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사람들이 왜 어리석은 행동을 할까?
‘죄수의 딜레마’부터 자기 기만의 심리를 입증한 ‘보거스 파이프라인’ 실험,
스탠퍼드대학의 악명 높은 감옥 실험까지,
100가지 놀라운 심리 실험으로 밝히는 비합리성의 비밀!
“너무나 흥미로운, 보기 드물게 잘 쓴 책!”
- 리처드 도킨스 Richard Dawkins
“무시무시하고 때로 코믹하다.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는다.”
- 올리버 색스 Oliver Sacks
의사들은 환자의 병을 오진하고, 야전사령관들은 멍청한 전투 계획을 고집한다. 관객들은 영화가 지루해 죽겠는데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공무원들은 나태와 이기심을 조장하는 비합리적 시스템에 젖어 공금을 아무렇게나 운용한다. 왜 사람들은 자신과 타인에게 엄청나게 해를 끼치는 잘못된 결정을 되풀이하는 걸까?
비합리적인 믿음과 행동은 아주 보편적이다. 도박꾼이나 광신자만 그런 게 아니라 인재를 선발하는 면접관이나 의사나 엔지니어처럼 고도로 훈련받은 전문가들도 곧잘 통계의 함정에 빠지거나 인과 관계를 착각해 터무니없는 실수를 저지른다. 《비합리성의 심리학》은 비합리적 판단, 선택, 행동이 너무나 널리 퍼져 있음을 갖가지 심리 실험을 통해 섬뜩할 정도로 명쾌하게 보여준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우리의 상식적 믿음이 하나씩 깨져 나간다. 지금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는 편견과 고정관념, 인습이 명료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영국의 대표적인 실험 심리학자이자 저술가인 스튜어트 서덜랜드는 방대한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인간은 왜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지, 비합리성이 개인과 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무엇인지, 또 비합리적 행동을 예방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 모든 이야기들을 시종일관 유쾌하고 익살 섞인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데 이 책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
출간 21주년 기념판으로 선보이는 실험 심리학의 고전적 저작!
합리적 의사 결정을 가로막는 착각과 편견,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길
1992년 원서 초판 출간 후 꾸준히 많은 사랑을 받아온 《비합리성의 심리학》이 그동안의 변화를 반영한 개정판으로 돌아왔다. 이에 한국어판도 2013년 원서 개정판을 저본으로 삼아, 새로운 개정판을 출간하게 되었다. 개정판에는 영국의 신경정신과 전문의이자 과학 저술가인 벤 골드에이커(Ben Goldacre)의 재기 발랄한 추천사와 그 자체로 한 편의 훌륭한 비합리성 보고서인 제임스 볼(James Ball)의 후기가 추가되었다. 그리하여 지난 20여 년간 뇌 과학과 행동경제학 등 관련 분야에서 더 많이 드러난 비합리성의 비밀과 새로운 사례들이 추가되었다. 어째서 판사들이 식사를 한 이후가 식사 전보다 가석방 승인 비율이 높을까? 2001년 9․11 테러 직후 비행기 대신 자동차를 선택한 미국인들의 행동은 과연 얼마나 합리적이었나? 2008년에 세계를 휩쓴 금융 위기에서 볼 수 있듯이, 개인의 합리적 행동이 모여서 집단 차원에서 어마어마하게 비합리적인 결과를 낳는 비극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비합리성의 심리학》은 ‘생각’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우리 자신의 사고방식에 관한 근거 없는 믿음과 가정들을 낱낱이 해체하고 우리가 좀 더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방향을 일러준다.
인간은 정말 합리적인 존재인가?
저자 서덜랜드는 독자들에게 엉뚱한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러분이라면 다음 질문들에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푸른 눈 어머니가 푸른 눈 딸을 낳을 확률이 높을까, 푸른 눈 딸이 푸른 눈 어머니를 두었을 확률이 높을까? 면접은 선별 과정으로서 유용할까? 흡연은 폐암 발병률을 10배 증가시키고 치명적인 심장병에 걸릴 확률을 두 배 증가시킨다. 그렇다면 흡연자는 심장병으로 죽을 확률보다 폐암으로 죽을 확률이 더 높은가? 당신은 평균 이상의 실력을 지닌 운전자인가? 당신은 심리학 실험의 일환으로 어떤 사람에게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는 충격을 주라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뇌졸중 같은 병의 발작으로 죽는 사람이 더 많을까? 자전거를 타는 것과 회전관람차를 타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위험할까? - 들어가는 글·17~18쪽
인간을 ‘이성적 동물’로 정의했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들이 대체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제학은 거의 완전히 합리적인 인간(Homo Economicus)이라는 개념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비합리성이야말로 인간됨의 예외 없는 규준이라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자기 신념의 증거만을 찾으려 하며, 편안하고 행복한 기분을 느끼려고 현실을 바라보는 자신의 생각을 왜곡하거나 자기를 기만하기도 한다. 생각 없이 권위에 복종하거나, 군중 심리에 휩싸여 어리석은 일을 하기도 하고, 집단에 기대 극단적인 결정을 일삼는다.
이 책에서는 우리 인간들이 일상에서 너무도 쉽게 저지르는 오류 ― 가용성 오류, 구경꾼 효과, 닻 내리기 효과, 매몰 비용 오류, 죄수의 딜레마, 후광 효과와 악마 효과, 신 포도 콤플렉스 등 ― 와 그 오류들을 작동시키는 원인을 하나하나 만나볼 수 있다.
나의 목적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훨씬 더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그 이유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데 있다. …… 누구나 때로는 비합리적이다. 우리는 복잡한 결정일수록 비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십상이다.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가장 큰 이유가 정서 때문에 판단이 흐려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그것도 하나의 요인이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아니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내재해 있는 결함은 아주 많고 이 책에서는 주로 그런 결함을 고찰하려 한다. …… 내가 가장 중요하게 관심을 기울여 보려는 것은, 체계적이지만 피할 수도 있는 편견을 품고 생각한 탓에 일어날 수 있는, 명약관화하게 비합리적인 판단과 결정들이다. 우리의 주된 관심은 그러한 편견을 입증하고 논의하는 것이 될 것이다. 편견은 놀라울 만큼 보편적이면서도 대단히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 들어가는 글·21, 29, 30쪽
비합리성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서덜랜드는 비합리성의 근본 원인으로 인류의 진화와 뇌신경 세포의 네트워크 오류를 꼽는다. 생존을 위해 집단에 의지하며 살아온 인류의 집단에 대한 충성심이 지금까지 남아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기술 발전을 못 따라온 진화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원인은 뇌신경 세포들의 네트워크 오류이다. 뇌의 처리 과정은 몹시 빠르고 순식간에 일반화해버리는데 이 네트워크(신경망)의 엉성함이 문제를 만들어낸다. 뇌는 한꺼번에 몇 개 이상의 것들을 생각할 수 없고, 그래서 가장 인상적이고 두드러진 것에 큰 영향을 받는 후광 효과나 가용성 오류가 나타날 수 있다.
서덜랜드가 제시하는 비합리성의 마지막 근본 원인은 너무도 명백한 인간의 ‘자기 중심적 편견’이다. 비합리성의 핵심인 편견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내용이다. 서덜랜드는 사람들이 전혀 자각하지 못한 채 사회적․감정적 편견에 끈질기게 매달리면서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외면하려고 갖은 애를 쓴다는 사실을 수많은 심리 실험을 통해 입증한다.
왜 비합리성을 반드시 피해야 할까?
"합리성은 정말로 필요한가? 혹은 바람직하기는 한가?" 서덜랜드는 합리적인 선택과 행동이 모든 사람의 행복을 보장해줄 수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전문가들이 의사 결정을 하는 데는 반드시 합리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투 계획을 세운 뒤 수많은 사령관들이 명백한 증거를 보고받고도 뜻을 번복하지 않아서 수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불필요하게 앗아 갔다. 어떤 의사들이 확률 이론을 몰랐던 탓에 수많은 여성들은 불필요하고 괴롭기만 한 생체 검사를 받아야 했다. 공무원들은 비합리적인 시스템이 태만을 방기하고 전통과 자기 과시에 매달리게 한다는 이유로 여전히 공금을 아무렇게나 운용하고 있다. 엔지니어들은 그들이 만들어내는 시스템의 위험도를 충분히 치열하게 생각해보지 않아서 수많은 사상자를 낳기 일쑤다.
저자는 의사, 장교, 엔지니어, 판사, 고위 공무원, 사업가 등 전문가들이 저지르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들을 보여주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요한 판단이나 조치는 반드시 합리적인 사고를 근거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본문 미리 보기》
100가지 심리 실험으로 밝혀낸 비합리성의 비밀!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터무니없는 행동과 생각의 오류를 명쾌하게 정리한 비합리성 백과
“아, 인간은 얼마나 이성적인가!” 인간들은 중세 때 신봉했던 신적 영감을 버리며 자신들이 가진 이성에 대한 감탄으로 근대의 문을 활짝 연다. 반복되었던 이 감탄에 대해 서덜랜드는 이렇게 답한다. “불행히도 사람들은 좀 더 이성적으로 행동하려고 할 때 오히려 완전히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행동한다.” 사람들은 오직 자신들이 이미 품고 있는 신념을 뒷받침해줄 증거만을 찾기 때문에 대개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는지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가용성 오류 : 유명 배우가 암에 걸렸다는 뉴스가 정부 캠페인보다 암 예방에 효과적인 이유는?
맨 처음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따라 판단을 내리는 것을 ‘가용성 오류(availability error)’라고 하는데, 인간이 가장 흔하게 저지르는 오류 중 하나이다. 비합리적 판단을 가져오는 다른 수많은 오류들은 사실 가용성 오류가 좀더 진전된 예에 지나지 않는다. 강렬한 감정이 일어나거나 극적인 것,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러한 가용성은 이미 머릿속에 각인된 이미지나 틀이 만드는 것으로 첫인상 효과 오류나 후광 효과, 악마 효과까지도 불러일으킨다.
때로는 가용성 오류가 사람들을 합리적인 행동으로 이끄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캘리포니아에서 지진이 한 번 일어난 다음부터 지진 대비 보험 정책의 수가 갑자기 늘어났지만 그 다음 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 점진적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지진 관련 보험을 드는 것은 과거에 지진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아니라 앞으로 지진이 일어날 확률에 달린 문제이므로 이러한 행동도 사실 합리적이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포드 부인과 록펠러 부인이 유방암에 걸리자 수많은 미국 여성들이 유방암 검사를 받으러 병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네들은 그 전에 정부에서 주기적으로 유방암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경고해도 꿈쩍도 안 하던 바로 그 여성들이었다. - 1장 잘못된 인상·45~46쪽
보상과 처벌의 효과 : 성과급이 오히려 의욕을 꺾는 이유
사람들은 보통 물질적인 보상 시스템이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유인책이라고 판단하여 각종 성과급과 특별수당, 상금 등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몹시 비합리적인 방식이라는 것이 여러 실험들을 통해 알려졌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건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건 이들에게 의욕을 불러일으키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칭찬 한마디’ 해주는 것이었다.
12주 동안 8명의 학생을 2교대 조로 나누어 대학신문사에서 헤드라인을 쓰게 하고 일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한쪽 조에 속한 4명의 학생들은 헤드라인 하나를 쓸 때마다 50센트를 받았고, 다른 쪽 학생들은 보수를 받지 않았다. 몇 주를 관찰한 결과, 보수를 받지 않은 조 학생들이 보수를 받은 조 학생들보다 헤드라인을 훨씬 더 많이 썼다. 더욱이 그들은 처음 4주 동안 했던 일과 비교해서도 더 많은 일을 해냈다. 하지만 보수를 받은 조는 실적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들이 돈을 받음으로써 일의 가치를 낮추어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 모든 포유류, 특히 인간과 가장 가까운 원숭이와 유인원은 세상을 알아나가려는 호기심과 세상을 능숙하게 다루고 싶은 욕구를 타고난다. 어떤 것을 제대로 알고 무엇인가를 발견할 때 느끼는 만족감은 그 자체로 강력한 보상이다. 안타깝게도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이 점을 보지 못했다. - 7장 보상과 처벌·150, 154쪽
증거 왜곡 : 왜 몽고메리 장군은 잘못된 신념을 고집했을까?
인간이 비합리적 행동을 보이는 데는 물론 통계학적 지식에 무지한 까닭도 있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신념에 맞는 증거들만 취하려는 경향이 크게 작용한다. 이제 만나 볼 사례는 증거를 왜곡하거나 고의적으로 무시해버리는 경우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벌어진 아른험 전투에서 패전했던 몽고메리 장군과,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에게 진주만 공습을 받아 역시 크게 패한 미 태평양 함대 총사령관이었던 키멀 제독이 그에 해당한다. 아래는 전쟁 중에 입수한 매우 중대한 증거를 무시해버리고 말았던 몽고메리 장군의 이야기다.
아른험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 군대가 가장 쓸데없이 희생당했던 재앙 가운데 하나다. …… 군대가 네덜란드 남부의 습지 앞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군은 아른험 근처에 낙하산을 투하할 계획을 세웠다. …… 몽고메리는 아무리 잘 봐줘도 위험천만하고 나쁘게 보자면 아둔하기 짝이 없는 계획을 결정한 상태에서 계획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추가 정보들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는 연합군 최고사령부에서 지금까지 위치가 불확실했던 2개 독일 기갑사단이 낙하산 투하 지점 바로 옆에 주둔해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런데 몽고메리는 이것을 “웃기는” 보고라고 했다. 물론 그 정보가 자기 계획과 맞지 않는다는 뜻에서 그렇게 말했겠지만 어쨌든 몽고메리는 정보를 믿지 않았던 셈이다. …… 영국 공수부대는 낙하산으로 투하한 요원의 4분의 3을 잃고 나서야 전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 10장 증거 왜곡·199~201쪽
상관 관계 착각 : 잉크 얼룩으로 동성애자를 판별할 수 있다?
이번에 살펴볼 사례는 많은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들이 사용하고 있는 ‘투사 검사(projective test)’에 대한 이야기다. 가장 잘 알려진 투사 검사로는 ‘로르샤흐(Rorschach) 검사’가 있는데, 피검사자들이 일련의 복잡한 잉크 반점을 보면서 그것이 무엇처럼 보이는지 대답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그 사람이 동성애자인지, 편집증 환자인지, 자살할 가능성이 있는지 따위를 밝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잉크 반점을 괴물로 볼 수도 있고 박쥐를 닮은 여자로 볼 수도 있다. 혹은 그들은 반점의 일부만 보고 대답할 수도 있다. …… 직장이나 엉덩이, 여성의 의복, 성기를 언급하는 답변이나 성별이 모호한 사람 같다는 답변(“남자 같은데 여자 같기도 하네요.”) 혹은 성별이 혼재되어 있다는 답변(“하반신은 남자 같지만 그 위쪽은 여자 같아요.”)은 모두 다 동성애를 의심할 만한 것으로 여긴다. 특정 유형의 답변(예:항문을 언급하는 답변)은 어떤 것이든 일종의 ‘지표’로 여긴다. 주도면밀한 연구 결과 사실상 위의 다섯 개 지표는 동성애자의 답변이나 이성애자의 답변에서 동일한 빈도로 나타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니까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아무 차이도 없는 것이다. - 11장 잘못 관계 짓기·222~223쪽
우리는 간단한 사안을 판단하는 데도 수많은 정보들을 고려한다. 하지만 그 정보들 간의 연관성을 명확히 밝히는 작업을 소홀히 한다면 왜곡된 해석과 판단을 낳게 마련이다.
잘못된 확률 계산 : 확률과 통계를 모르는 의사들이 저지르는 끔찍한 실수
서덜랜드는 이 책에서 병원과 의사들이 저지르는 실수들을 적잖이 꼬집고 있다. 대부분의 의학적 진단은 분명히 확률에 의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존에 만들어진 여러 지표들을 참조하여 판단의 근거를 찾게 마련이다. 일단 유방암이 의심되면 유방 조직 생체 검사를 해봐야 하는데, 이 검사는 마취를 해야 하며 더군다나 마취를 당한 환자는 1만 명에 2명꼴로 치명적인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의사들이 합리적이라면 유방 조직 생체 검사를 실시할지 여부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까?
한 결과에 따르면, 어떤 여성이 유방암에 걸렸을 때 검사 결과가 양성(암이 있음)으로 나올 가능성은 0.92다. 달리 말해 유방암이 있는 여성 100명 중 92명은 유방암 뢴트겐 조영 검사에서 양성이 나온다. 같은 연구자들은 유방암에 걸리지 않은 여성들이 검사에서 음성이 나올 확률은 0.88이라고 밝혔다. …… 불행히도 많은 의사들이 두 가지 부류의 확률을 혼동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의사들의 95퍼센트는 유방암에 걸린 여성은 검사 결과 양성이 나올 확률이 0.92이므로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유방암이 있을 가능성도 0.92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사실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는데 실제로 유방암이 있을 확률은 0.01 수준으로 아주 낮다(10명 중 1명이 아니라 100명 중 1명이라는 말이다). 조사에 응한 의사들의 95퍼센트는 역조건부 확률이 원래의 조건부 확률과 같다고 생각하는 초보적인 실수를 범했다. - 12장 의학적 오류·236~237쪽
위험도 예측 : 프리 엔터프라이즈 호는 왜 승객들과 함께 침몰할 수밖에 없었나?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오류는 부분적으로는 과신에서, 부분적으로는 모든 가능성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해서 벌어진다. 예를 들어, 안전벨트를 의무적으로 착용하면 교통사고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조사해본 결과 자동차 운전자와 승객의 사망률은 낮아졌지만 보행자나 자전거 운전자는 더 위험해졌음이 밝혀졌다. 안전벨트가 안전을 보장하는 만큼 조심성 없이 운전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 1987년에 일어난 끔찍한 여객선 사고를 들 수 있다. 1987년 3월 벨기에의 제브뤼헤 항구를 떠나 영국으로 향하던 ‘헤럴드 오브 프리 엔터프라이즈 호’가 항구를 떠나자마자 전복되어 190여 명이 목숨을 잃은 사고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배가 난파한 직접적 원인은 선수문(船首門, bow door)을 열어놓은 채 항해하는 바람에 차량 갑판(car deck)에 물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 뱃머리 문을 열어둔 채 부두를 떠나는 위험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고 실제로 선장은 그러한 위험을 예상하기도 했다. 바헤나르는 폭넓은 사례에 비추어 대부분의 대형 사고들은 경영진의 실책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사람들은 경영진이 만들어놓은 규칙을 그저 따르기만 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헤럴드 호의 사고는 바로 그런 경우였다. 경영진은 욕심을 부리거나 태만한 경향이 있다. 이 사고에서는 경고 시스템도 없었고 일정표는 지나치게 빡빡했으며 배에는 일손이 모자랐다. ……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이러한 오류는 부분적으로는 과신에서, 부분적으로는 모든 가능성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해서 벌어진다. 엔지니어링 시스템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시스템 요소들 간에 있을 수 있는 모든 상호 작용을 고려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 17장 위험도·335, 336쪽
지은이·옮긴이
스튜어트 서덜랜드(Stuart Sutherland. 1928~1998)
영국 실험 심리학의 대표적 학자이며, 뛰어난 칼럼니스트이자 저술가. 옥스퍼드 모들린 칼리지에서 심리학과 철학, 생리학을 공부하였으며, 동물 행동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4년 서섹스대학에 ‘실험 심리학 연구소’를 직접 설립해 교수로 취임했으며 1992년 은퇴했다. 서덜랜드가 추구한 심리학의 핵심은 인지 심리학의 한계를 실험 심리학으로 극복하는 데 있었다. 그는 인간의 마음뿐 아니라 행동을 연구해야 인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음을 강조했고 그의 이론은 영국에서 실험 심리학이 확고하게 정립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하였다.
1970년대 초반 서덜랜드는 심한 조울증을 앓았는데, 1976년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경쾌하고 솔직하게 드러낸 《브레이크다운(Breakdown)》을 발표하여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또한 뛰어난 필력과 폭넓은 지식으로 〈네이처〉〈뉴욕타임스〉〈옵저버〉〈데일리 텔레그래프〉 등에 영향력 있는 칼럼과 평론을 썼다.
1992년에 처음 출간된 《비합리성의 심리학》은 비합리적 행동을 일으키는 우리의 편향적 사고와 선입견, 고정관념들을 유쾌하고 신랄하게 파헤쳐 그에게 확고한 명성을 안겨주었으며, 지금까지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이세진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랭스대학에서 공부했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음악의 기쁨》《설국열차》《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내 안의 어린아이》《나르시시즘의 심리학》《고대 철학이란 무엇인가?》《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 등이 있다.
차 례
■ 추천사
■ 머리말
■ 들어가는 글
1장 잘못된 인상
죄수의 딜레마 : 풀기 힘든 비합리성 게임 / 5.95파운드 대 6파운드, 작은 차이의 효과 /
롤러코스터보다 자전거가 40배 더 위험하다 / 첫 문장이 성적을 결정한다 / 후광 효과와 악마 효과
2장 복종
너무도 완강한 복종의 습관 / 재앙을 부르는 무조건 복종 / 왜 사람들은 복종하는가
3장 순응
“모두가 그렇다면 그렇겠지.” / 정치인들이 신념을 바꾸지 않으려 하는 이유
따라하려는 욕망과 앞서 나가려는 욕망 / 두려움은 쉽게 전염된다 / 구경꾼 효과 : 다른 누군가가 도와주겠지
4장 집단의 안과 밖
집단은 개인보다 극단적이다 / 조직의 우두머리는 위험하다 / 제복을 고집하는 이유
친선 경기는 적대감만 키운다 / 우리는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것을 기억한다
5장 조직의 어리석음
많은 조직이 이기주의를 조장한다 / 공공 부문 낭비는 왜 일어날까 /
경영자의 탐욕이 기업을 망친다 / 투자 분석가도 군중 심리에 휩쓸린다
6장 잘못된 일관성
신 포도 콤플렉스 : 못 가질 거면 낮추어 본다 /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
재미없는 영화를 끝까지 보는 이유 / 자기를 속이는 사람들의 심리
7장 보상과 처벌
돈과 사탕은 학습 의욕을 꺾는다 / 행동주의 심리학의 맹점
금지할수록 더욱더 원한다 / 선택의 자유가 자발성을 키운다
8장 욕구와 정서
지갑을 잃어버린 사람은 같은 장소를 맴돈다 / 야전사령관들이 엉뚱한 명령을 내리는 이유
암 환자의 3분의 1은 병원을 회피한다 / 지루함 때문에 일어나는 대형 사고들
9장 증거 무시
“일본군은 진주만을 공격 못합니다.” / 왜 잘못된 가설을 버리지 못하나
반증 가능성의 대표 주자 ‘검은 백조’ / 끼리끼리 어울리면 오류도 커진다
10장 증거 왜곡
중대한 정보를 무시한 몽고메리 장군 / 왜 신념은 시련 속에 더 강해질까
신념은 기억력까지 좌우한다 / 사람들은 언제든 그럴싸한 이유를 찾아낸다
11장 잘못 관계 짓기
상관 관계 착각 : 의사와 기자가 범하는 실수 / “흠, 역시 당신은 동성애자였어.”
필적을 보면 인격을 알 수 있다고? / 소수자가 차별받는 진짜 이유
12장 의학적 오류
확률의 함정에 빠진 의사들 / 의학 저널이 저지르는 실수
왜 의사들은 환자에게 설명을 안 하나
13장 인과 관계의 오작동
정신 분석학은 원시적 사고방식? / 결과를 원인과 혼동하는 사례들
“나의 행동은 상황 탓, 너의 행동은 성격 탓” / 내 마음을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
14장 엉뚱한 해석
변호사들이 잘 써먹는 속임수 / 거짓말 탐지기는 거짓말쟁이다
“줄담배 우리 아버지, 100살까지 사셨지.”
15장 일관성 없는 결정
왜 내가 하는 내기는 다 이길 것처럼 보일까? / 본전만 찾겠다는 노름꾼의 심리
자동차 할인 금액을 따로 붙여놓는 까닭 / 암시의 위력 : 재판도 암시의 영향을 받는다
닻 내리기 효과 : 왜 선입견에 사로잡히나
16장 자기 과신
후견지명 : “처음부터 내 그럴 줄 알았어.” / “나는 절대 손해 보지 않아.”
통제감 착각 : 딜러가 게임을 좌우한다
17장 위험도
안전벨트를 착용하면 사고가 더 난다 / 석탄보다 안전한 원자력을 왜 꺼릴까
모르면 뭐든 위험해 보인다
18장 잘못된 추론
‘그만하면 괜찮은’ 선택의 오류 / 홈런 타자는 다음 시즌에 불행해진다
극단적인 수치보다 평균값을 믿어라 / 도박사의 오류 : 룰렛 공은 기억력이 없다
19장 직관의 실패
결정하기 전에 더 많은 대안을 고려하라 / 결혼 생활을 분석하는 통계적 방법
왜 직관이 통계보다 부정확한가 / 사람들이 통계적 방법을 꺼리는 까닭
면접으로 훌륭한 인재를 뽑을 수 있나
20장 효용
기대 효용이 가장 큰 쪽을 택하라 / 대립을 합의로 이끄는 효용 이론
원하는 것을 얻으면 행복할까? / 비용 편익 분석 : 생명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가
21장 초자연적 믿음
초자연적인 것에 빠져드는 심리 / 우연의 일치는 생각만큼 드물지 않다
텔레파시와 점성술에 매료된 사람들
22장 비합리성의 근본 원인
비합리성은 진화의 유산이다 / 뇌 신경 세포들의 네트워크 오류
“인간은 경솔한 신념의 동물이다.” / 자유로워지려면 훈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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