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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사회과학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by 교양인 2023. 11. 29.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_ 정희진

 



여성 언어의 분화와 남성 권력의 반격이 뒤엉킨 시대에
한국 페미니즘의 길을 찾는 새로운 도전!

“지금은 여성주의 담론을 혁신할 때다”

 

다시 페미니즘 최전선에 선 정희진의
도발적이고 발본적인 성정치학 논전!

 

독창적인 여성학자, 다학제적 연구자, 도발적인 서평가 정희진이 한국 사회 일상을 뒤덮은 성정치학의 문제들을 새롭게 재구성해 페미니즘이 나아가야 할 길을 묻는다. 2005년 ‘페미니즘 교과서’ 《페미니즘의 도전》을 통해 남성 언어로 길들여진 한국 사회에 균열을 내며 여성주의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어낸 저자가 18년 만에 다시 여성주의 담론의 전복적인 사유를 펼친다.

2015년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여성에게 페미니즘은 삶의 기본값이 되었지만, 남성 문화는 한국 사회의 낡은 권력 담론을 내려놓지 못한 채, ‘혐오’에 가까운 반격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여성 운동 안에서도 ‘여성’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트랜스젠더, 난민, 장애인을 비롯한 다른 소수자들을 배척하는 이들이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등장했다. 불화와 간극이 깊어지는 시대, 페미니즘의 언어는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현실을 바꿔야 할까?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은 자본의 질주 속에 각자도생하는 인류세 시대의 한국 사회에서 더욱 복잡해진 젠더 권력과 여성주의 담론을 분석한다. 성차별, 페미사이드, 세계 최저 출생률, 여성 할당제를 비롯한 첨예한 ‘젠더 갈등’ 이슈들부터, ‘피해자 중심주의’ ‘성적 자기 결정권’ ‘여성성의 자원화’ 같은 여성주의 담론에 이르기까지, 당대 성정치학의 논쟁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재해석한다. 옳고 그름의 이분법을 허물고, 경계를 사유하며, 기성 담론의 전복적인 재해석을 시도하는 페미니즘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다.

 

《페미니즘의 도전》이 사회 정의로서 여성주의를 ‘소개’했다면, 이 책은 변화된 여성주의, 정체성의 정치 위주의 담론을 분석한다. 특히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변화해 온 한국 사회의 성 문화(섹슈얼리티)를 살펴보고 더불어 기존의 논쟁 구도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 
이 책이 쉽게 읽히지 않는, 논쟁의 불씨가 되는 텍스트이기를 바란다. 여성학, 여성 운동은 모든 담론과 마찬가지로 언어의 경합을 통한 생산적인 갈등 없이는 진전도 없다. 한국의 여성주의가 나아감 없이 여성의 생존의 목소리가 왜곡되어 미소지니의 타깃이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나는 여성의 공부, 다른 언어, 남성 사회가 못 알아듣는 언어가 최고의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남성 사회의 질문에 답하지 말고, 그들이 못 알아듣는 새로운 언어로 말하자. 
_ ‘머리말’에서

 

 

“우리는 모두 불편함에서 배운다”
전진하는 페미니즘을 위한 비판적 제언

 

현재 한국 사회에서 ‘젠더 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강남역 사건과 신당역 사건, 미투 운동, ‘여성가족부 존폐’ 논란, 징병제 등 성차별과 성범죄, 성 문화에 관한 남녀의 인식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으며,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갈등과 혼란의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모두가 불만스러워하고 고통을 호소하지만, “내 편 아니면 적”으로 극단화되고 양단화된 현실에서 젠더와 섹슈얼리티 문제는 논의하기를 꺼리거나 아니면 정쟁의 도구로 이용될 뿐이다.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침묵하고 공전하고 있는 한국 사회 성정치학적 논제에 불씨를 지핀다. 이 책에서 정희진은 당대의 논쟁적인 젠더 이슈를 중심으로 하여 한국 남성 문화의 억압적이고 뿌리 깊은 젠더 권력을 하나하나 들추어낸다. 동시에 정희진의 시선은 여성주의, 여성 운동 내부로 향해 여성, 성 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페미니즘 담론의 정체와 후퇴에 과감하게 문제 제기한다. 이 책은 성차별이 ‘젠더 갈등’이나 ‘성 대결’로 둔갑하는 사회, 여성성과 남성성 모두 개인의 생존을 위한 자원으로 동원되는 사회, ‘페미니즘’이 ‘남성 혐오’ 이념 혹은 여성의 정체성의 정치로 오인되는 사회에서, 새로운 담론의 장을 형성하는 가장 혁신적인 출발점이 될 것이다.

 

 

“여성주의자 사이의 이견이 활발하게 논쟁으로 발전할수록
남성 개인도 사회도 성숙해진다”

 

정희진은 당대의 젠더 문제를 여성주의 담론의 위기로 바라본다. 여성들 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페미니즘을 ‘정체성의 정치’로 환원하는 태도나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공부하지 않아도 여성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일부 여성의 인식을 강력하게 비판한다. 

더불어 ‘피해자 중심주의’와 ‘성적 자기 결정권’을 비롯해 지금까지 여성 운동을 이끈 핵심 이념들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 중심주의’가 여성 피해자에게 유리한 전략인지, 피해자로서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을 고착화하는 건 아닌지 질문한다. ‘성적 자기 결정권’ 개념은 더 논쟁적이다. 특히 여성성은 기존에는 차별과 억압의 ‘원인’이었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에 일부 여성에게는 자원으로 작동하고 있다. 정희진은 이를 해석해내고 비판하는 적극적인 여성의 언어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이 책에서 여성과 여성주의를 향한 정희진의 ‘내부’ 비판은 가혹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역설적이게도 “여성주의자 사이의 이견이 활발하게 논쟁으로 발전할수록 남성 개인도 사회도 성숙해진다”는 그의 강한 믿음에 근거한 것이다. 정희진은 여성주의 담론의 혁신을 통한 현실의 변화 가능성을 꿈꾼다.

남녀의 섹슈얼리티 인식의 불균형 격차는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심각한 사회 문제이다. 여성들은 섹슈얼리티 억압에 맞서 남성을 설득하는 데 지쳤다. 이 과정에서 “페미냐”라는 심판을 당하고 고초를 겪는 심문(審問)과 신문(訊問)에 시달린다. ‘페미’는 새로운 레드 콤플렉스가 되었고, 이는 선거에서도 작동하고 있다. 
_ ‘머리말’에서

 

 

“여성학, 여성 운동은 모든 담론과 마찬가지로
 생산적인 갈등 없이는 진전도 없다”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젠더 권력과 섹슈얼리티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 가장 논쟁적인 이슈를 들여다본다. 2016년 강남역 사건과 2022년 신당역 사건의 가시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를 비판하는 것이 미소지니(여성혐오)인지, 2018년에 한국 사회를 뒤흔든 미투 운동의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특히 저출산/저출생을 ‘사회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공적 영역(직장)과 사적 영역(집)에서 ‘이중 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여성의 의식화된 대응으로 평가한다.

2장은 ‘일상’의 섹슈얼리티 전반 이슈를 다루면서, 특히 한국 남성의 젠더 고정관념을 문제 삼는다. 남성을 위한 섹스 대용품인 ‘리얼 돌(real doll)’이 성적 고정관념을 어떻게 반복하는지, 성폭력 범죄를 구조적 문제나 가해자의 행위보다 피해자의 ‘동의’ 여부에 집착하는 것이 왜 문제적인지, 군사주의 문화에서 남성성을 강조하기 위해 여성을 비하하고 혐오하는 것이 왜 남성의 인권 문제에서 중요한지 설명한다. 

3장은 기존의 이성애, 시스젠더(cisgender)를 규범으로 하는 성별 정체성 담론을 해체하는 시도이다. 무성애와 유성애의 연속선상에서 다양한 성애의 모습을 설명하고, ‘인터섹스’의 인권과 스포츠 선수의 성별 논란을 다룬다. 이를 통해 누가 남성이고 여성인지, 그 차이를 누가 나누는지 문제 제기하며, 차이가 차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차이를 규정한다는 영원한 진리를 되새긴다. 

4장은 성매매와 성폭력을 중심으로 삼아 ‘성적 자기 결정권’ 개념의 의미를 분석한다. 성별에 따라 성적 자기 결정권이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지 여성의 몸을 공간화해 온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하고, 동시에 왜 여성의 경험을 설명할 수 없는지, 왜 소모적인 논쟁을 불러오는지 살핀다. 

부록으로 실은 〈죽어야 사는 여성들의 인권〉은 저자가 25년 전 대학원생 시절에 쓴 한국 기지촌 여성 운동사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페미니스트’로서 최초의 정체성과 위치성이 시작되었다고 말하며, 그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여성에게 유리한가?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자 중심주의’ 논리는 더 힘을 얻는 듯하다. 어떤 여성은 이 말이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일종의 인식론적 ‘가산점’(젠더 관련 사건에서 피해 여성의 입장이 더 객관적이라는 믿음)이며, 여성의 입장을 더 고려해‘주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반면 남성 사회는 여성‘주의’도 이상한데 ‘여성=피해자’에 ‘피해자 중심주의’라니 말도 안 된다고 반발한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옹호하는 여성과 반대하는 남성의 공통점은 논의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데 있다. _ 24쪽

여성의 말을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주장은, 역설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얼마나 낮은가를 보여준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여성에게 불리할 뿐 아니라 실현 불가능한 개념이다. 피해 여성의 말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의 발화는 상대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 중심주의에는 규범적인 피해자의 이미지가 전제되어 있다. _ 25쪽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

여성의 비혼은 남녀 간 불평등으로 인한 여성의 각성, 즉 남녀 간 의식의 불균형이 가장 큰 원인이다. 공사 영역에 걸쳐 여성의 노동량과 사회 경험은 이전 시대에 비해 엄청나면서도 목적 의식적 변화를 보이는데, 남성의 여성관, 사회관, 자아 인식은 여성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일어나는데도, 남녀 간 의식의 불균형 때문에 “남자가 피해자”라는 착각과 피해 의식이 가능한 것이다. _ 32쪽

문제는 사회적 자원과 경제력이 없을수록 열등감 때문에 시간 많은 남성이 더 가사 노동을 안 한다는 것이다. 남성의 이런 상태는 여성이 결혼을 기피하는 가장 결정적 이유이자 성차별 현실을 요약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사 노동을 얼마나 천시하는지(‘솥뚜껑 운전’, ‘집에 가서 애나 봐라’… …), 그리고 가사 노동 전담 여성을 얼마나 비하하는지 모르는 여성은 없다. 남성 문화는 가사 노동을 루저의 상징으로 삼는다. 여성들은 이 구조를 간파했다. _ 35쪽

 

 

‘김건희 비판’은 미소지니인가?

 

미소지니는 대통령조차 ‘여성’으로 ‘격하’시킬 수 있는 남성 문화를 말한다. 미소지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정(失政)을 벗은 몸으로 공격한 경우이다. 당시 나는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그의 공적 영역의 지위가 성 역할로서 여성으로 환원되는 문화 현상에 반대했다. 반면 김건희 여사는 경제력을 기반으로 해서 가부장제가 원하는 규범적 여성성을 적극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자원을 확보해 왔다. _ 49쪽

페미니즘은 “모든 여성은 착하고, 여성을 비난해서는 안 되고, 아무리 여성이 범죄를 저질러도 남성의 범죄보다 약하므로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여성주의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모두 자원이 되지 않는 사회를 추구하고 지향하는 사상이다. _ 50쪽

 

 

도대체 언제까지 ‘성차별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가

남성 문화는 남성이 ‘차별당하는 이유’로 징병제, 여성 할당제, “여성의 지위가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점을 든다. 그러나 이 모두 사실이라 해도 나이 든 남성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즉 젠더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모든 남성이 복무 여부, 보직, 근무 방식 등에서 징병제를 동일하게 경험하지 않으며, 특히 징병제는 여성이 만든 것이 아니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봤자 소용이 없다. 남성 사이의 계급 투쟁을 젠더 갈등으로 포장하고 스스로 현실 인식을 거부한다면 해결책은 없다. “군 가산제 부활”, “여성도 군대 가라”는 외침은 일단 남성들끼리 합의를 본 후 발언해야 한다. _ 54쪽

여성의 ‘사회’ 진출이 사실상 공사 영역에 걸친 이중 노동이라는 현실 때문에 여성들은 과로와 경력 단절을 피해 비혼을 선택하고, 이는 저출산과 동물과의 반려 인생으로 이어졌다. 도대체 언제까지 ‘성차별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가. _ 55쪽

 


한국 남성의 ‘문제적’ 젠더 인식

 

꽃은 스스로 이동하지 못하고 사람(남성) 눈을 즐겁게 하는 데 존재 의의가 있으며, 꺾였을 때 쉽게 시든다. 여성과 남성이 모두 사람이거나 꽃일 때는 성희롱이 아니다. 하지만 남성은 사람인데 여성은 꽃이라면 인권 침해가 된다. 꽃의 운명은 사람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_ 121쪽 

성매매는 성 문화뿐만 아니라 남성 중심적 사고 체계의 핵심이다. 성폭력, 성희롱, 남성의 성 콤플렉스, 여성 비하는 모두 성매매를 정점으로 한 변종 문화이다. 모든 남성은 잠재적, 간접적, 실질적 성 구매자다. 그 자장 안에서 자유로운 남성은 없다. 직접 성 구매를 하지 않거나 혹은 성적으로 ‘점잖기만’ 해도 남성은 여성의 호감을 산다. ‘나쁜 남자’가 너무 많으면, 그들 덕에 조금만 그렇지 않은 남자는 아무 노력 없이 저절로 ‘좋은 남자’가 된다. 남성 연대 정치의 기본이다. _ 126쪽

 

 

난민에 반대하고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페미니즘?

 

난민은 ‘우리’의 거울이다. 수용이나 혐오 등 차이에 대한 태도는 민주주의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자국민 우선? 아니, 누가 자국민인가? 도처의 양극화를 보라. 어느 사회 내부도 균질적이지 않다. 여성주의는 정체성의 정치가 아니다. 사회 정의를 위한 수많은 주장 중에 가장 창의적인 사고일 뿐이다. _ 89쪽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이 아니다? 그들이 여성의 권리를 빼앗아 간다? 여성 우선 페미니즘? 누구도 타인의 성별을 규정할 수 없다. 이제까지 여성 운동은 민족/민중/시민 개념을 독점하면서 인권의 위계에 따른 순서(“여성 문제는 나중에”)를 주장해 온 남성 중심의 사회 운동에 저항해 왔다. 여성주의가 진짜 여성과 가짜 여성을 구별하고 배제에 앞장선다면, 그런 여성주의가 왜 필요할까. _ 188쪽

 


‘성적 자기 결정권’의 논쟁적 이슈

 

여성이 자신의 성을 자원으로 삼기 위한 ‘자기 결정’을 하는 경우에는 매우 논쟁적인 이슈가 된다. 다시 말해 성적 자기 결정권은 성폭력처럼 성적 자기 결정을 침해하는 사안에 대해서도 주장할 수 있지만 성매매, 다이어트, 외모 관리, 여아 낙태처럼 여성이 자신의 의지로 (대개 남성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몸을 자원, 투자, ‘처벌’, ‘학대’의 대상으로 삼을 권리로도 주장할 수 있게 된다. _ 17쪽 

여성의 몸이 남성에 의해서든(순결 이데올로기) 여성 자신에 의해서든(성적 자기 결정권) 주체의 대상으로서 공간이 되면, 몸은 언제나 이성의 지배를 받는 수동적인 것이 된다. 이러한 논리에서 여전히 몸은 이성, 의식 중심주의에 종속되고 몸들인 여성 개인들의 저항은 의미화되기 어렵다. 성적 자기 결정권을 넘어, 몸을 식민화하지 않는 성폭력에 대한 새로운 저항 개념 모색이 필요하다. _ 269쪽

 

 

‘불공정한 교환’으로서 성매매

 

성매매에서 중요한 것은 매매라는 행위 자체가 아니다. 누구든 자기 몸을 포함해서 무엇이든 매매할 수 있다. 문제는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성별 분리가 이토록 절대적인 산업이 과연 있느냐는 것이다. 어떤 변화가 와도 매매(賣買)의 성별은 불가역적이다. 성별이 바뀌지 않는다. 이것이 문제다. _ 227쪽 

성매매는 상품화 문제가 ‘아니다’. 모든 인간이 상품인 시대다. 많은 이들이 노동 시장에서 자신을 좀 더 좋은 상품, 매력적인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자기 계발에 밤낮으로 노력한다. 왜 여성주의 진영은 ‘섹스’만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함으로써 아무도 설득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 논쟁이 의외로 어렵기 때문에 여성주의는 성매매가 인권 침해이고 폭력임을 강조하기 위해 ‘심각한 피해’만을 강조해 왔다. 그리고 이에 반발한 다른 여성주의자들은 성 산업 종사 여성들이 ‘일방적인 희생자’가 아니라고 비판한다. _ 228쪽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 서평가. 월간 오디오 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다학제적 관점에서 공부와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 서강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사회학을 공부했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여성학으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전 5권), 《페미니즘의 도전》, 《아주 친밀한 폭력》, 《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처럼 읽기》, 《낯선 시선》 등을 썼으며,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미투의 정치학》 등의 편저자이다.

“누구나 그렇듯 자기소개는 어려운 일이다. 나는 안목 있는 독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 군 ‘위안부’ 문제를 계속 공부하는 연구자, 남성성과 여성성이 모두 자원으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를 희망하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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