 서울YMCA 연경반에서 행한 고전 강의에서 오랫동안 《노자》를 강의하였다. 이광수, 최남선을 비롯해 함석헌, 김교신, 김흥호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상가와 지식인들이 다석의 ‘늙은이(老子)’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다석은 여러 경전을 두루 좋아했으나 《노자》와 《중용》만 한글로 완역했다. 《노자》는 1959년 3월 22일부터 우리말로 옮기기 시작해 21일 만인 1959년 4월 11일에 완성되었다. 다석의 《노자》 우리말 옮김을 보면 눈이 번쩍 뜨이면서 이렇게 옮길 수도 있구나 하고 놀라게 된다. 우리말에서 철학적 사유의 길을 찾은 다석은 ‘도(道)’를 ‘길’로, ‘덕(德)’을 ‘속알’로, ‘무위(無爲)’를 ‘함 없음’으로 옮겼으며, 이러한 다석의 풀이를 통해 《노자》를 우리말로 이해하는 길이 열렸다.


"인류 역사상 가장 심오한 지혜를 담은 책"

춘추 전국 시대에 지어졌다고 전해지는 《노자》는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번역되었으며, 동서고금의 수많은 대가들이 《노자》에서 세상의 이치를 얻어 철학적 사유를 확장하였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문학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상가로 노자를 꼽았으며, 헤겔은 노자의 사상을 그리스 철학을 능가하는 인류 철학의 원천이라고 극찬했다. 특히 서양의 노자로 불리는 실존 철학자 하이데거는 《노자》를 독일어로 옮기는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으며, 노자의 ‘도(道)’를 ‘모든 것에 길을 내주는 길’이라 풀이했다.


이러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글자 하나가 하나의 사상을 담고 있는 《노자》는 동양의 경전 중에서 가장 심오하여 쉬이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고유명사를 거의 찾아볼 수 없어 해석자에 따라, 또는 읽는 사람이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글의 의미가 달라진다. 류영모는 대체로 직역으로 옮겼는데, 이 방식에는 원문을 읽는 이에게 그대로 전해 독자가 낱말이나 글자 하나가 지니고 있는 깊고 넓은 사유의 세계를 맘껏 거닐게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류영모의 《노자》는 한문이 지니는 해석의 다양성을 헤아린 탁월한 풀이이며, 우리말로 철학하기의 지평을 넓힌 전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 말과 글로 철학하기


순우리말로 옮긴 《노자》

한자는 뜻글자이지만 한글은 소리글자이다. 그러나 다석 류영모는 세종이 한글을 지을 때 자연의 원리에 입각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모음과 자음이 그 나름대로 뜻을 지니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한글이 한자와 다름없는 뜻글자의 구실을 한다고 보았다. 류영모는 이러한 한글의 생성 원리를 밝혀 우리 말과 글로 철학을 하고자 하였으며, 특히 우리 말과 글에는 하늘의 이치가 담겨 있다고 하여 아꼈다. 여러 가지 재미있고 유익한 말을 만들어 쓰기를 즐겼던 류영모는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씨알 가르칠(訓民) 바른 소리(正音)’라고 순우리말로 옮겨 썼으며, ‘노자(老子)’도 ‘늙은이’로 옮겼다.

류영모가 우리말로 완역한 경전은 《노자》와 《중용》뿐인데, 그중에서도 처음으로 완역한 것이 《노자》이다.


“나는 스무 살 전후에 불경과 《노자》를 읽었습니다. 그러나 무(無)와 공(空)을 즐길 줄은 몰랐습니다. 요새 와서 비로소 공에 친해졌습니다. 불교에서는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진일보(進一步)해야 허공에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간두에 매달려 있는 한 허공에 갈 수 없습니다. 우주를 담은 허공이 실존입니다. …… 나는 빔에 가야 해방된다고 생각합니다. 불교나 노자는 한마디로 빔(空, 無)이라 하면 됩니다. 서양 사람들은 이 빔을 모르고 유(有)만 가지고 제법 효과를 보지만 원대한 것을 모르니 갑갑하기만 합니다. 빔은 절대자가 아니라 절대자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절대(하느님)의 아들은 빈탕(虛空)을 바라야 합니다.”(류영모, 《다석 어록》)


2006년 <교수신문>은 《노자》의 우리말 번역본으로 김용옥의 《길과 얻음》을 꼽으며, “‘노자’의 핵심 개념인 ‘도(道)’와 ‘덕(德)’을 ‘길’과 ‘얻음’이라 번역함으로써 우리말화의 공로가 크다고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김용옥은 자신의 저서 《노자와 21세기》에서 다석의 《노자》풀이를 높이 평가하였다.


“이러한 우리 조선 땅, 도가 철학 불모지에서, 금세기에 유일하게 노자를 강해하고 노자의 지혜를 이 땅의 사람들에게 전파한 선각자가 한 분 계셨으니 그 분이 바로 이승훈, 조만식을 뒤이어 제3대 정주 오산학교 교장을 역임하신 다석 유영모(1890~1981) 선생이시다. 다석 선생이 오산에 교장으로 계실 때, 춘원 이광수가 국어 선생으로 있었고, 함석헌이 4학년 학생이었다. …… 특히 함석헌은 유영모의 정통 제자로 자처, ‘다석을 만나지 못했다면 오늘의 내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하곤 했다. ……

내가 학문을 이루고 귀국하여 유영모 선생을 한번 찾아뵙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이미 저 하늘나라로 승천하신 후 일 년이 지났을 때였다. 내 평생에 다석 선생을 육안으로 뵙지 못한 것을 천추, 만추, 아니 억겁의 한으로 생각한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늙은이

길 옳다 길, 늘 길 아니고. 이를 만 이름, 늘 이름 아니오라. 이름 없에, 하늘.따의 비릇. 이름 있에 잘몬의 엄이 므로 늘 하고잡 없에 그 야믊이 뵈고, 늘 하고잡 있어 그 도라감이 뵈와라. 이 둘은 한끠 나와서 달리 부르(아리)니, 한끠 닐러 감아. 감아 또 가뭄이 뭇 아득의 문(오래)이오라.


이것이 다석 선생이 옛날에 직접 가리방으로 긁어 프린트 한 강의 노트에 적힌 《노자(늙은이)》 제1장의 우리말 풀이다. 그 얼마나 아름다운 우리말이요, 그 얼마나 깊은 선생의 경전 이해의 숨결이 느껴지는가?” _김용옥, 《노자와 21세기(상)》



“길 옳단 길이 늘 길 아니고(道可道非常道).

이를 만한 이름이 늘 이름이 아니라(名可名非常名)”



도(道)를 깨달아 덕(德)으로 행하다

류영모는 노자의 ‘도(道)’를 하느님이 계시는 저 높은 곳으로 머리(首)를 향하여 달려가는(走) 모습을 나타낸 글자라 하여 ‘길’로 새겼다. 이 ‘길’을 따르는 것, 즉 올바르게 살려는 힘이 ‘덕(德)’이다. ‘도(道)’는 예수의 영(靈), 석가의 법(法)과 같은 뜻이다. 《도덕경》은 우주의 근본 원리이자 ‘도’의 본원적 상태인 ‘무(無)’를 깨닫고 마침내 하나되는 것이 참사람의 길임을 일러준다.


노자는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한 끝에 몸나가 지닌 탐․진․치의 수성(獸性)을 버리고 속알(德)로 살아야 함을 알았다. ‘덕(德)’ 자의 원형은 덕(悳), 즉 ‘곧은 마음(直心)’이다. 나중에 ‘행(行)’이 추가되어 ‘덕(德)’이 되었다. 덕의 ‘사(四)’ 자는 ‘목(目)’ 자를 가로로 눕힌 것이다. 직(直)의 ‘십(十)’ 자는 일체(一切)를 하나로 모은다는 뜻이다. 일체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존재는 하느님뿐이다. 하느님의 눈을 의식하는 사람의 마음은 곧을 수밖에 없다. 곧은 마음으로 인생길을 걸어가는 삶이 덕(德)이다. ― 26장 ‘길잡이 말’․20~21쪽에서


도와 덕은 ‘없(無)’에서 나오는데, 이를 노자는 자연(自然)이라고도 하고, 무극(無極)이라고도 한다. 노자의 ‘없’은 불교에서 말하는 빔(空)과 맥을 같이 한다. ‘없’이 ‘빔’이요, ‘빔’이 ‘없’인데 류영모는 빔을 ‘빈탕’ 또는 ‘빈탕한 데’라 했다. ‘빈탕한 데’란 류영모가 ‘허공’을 순우리말로 풀어낸 것이다. 류영모는 평생 소원을 빈탕한 데 맞춰 노는 것이라고 했다. 곧 있음과 없음을 초월하여 ‘없이 계신’ 하느님의 실체는 ‘빈탕’이며 하느님 아버지의 품에서 살아가는 것을 ‘빈탕한 데 맞춰 놀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빈탕한 데(허공)에 같이 가야 하는데 다 같이 가기가 힘들다.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괜한 소리만 떠든다. 무슨 종교, 무슨 학설이 다 무언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게 거짓이고 속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하느님이신 절대공(絶對空)을 사모하고 사모한다. 빈탕한 데에 맞춰 놀이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 우리가 죽으면 어떻게 되나?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라야 참이 될 수 있다. 참으로 무서운 것은 허공이다. 허공이 참인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허공 없이 실존이고 진실이고 어디에 있는가? 우주조차 허공 없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허공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류영모) ― ‘길잡이 말’․17~18쪽에서


하느님이 뜻하는 대로 하는 것이 무위(無爲)다

류영모는 《도덕경》을 접하고서야 비로소 ‘없(無)’을 알았다고 하였다. 류영모는 노자의 ‘무(無)’를 무극(無極)인 하느님으로 풀이한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영원한 생명인 ‘도(道)’가 마음속에 빛나는 것을 깨달은 이는 ‘덕(德)’으로써 행한다. 즉 하느님이 보내는 ‘도’를 깨달아 바르게 살고자 함이 노자의 ‘도덕(道德)’이다. 하느님이 뜻하는 대로 함이 노자의 ‘무위(無爲)’다. 다석은 노자의 가르침이 예수, 석가와 다르지 않으며, 예수와 석가와 노자의 마음에서 빛나던 진리의 빛이 ‘무’에서 오는 한 얼의 빛이라 하였다. 《노자와 다석》은 노자를 통해 하느님이 전하고자 한 진리의 속뜻을 다석 특유의 사유와 독창적인 해석으로 풀어낸다.


절대 존재인 얼생명(하느님)은 유(有)의 물질이 아니라 무(無)의 신령(神靈)이다. 하늘땅의 우주는 ‘없음(無)’에서 비롯되었다. 하늘땅의 우주는 없어져도 ‘없음’은 그대로다. 무(無)는 처음도 없고 마침도 없다. 그러므로 무는 우주의 비롯도 되고 마침도 된다. 바다에 고기 떼가 생겨나듯이 허공에 천체가 생겨났다. 고기 떼가 있든 없든 바다는 바다이듯이 천체야 있든 없든 무(無)의 허공은 허공이다. 무(無) 속의 유(有)는 무일 수밖에 없다. ― 1장 ‘이름할 수 없는 님이 하늘과 땅의 비롯이다’․37~38쪽에서


노자가 얼나(道)를 무(無)라고 한 것은 얼나가 있어도 사람의 오관으로는 지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의식 너머, 사고 너머의 존재라 따지고 물어서 알아지는 것이 아니다. 상대 세계(有)와 절대 세계(無)를 포함한 전체가 하느님이시다. ‘왼통 하나(混而爲一)’이다. 하나인 전체는 무한하여 이름할 수 없다. 아무것도 없어 모습 없는 모습의 허공인 무(無)이다. ― 14장 ‘다시 아무것도 없는 데로 돌아간다’․125쪽에서


하느님은 말 그대로 ‘함 없이 하지 않음이 없다(無爲而無不爲)’는 것을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은 자연계를 다스리는데 보이지 않는다. 하느님은 일을 하시는데 통히 나타나지 않고 저절로 되게 하신다. 하느님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대로 또 우리가 높인 대로 그렇게 계신 분이 아니다. 우리가 듣고 알 만한 일에 그의 존재를 나타내시지 않는다.”(류영모) ― 37장 ‘얼은 함 없이도 늘 아니하는 게 없다’ ․291쪽에서


예수와 공자와 노자의 가르침은 하나다

류영모는 평생 예수를 스승으로 섬겼으나 성경을 절대시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석가, 노자, 장자, 공자, 맹자, 소크라테스 등 인류 역사에 등장한 모든 성인들을 두루 좋아했다. 류영모의 종교관은 일원다교(一元多敎), 즉 ‘가르침은 여럿이지만 진리는 하나’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류영모는 기독교만이 아니라 불교, 유교, 노장 사상 등 동서양 모든 종교와 철학에서 하나의 진리를 보았다. 다만, 하느님이 주시는 하느님의 생명인 얼(성령)을 공자는 덕(德)이라 하고, 석가는 법(法)이라 하고 노자는 도(道)라 하고, 예수는 얼(靈)이라고 한 것이 다를 뿐이다. 이름만 다를 뿐 실체는 똑같다는 것이다. 류영모는 “얼의 나로는 너와 나가 없다. 그러므로 얼로는 예수, 석가, 공자, 노자의 구별이 없다.”라고 하였다. 류영모는 바로 이것이 예수와 석가, 공자, 노자가 인류에게 가르쳐주려 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우리가 좀 더 길고 넓게 살 수 없는가 하는 문제가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이다. 몸으로는 안 되고 얼나로는 가능하다. 예수·석가·노자는 정신적으로 영생한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어 그들의 말을 듣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그들하고 상관이 없다.”(류영모) ― ‘길잡이 말’․14쪽에서


사람은 물욕, 식욕, 정욕의 짐승 성질(본성)을 지닌 채 세상에 태어난다. 류영모는 그러한 짐승의 ‘제나(自我)’는 참나가 아니므로 짐승의 ‘나’는 죽이고 하느님으로부터 얼생명(靈性)을 받아 참나가 되자고 하였다. 류영모는, 하늘과 땅 사이에 곧게 선 존재인 사람에게 하늘과 땅과 합일을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다 하여, 솟아올라 앞으로 나아감(솟남)을 강조하였다.


“몸사람으로는 호기심에서 살맛(肉味)을 찾아다니는 짐승이다. 그래서 몸의 근본은 악과 친하려고 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아들인 얼사람은 하느님 아버지께로 돌아가려고 한다. 사람은 분명 짐승인데 짐승의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얼사람으로 솟나는 우리의 길이다. 영원한 생명은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버리는 것일 뿐이다. 육체를 버리는 것, 세상을 버리는 것이 바른 신앙에 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탐욕을 버리는 것이 세상을 버리는 것이다.”(류영모) ― 23장 ‘말씀이 하느님이시다’․195쪽에서





앎과 삶이 하나로 일치한 우리 겨레의 큰 스승,

다석 류영모(1890~1981)



다석 류영모는 불경, 성경, 동양철학, 서양철학에 두루 능통했던 대석학이자 평생 동안 진리를 좇아 구경각(究竟覺)에 이른 우리나라의 큰 사상가였다. 그는 우리 말과 글로써 철학을 한 최초의 사상가였으며, 불교, 노장 사상, 공자와 맹자 등을 두루 탐구하고 기독교를 줄기로 삼아 이 모든 종교와 사상을 하나로 꿰는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사상 체계를 세웠다. 모든 종교가 외형은 달라도 근원은 하나임을 밝히는 다석의 종교관은 시대를 앞선 종교 사상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1890년 3월 13일 서울에서 태어난 류영모는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배웠다. 그러던 중 한국인으론 첫 YMCA 총무를 지낸 김정식의 인도로 서울 연동교회 신자가 되어 15세에 세례를 받았다. 1907년 서울 경신학교에 입학해 2년간 수학했으며, 1910년 20세에 남강 이승훈의 초빙을 받아 평북 정주 오산학교 교사로 2년간 봉직하였다. 이때 오산학교에 기독교 신앙을 처음 전파하여 남강 이승훈이 기독교에 입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광수, 정인보와 함께 1910년대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렸다. 1921년(31세)에 고당 조만식 선생 후꺄 19오산학교 교장이 되어 1년간 재직하였다. 그때 함석헌이 졸업반 학생이었다. 1928년부터 YMCA에서 연경반(硏經班) 모임을 맡아 1963년까지 30년이 넘도록 강의를 하였다.


처음 세례를 받고 몇 년 동안 정통 기독교인이었으나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아 무교회주의적 입장을 취하게 되었으며, 그 뒤로 교회에 나가지 않고 평생 성경을 읽고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였다. 성경 자체를 진리로 떠받들며 예수를 절대시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예수, 석가, 공자, 노자 등 여러 성인을 두루 좋아하였다. 나아가 《노자(老子)》를 한글로 완역하는 등 여러 성인의 말씀을 우리 말과 글로 알리는 일에 힘썼다. 우리 말과 글을 사랑하여, 한자를 쓰는 대신 옛말을 찾아 쓰거나 ‘씨알(민중)’ ‘얼나’ ‘제나’ 같은 말을 만들어 썼다.


단순하고 소박한 금욕의 삶을 살고자 했던 류영모는 50살 무렵부터 하루 한 끼만 먹고, 하루를 일생으로 여기며 살았다. 항상 무릎을 꿇고 앉았으며, 얇은 잣나무판 위에서 생활하고 잠도 그 위에서 잤다. 새벽 3시면 일어나 명상을 한 후 일기를 썼다. 그 일기를 모은 《다석일지》는 그가 쓴 유일한 저술로 남았다. 평생 무명이나 베로 지은 한복에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늘 “농사짓는 사람이야말로 예수다.”라고 말했으며, 45살 때 북한산 밑으로 이사하여 직접 농사지어 먹고 살았다. 나이를 햇수로 세지 않고 날수로 하루하루 세었는데, 33,200일을 살았다.


생전에는 함석헌의 스승으로만 알려졌으나, 지금은 독특한 신관과 인생관을 지닌 철학자로서 다석 류영모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2005년에 다석학회가 만들어진 데 이어 2007년 10월 5일에는 한국의 내로라하는 철학자들과 종교학자, 재야 학자들이 모여 ‘재단법인 씨알’을 만들었다.


풀이 박영호(朴永浩, 1934~) 



공업학교를 다니던 중 6․25 전쟁이 일어나 열일곱 살에 헌병대에 징집되었다. 살벌한 전장에서 그는 죽이는 사람과 죽어 가는 사람, 죽은 사람을 수없이 목격하였다. 밤이 되어 눈을 감아도 해골과 시체들이 눈앞에 떠다녔다. 그렇게 신경쇠약에 걸려 삶과 죽음의 문제를 고민하며 방황하던 중 톨스토이를 알게 되었다. 그는 톨스토이의 《참회록》을 읽고 ‘하느님’을 알게 되었으며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톨스토이 전집을 다 읽고 난 뒤 우연히 〈사상계〉에서 함석헌 선생의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란 글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함석헌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톨스토이 사상에서 감화를 받은 사람임을 알아본 그는 곧바로 함석헌에게 편지를 쓰고 이후 40~50통의 서신을 교환했다. 1956년 천안에 농장을 마련한 함석헌 선생이 농사 짓고 공부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같이 지내자고 청하자 그곳으로 곧장 달려가 스승과 함께 생활하였다. 낮에는 과수원에 똥거름을 주고 밭을 매는 고된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성경, 톨스토이, 사서삼경, 고문진보, 간디 자서전을 같이 읽고 토론한 시간이 3년이었다.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한 시간이었다. 농장에서 보낸 시간은 그에겐 영적으로 새로 나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 그렇게 준비가 되었을 때, 그를 깨달음의 길로 이끌어줄 새로운 스승을 만날 수 있었다.


1959년 함석헌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함석헌의 스승인 다석 류영모의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늘 “농사 짓는 사람이 예수”라고 말하며 스스로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았던 다석 선생처럼 제자 박영호도 농사 짓는 일을 양심적으로 참되게 사는 유일한 길이라 확신했다. 그리하여 그는 경기도 의왕에 6천 평 농장을 개간해 밭을 일구면서 짬짬이 책을 읽고, 매주 금요일이면 서울 YMCA 연경반(硏經班)에서 류영모의 강의를 듣고, 댁으로 찾아가 다시 가르침을 받으며 5년의 세월을 보냈다.

1965년 어느 날 스승이 ‘단사(斷辭)’라는 말을 꺼냈다. 이젠 스승을 떠나 독립해 혼자 살아가라는 말이었다. 눈물을 흘리면서 스승을 떠난 그는 5년간 이를 악물고 혼자서 공부해, 정신이 지향해 나가야 할 방향을 세 가지로 정리한 그의 첫 책 《새 시대의 신앙》을 출간했다. 그 무렵 류영모 선생으로부터 ‘졸업증서-마침보람’이라 쓰인 봉함엽서를 받았다. 다석 류영모의 참제자로 인정한 것이었다. 스승으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했다는 확인이기도 했다. 그 뒤 류영모는 박영호에게 자신의 전기 집필을 맡겼다. 1971년부터 준비한 다석 전기는 1985년에야 책으로 나왔다. 스승이 읽은 책을 모두 독파하고, 스승이 살아온 이야기를 구술받고, 스승이 평생 써온 일지를 필사하면서 10년 자료를 준비한 후 스승이 돌아가신 1981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만 14년 만에 완성한 것이다.


박영호는 지금껏 다석 류영모에 관한 책을 열 권 넘게 써 스승을 세상에 알렸다. 류영모 전기인 《진리의 사람 다석 류영모》 외에도 《다석 류영모 어록》《다석 류영모 명상록》《다석 류영모의 얼의 노래》 《다석 마지막 강의》 등이 있고, 〈문화일보〉에 다석 사상에 관한 글을 325회 연재한 후 이를 묶어 〈다석사상전집〉(전 5권)을 간행하였다. 또 《잃어버린 예수》《메타노에오, 신화를 벗은 예수》《다석 류영모가 본 예수와 기독교》 등을 썼다. 지금 그는 다석 사상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절실한 ‘다석 류영모 낱말 사전’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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