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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사회과학

정신병의 신화

by 교양인 2024. 11. 1.

정신병의 신화 _ 토머스 사스

The Myth of Mental Illness _ Thomas S. Szasz

“대단히 중요하며 진정한 혁명을 알리는 책”
— 칼 포퍼

 


 

“정신병은 은유다”
정신의학의 성채를 폭파한 문제적 고전!

2022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의하면 정신병 환자는 2017년 340만 명에서 2022년 465만 명으로 약 37퍼센트 늘어났으며, 우울증 치료를 받는 사람은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 우울증, 조울증, ADHD, 공황장애, 사이코패스, 게임 중독…… 이제 정신병은 우리 일상을 설명하는 주요한 언어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겪는 갈등과 감정을 포착하는 데 정신의학의 지식과 치료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일상을 침범하는 과잉 의료화와 정신병 환자를 양산하는 정신의학 분류 방식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정신병의 범주는 왜 계속 늘어만 가는가? 정신병 진단을 받은 환자는 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가? 진짜 정신병과 가짜 정신병의 경계는 어떻게 나뉘는가?

반정신의학의 선구자이자 정신의학의 전복자 토머스 사스는 《정신병의 신화》에서 “정신병은 은유”라고 선언하며 자기 분야에 가장 날카로운 비판의 칼을 들이댔다. 사스는 현대 정신의학이 정신병 개념을 이용해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근본적으로 억압하고 훼손하는 방식을 꿰뚫어봄으로써 정신의학의 토대를 뒤흔들었다. 이 책은 격리, 방치, 잔인한 실험(전기 충격 요법, 전두엽 절제술, 신경 약물 과다 투여 등)으로 점철된 20세기 정신의학의 비인간적 관행을 되돌아보게 하고, 결코 침범할 수 없는 개인의 자율성과 단지 병으로만 치환할 수 없는 인간의 고통에 주목하게 한다.

“정신병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신병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발명되는 것이다!”

토머스 사스의 주된 관심은 ‘신경증’ ’정신분열증’ ‘히스테리’ 같은 정신병의 언어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강제 입원과 강제 치료의 대상으로 격하하고, 범죄자들을 심신 미약으로 정당화해 잘못된 행위를 면제해주는 수단으로 오용된다는 것이었다. 사스는 이러한 의료화의 구조를 ‘치료 국가’라는 개념으로 포착해 비판하고, 일평생 정신의학의 지나친 권력 행사를 법적으로 제한하기 위한 활동을 펼쳤다.
사스의 핵심 사상을 담은 대표작 《정신병의 신화》는 주류 정신의학계에서 ‘불온서적’으로 배척당하기도 했지만, 정신의학의 본질과 그 실천의 사회적·도덕적 의미를 되물은 이 책의 기조는 어빙 고프먼, 미셸 푸코의 사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고, 반정신의학(antipsychiatry), 매드 프라이드(Mad Pride), 폐지주의(abolitionism)의 토대가 되었다.

생물학적 환원주의와 정신분석을 거부하는
정신의학 패러다임의 혁명적 전환!

20세기는 정신의학의 격변기였다. 생물학과 해부학이 발전하면서 정신병을 뇌 ‘기능’의 이상으로 보는 생물학적 정신의학이 주류를 이루었고 정신과 의사들은 전기 충격 요법(ECT)과 전두엽 절제술(lobotomy)을 비롯한 위험한 외과적 처치를 거침없이 시행했다. 한편 독일에서 탄생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미국에서 대유행하며 정신과 의사의 역할을 ‘신경증’ ‘히스테리’ 같은 심리적 원인에서 비롯된 정신 현상을 발견하고 치료하는 일로 바꾸어 놓았다. 토머스 사스의 《정신병의 신화》는 정신병의 원인을 두고 심리(무의식)를 강조하는 쪽과 신체(뇌)를 강조하는 쪽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치료법이 격돌하던 시기에 탄생했다.
이 책에서 사스는 정신병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며 전통적인 병리학적 질병 정의에 의하면 정신병은 성립할 수 없다고 결론짓고, 현대의 정신의학을 연금술, 점성술 같은 유사 과학(pseudo-science)으로 비판한다. 생물학적 정신의학은 인간의 고통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문화적 요소에 대한 이해를 결여한 채 생물학적 환원주의에 빠져 있고, 정신분석은 무의식이라는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비과학적 관념에 기대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스는 언어학, 사회학, 철학의 언어를 빌려 정신의학이 정신병이라는 허상에 매달리는 기존의 의료 모형에서 벗어나 사회문화적 모형을 따르는 복합적인 인간 행위 이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신의학의 패러다임 자체에 도전한다.

정신의학의 궤도를 뒤흔든 문제작,
반정신의학의 바이블!

1961년 《정신병의 신화》가 미국에서 출간되자 학계와 시민 사회에서 큰 논란이 일었다. 주류 정신의학계와 보건 당국은 정신의학을 부정하는 사스의 입장에 거세게 반발했고, 사스를 교수직에서 해임하라는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정신병의 실체에 관한 논쟁에 불을 붙였으며, 비판적 사회 담론과 운동에 지적인 영감을 주었다. 특히 정신의학의 실천과 권력을 분석한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과 철학자 미셸 푸코의 작업에서 사스의 문제 의식을 확인할 수 있으며, 1972년 정신병원이 가짜 환자를 구분할 수 있는지 확인한 데이비드 로젠한의 실험과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질병이 이미지화되는 방식을 탐구한 수전 손택의 대표작 《은유로서의 질병》(1978년)에서도 동일한 관점을 발견할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본격화된 반정신의학 운동에서 《정신병의 신화》는 교본이었다. 비록 사스 자신은 반정신의학자로 불리기를 거부했지만, 개인의 삶을 옥죄는 정신의학의 억압적 개입을 철저히 반대한 그의 활동은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자체 조직을 구성하고 캠페인을 벌이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이는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확대된 ‘매드 프라이드’로 이어지고 있다. 사스의 반대자들조차 그가 “방치와 잔인함으로 점철된 20세기 정신의학의 관행이 개선되도록 이끌었다”고 인정할 만큼, 사스는 미국 정신 보건 시스템이 환자의 인권과 자율성을 존중하도록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과거에는 ‘정신병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철학자, 사회학자, 의료 전문가는 물론이고 일반 대중도 귀를 기울였지만 이제 그렇지 않다. 지금은 정치권력이 있는 자들이 이 질문에 답한다(‘답한다’보다는 ‘간단히 처리해버린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그들은 국가를 대표해 ‘정신병은 질병이다!’ 하고 선포한다. 정치권력과 전문가의 사리사욕이 결탁하여 거짓 믿음을 ‘거짓 사실’로 바꾸어놓는다. _10쪽

지금도 이 책을 주목해야 하는 까닭은, 여전히 정신의학은 불완전하고 정신장애인에 대한 낙인과 꼬리표 붙이기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외 정신의학계는 이 책을 ‘불온서적’ 취급하지만, 정신 건강을 이해하고 치료하는 방법에 대한 사스의 날카로운 질문에 충실한 답변을 내놓을 때 비로소 정신의학이 과학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_416쪽(‘옮긴이 해제’)

 


 

한국어판 소개

《정신병의 신화》 원서 초판은 1961년 출간되었고 1974년 개정판이 나왔다. 2010년 출간 50주년을 앞두고 정신병과 정신의학에 관한 현재의 경향과 인식을 되짚어보는 ‘서문’과 ‘부록’이 추가된 기념판이 나왔다. 특히 새로운 서문은 저자가 자신의 책에 쏟아진 여러 비평을 검토하고 답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역사와 의의를 한눈에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국내에서 처음 출시되는 이번 한국어판은 30년 가까이 장애 운동과 교육에 힘써 온 윤삼호 활동가가 번역을 맡았으며 한국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명료한 옮긴이 해제가 포함되어 있다.

★★★★★ 이 책에 쏟아진 찬사

“기념비적인 책! 정신의학이 인간의 도덕적, 문화적 갈등에서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정신병에 대한 정의를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_New York Times

“사스는 정신병을 양산하며 지나치게 의료화된 우리 사회의 잠재적 위험을 경고하는 데 가장 앞장선 사람이다.” _Atlantic Monthly

“정신 건강 이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의견을 내세우기 전에 반드시 사스의 책을 읽어봐야 한다.” _Christian Science Monitor

“《정신병의 신화》는 정신의학의 거의 모든 측면에 도전하며, 그 권위를 불법으로 규정한다. 대단히 의미 있고 중요한 책이다.” _Los Angeles Times

“논쟁적이며 영향력 있는 상징적인 작품.” _조이스 캐럴 오츠

 


정신병은 왜 신화인가?

정신병은 신화이자 은유다. 다시 말해 정신병은 개념일 뿐 실체가 아니다. 근대 정신의학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질병을 확인하는 데서 시작된 게 아니라 새로운 질병 구성 기준을 창조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신체병은 생물학적 이상을 통해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지만 정신병은 그러한 증거가 없으며 인간의 행동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진단된다. 따라서 신체병은 발견되고 증명되었지만 정신병은 발명되고 선언된 것이다.

병리학적-과학적 기준에 따르면 질병은 신체의 산물, 곧 물질적 현상이다. 하지만 진단은 신체적 산물이 아니다. 예술 작품이 ‘예술가’라는 사람의 산물이듯 진단은 의사라는 사람의 산물이다. 질병이 있다는 것과 환자 역할을 하는 것은 같지 않다. 아프다고 해서 모두 환자가 아니고 환자라고 해서 모두 아픈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의사, 정치인, 언론, 대중은 이 두 범주를 뒤섞고 혼동한다. _22쪽

근대 의학이 새로운 질병을 발견했다면 근대 정신의학은 새로운 질병을 발명했다. 신체 마비가 질병으로 증명되었다면 히스테리는 질병으로 선언되었다. …… 모든 정신병은 사람들의 이런저런 불평이나 기능-행동 변형에 근거하여 정의되었다. 이런 식으로 억지스럽게 신체병과 정신병이 비슷한 병으로 구성되었다. 마비가 구조적 뇌질병으로 간주되듯이 히스테리 같은 정신병도 기능적 뇌질병으로 여겨졌다. _60쪽

 

프로이트의 《히스테리 연구》 비판

사스는 20세기 초 정신의학계를 지배한 프로이트와 브로이어의 《히스테리 연구》(1895년)를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정신병이 발명되는 전형적인 방식을 설명한다. 사스가 보기에 ‘히스테리’의 등장은 신체적 증상을 모방하는 행위(‘가짜 병’)마저 질병의 범주로 포괄하는 정신의학의 팽창주의를 드러낸다. 또 사스는 프로이트와 브로이어가 관찰한 ‘히스테리’ 사례가 대부분 여성의 경험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정신분석이 여성의 낮은 지위와 여성이 겪는 사회적 억압에 대한 인식에 실패함으로써 ‘히스테리’라는 현상의 본질에 다가서지 못했다고 날카롭게 비판한다.

오늘날 일부 정신분석가들은 브로이어와 프로이트가 명명한 ‘히스테리병(hysterical illness)’ 유형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렇게 히스테리에 대한 사고방식이 바뀌고 심지어 히스테리가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문화적 변화—특히 여성의 성적 억압 감소와 사회적 해방—때문일 것이다. _131쪽

브로이어와 프로이트의 주장 중 일부가 외견상 참신해 보일지라도 그 철학적 지향은 참신하지도 않고 혁신적이지도 않다. 두 사람은 그 당시 과학적 세계관—과학은 곧 물리학과 화학이다—을 신봉하고 또 실행했다. 그래서 심리학을 행동주의 안으로 밀어 넣거나 그것이 실패하면 이른바 심리학의 물리화학적 기초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었다. 프로이트는 심리학을 연구하기 시작할 때부터 심리학적 관찰을 물리학적 설명으로—또는 적어도 ‘본능’으로—환원하려 했고, 죽을 때까지 그 목표를 단념하지 않았다. _137쪽

인간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성적 욕구 불만, 억압된 분노 같은 추상적 개념 때문에 고통받는 게 아니라 부모, 친구, 자식, 고용주 등과 맺는 특별한 관계 때문에 고통받는다. _201쪽

 

“정신병은 사회문화적 구성물이다”

정신병은 사회문화적 구성물이다. 근대 사회 이전에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의 행동은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증표였지만, 근대 사회는 문화적 규범, 가치관, 사회적 기대에 따라 ‘비정상적’ 인간 행동을 질병으로 정의했다. 하지만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과학적 기준이나 절차는 없었으며 문화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 왔다.

빅토리아 시대 정신 감정사는 당대의 윤리관에 따라 게으른 성인, 자위하는 청소년, 임신한 처녀를 ‘광인’으로 규정했다. 19세기 미국 정신과 의사는 ‘자비로운’ 주인의 품을 떠나 탈출하는 흑인 노예에게 ‘탈출광(drapetomania)’이라는 정신병 꼬리표를 붙였다. 현대의 DSM(정신병 진단 및 통계 편람)은 동성애나 문화적 차이로 인한 정신적 혼란을 정신병(문화고유증후군)으로 분류한 적이 있다. DSM의 최신판 역시 주정뱅이는 알코올 중독, 노름꾼은 도박 중독, 심하게 별난 아이는 ADHD, 부끄러움이 심한 사람은 사회공포증으로 분류한다. 성욕이 부족해도 정신병(흥분이상증, 사정지연증, 발기이상증)이고, 성 정체성 혼란도 정신병(젠더 불쾌감)이다.

중독자, 동성애자, 범죄자를 ‘아픈 사람’으로 간주하는 게 유익하지 않은가? 당연히 누군가에게는 그런 꼬리표 붙이기가 유익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대체로 사람들이 불확실성을 참지 못하고, 나쁜 행동을 죄나 병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같은 이분법을 거부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일탈한 행위나 불쾌한 행동을 다른 방식으로 분류하거나 미분류 상태로 남겨둘 수 있다.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을 병자로 분류하는 것은, 윤리나 정치에 호소하여 정당화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논리나 과학에 호소해서는 정당화할 수 없다. _93~94쪽

그런데 히스테리, 우울증 따위도 질병에 추가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런 항목들이 신체적 질병인 것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질병 구성 기준이 신체의 물리화학적 교란에서 개인이 겪는 장애와 시련으로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질병 또는 병의 ‘은유적 의미’다. 이런 식으로 처음에는 서서히 시작되더니 점점 빠른 속도로 많은 항목들이 질병 부류에 추가되었다. 히스테리, 건강염려증, 강박증, 충동증, 우울증, 정신분열증, 정신이상, 동성애 등등. _96쪽

간저증후군은 (재판을 기다리며 구치소에 대기 중인 수감자에게 나타나는) 미친 척하는 전략적 흉내 내기다. 하지만 수십 년째 정신과 의사들은 그것이 꾀병인지, 히스테리인지, 정신이상인지, 아니면 비-병인지를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 간저 ‘환자’가 책임 능력 없음을 주장하며 처벌을 모면하기 위해 자기 딴에 정신이 병든 사람의 행동을 흉내 내는 것과 속임수를 써서 소득세를 면제받으려는 사람의 행동은 어떻게 다른가? 전자는 미친 척하는 것이고 후자는 가난한 척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신과 의사들은 이런 종류의 행동을 여전히 병의 징후로 보고 그 속성, 원인, 치료법을 추론하느라 바쁘다. _336~338쪽


 

사회를 병리화하는 ‘치료 국가’ 

정신의학은 역사적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수단이었다. 사회 규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 정신병 꼬리표를 붙여 기존 질서를 유지하고 ‘정상성’을 보호한 것이다. 사스는 잠재적, 현실적 범죄자를 강압하고 감금하는 데 경찰과 감옥이 아니라 의사와 병원을 활용하고, 형벌이 아니라 치료를 통한 구속과 강제를 정당화하는 정치 질서를 ‘치료 국가(Therapeutic State)’라고 명명한다. 사스에 의하면 치료 국가 체제에서 정신과 의사는 일탈을 질병으로 규정하여 사회적 통제를 유용한 치료법으로 정의하고, 정치인은 위험을 기피하려는 대중의 심리에 영합해 정신과 시설과 교도소는 물론이고 사회 전체의 정신병리화를 합법화한다.

우리의 개인적 삶을 통제하고자 하는 제도와 개인, 즉 교회와 국가, 정치인, 의사는 그들로부터의 독립을 무례함, ‘공익에 봉사’하고 ‘신성한 의무’를 다하는 것에 대한 방해로 여겨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오늘날 치료 국가는 질병과 치료에 대한 정의를 독점적으로 통제하려고 한다. _391쪽

이제 모든 국가는 치료 국가가 되었다. 오늘날 의료는 정치경제의 필수 부분—사실상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현대 정신의학은 의학의 한 갈래라기보다 법률, 가정법원, 형사사법제도의 한 갈래다. 과학적인 질병 기준은 일반 병리학과 다양한 기관계 병리학—피부병리학, 신경병리학 등—관련 학술지와 교과서에 갇혀 있다. _404쪽

 

“정신의학의 윤리가 필요하다”

사스는 의사-환자 관계에 내재한 권력 역학과 강압의 가능성을 의식하며 정신의학의 윤리를 철저히 강조했다. 치료 과정에서 당사자(환자)의 적극적 참여, 사전 정보에 의한 동의, 인간적 연민에 기반한 치료 같은 윤리적 원칙의 보장을 제도화할 것을 주창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실천했다. 사스는 또 정신과 의사가 치료 환경에서 내담자의 자율성과 책임을 중요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봤는데, ‘비정상적’ 행동을 기준으로 정신병을 진단하면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은 병리화·낙인화되어 질병의 증거로 간주되며, 그의 자유는 제한되고 범죄 행동에 대해서도 책임이 면제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정신병 진단이 개인을 자율적인 행위자가 아니라 무기력한 존재로 만들기 쉽다는 사실을 의사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정신병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학과 과학의 언어만으로는 부족하고 문학의 언어, 철학의 언어, 특히 당사자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간 행위는 기본적으로 도덕적 행위이다. 따라서 윤리적 가치에 관한 쟁점과 맞붙지 않고 인간 행위를 설명하고 변경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정신의학 이론과 치료의 도덕적 차원이 은폐되고 불명확하면 그 과학적 가치는 크게 제한될 것이다. 이 책이 제시한 개인 행위 이론—그리고 이 이론에 함축된 정신 치료 이론—을 통해, 나는 정신의학적 맥락에서 발생하는 인간 행위의 도덕적 차원을 규명함으로써 이 결함을 바로잡고자 했다. _365쪽

나는 상호 동의가 있다면 의사가 성인의 정신의학적 행위에 개입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이유에서 비자의적인 정신의학적 개입은 어떤 경우에도 반대한다. 정신과 의사는 의사로서 사회 안전을 위해 그런 행위에 가담할 것을 요구받더라도 개인의 생명, 자유, 재산을 절대 박탈해서는 안 된다. _384쪽

나는 현대 사회가 일탈 행위를 (정신적) 병으로, 일탈 행위자를 (정신과적) 환자로, 일탈자를 통제하기 위한 조치를 (정신과적) 치료로 재분류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위험을 대중과 전문가들에게 알리려고 했다. 또 이러한 실천이 만들어낸 자기 규율과 형벌 파괴—특히 형벌이 정신의학적 강압과 면책으로 대체된 것—의 위험을 알렸다. …… 범법자를 강압하고 감금하기 위해 경찰과 감옥이 아니라 의사와 병원을 활용하고 형벌이 아니라 치료를 통한 구속과 강제를 정당화하는 정치 질서를 나는 ‘치료 국가’라고 명명했다. _385쪽

 


 

토머스 사스(Thomas S. Szasz, 1920~2012)

정신과 의사이자 저술가.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고 1938년 나치를 피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신시내티대학에서 물리학과 의학을 공부했고, 정신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후 ‘시카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정신분석가 수련을 받았다. 1956년부터 뉴욕주립대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로 부임해 5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쳤다. 생물학적 정신의학과 정신분석학 이론을 비판적으로 탐구하는 여러 편의 책과 논문을 썼으며, 대표작으로 《정신병의 신화(The Myth of Mental Illness)》(1961년) 《광기의 제조(The Manufacture of Madness)》(1970년) 《치료 국가(The Therapeutic State)》(1984년) 등이 있다.
“정신의학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비평서인 《정신병의 신화》는 현대 정신의학이 정신병에 대한 정의를 끊임없이 확장함으로써, 개인이 일상에서 겪는 모든 갈등과 감정을 의료화하는 사회구조적 병폐를 폭로한다. 출간 직후부터 학계와 시민 사회에 뜨거운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반정신의학적 사상가와 운동가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정신 건강 분야를 탈권위화하는 데 중대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삼호
1966년 경상북도 청송에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성공회대학교 대학원(사회학과)에서 공부했다. 2000년 대구에서 장애인지역공동체를 공동 설립하고, 이후 한국장애인연맹, 한국장애인인권포럼,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부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가로 일했다. 한국장애학회 설립 당시부터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장애화의 정치》(2006년), 《장애학: 과거‧현재‧미래》(2006년), 《장애학 개론》(2007년), 《배제에서 평등으로》(2008년), 《자립생활의 미래》(2009년), 《동정은 싫다》(2010년), 《장애, 문화, 그리고 정체성》(2012년), 《장애와 사회, 그리고 개인》(2015년) 등을 번역했다. 《소수자 운동의 새로운 전개》(공저, 2013년), 《활동보조인 양성 교재》(공저, 2022년) 집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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